[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06. 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리는 이탈리안 치즈를 찾아라 – 제1회 기특한 곰팡이

2021.04.30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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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리는 이탈리안 치즈를 찾아라 – 1회 기특한 곰팡이

 

음식은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신체에 영양을 공급한다이러한 원초적 기능 외에 음식은 행운의 여신이 자신의 편이 되게끔 인간의 이기심을 조정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윈스턴 처칠 수상이 지휘한 고르곤졸라를 구하라” 작전이 그런 경우다.

 

고르곤졸라 맛에 흠뻑 빠져 있던 수상은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이탈리아 본토 탈환 작전을 세우던 중 고르곤졸라 마을과 그 인근 낙농가가 연합군의 공중 폭격 사정권 안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대응방안을 놓고 부심하던 수상은 작전 지도 위에 있는 치즈 생산 농가를 적색 펜으로 묶고 그 원 안에 폭탄 투하 금지령을 내린다덕분에 고르곤졸라 치즈 농가는 전시 중에도 블루치즈를 계속 생산할 수 있었고 수상도 전시에 고르곤졸라의 공급선이 끊기는 불운을 피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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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곤졸라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그네 뛰듯 호평과 혹평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채찍 맞아 멍든 치즈 같다”, “고린내가 악취 수준이다”, “충격적인 맛이다”, “한 번 맛 들이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가 그런 예 들이다워낙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나도라는 심리를 자극해 판매량으로는 세계 최고의 블루치즈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고르곤졸라의 탄생은 꽤 낭만적이다이야기는 고르곤졸라 마을에 살던 한 목동이 어여쁜 애인을 생각하다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목동은 아침에 만든 커드(curd: 우유에 응고제를 넣어 굳힌 다음 유청을 제거하고 남은 단백질 덩어리)를 그만 전날 밤에 짠 우유로 만든 커드에 섞어 버린다시간차를 두고 만든 커드는 제대로 섞일 리가 없었고 벌어진 틈 사이로 침투한 푸른곰팡이가 발효를 일으켜 뜻하지 않은 변종 치즈를 낳았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목동의 행위는 건강의 원흉으로만 알고 있던 곰팡이를 식탁의 안전망으로 끌어 들인 위대한 실수였다그날 아침 커드에 우연히 떨어진 그 미생물은 페니실리움 글라우쿰(Peniclillium Glaucum)이란 푸른곰팡이의 일종이었다푸른곰팡이는 균사로 이루어진 미생물의 일종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우리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다미생물 학자에 따라 3만종 에서 10만 종에 이르는 대식구다매년 겨울에 발생하는 결로현상으로 새로 칠한 벽을 얼룩덜룩하게 만드는 골칫거리며 아토피성 피부염과 배앓이를 일으키는 식중독도 고르곤졸라를 공격한 곰팡이의 먼 친척이 한 짖이다.

 

곰팡이는 공로도 많다. 1944년 노르망디 침공작전 시 부상당한 군인들한테 푸른곰팡이를 배양해서 만든 페니실린이 배급되었고 이를 투약한 부상병들은 치명적인 세균 감염을 피할 수 있었다한국의 전통주도 누룩곰팡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술의 원료인 곡물의 전분을 누룩 곰팡이가 당분으로 분해한 후 이걸 식량으로 섭취한 효모가 알코올 형태로 되돌려준 덕이다.

 

지금도 목동 시절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고르곤졸라를 만든다다만당일 아침에 짠 우유로만 커드가  만들어지며  커드가 굳기 전에  페니실리움 글라우쿰 포자를 넣는다우연히 푸른곰팡이가 와서 달라붙는 우연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기다예전에는 자연동굴에서 숙성이 이루어졌지만 요즘은 섭씨 2~7습도 85~99%로 조절된 숙성실이 도맡아 한다숙성실로 옮기기 전에 고르곤졸라는 바늘 세례를 받는다굵은 바늘이 치즈 속살을 뚫고 지나가면 그 빈자리는 산소로 채워지고  커드 단계에서 주입된 푸른곰팡이의  활동을  촉진시켜 다양한 풍미의 원천을 이룬다.

 

고르곤졸라는 돌체(dolce) 맛과 피칸테(piccante) 맛으로 나뉜다피칸테는 맵고 짠맛이 나며 전통 제조방식대로 만들어 원조의 뜻을 갖는 오리지날레(originale)라고도 한다반면돌체 맛은 강한 맛이 줄어들고 크림식감과 촉촉함은 부각시켰다두 맛의 차이는 숙성기간과 곰팡이 양치즈 속 살의 보습량에서 온다 돌체는 최소 50피칸테는 최소 80일 숙성 뒤 시판되며 돌체는 피칸테에 비해 푸른곰팡이 수가 훨씬 적다일반 치즈처럼 오래 놔둔다고 숙성치즈가 되는 게 아니라 원유를 처리하는 과정부터 돌체와 피칸테로 구분된 뒤 고유의 방식에 따라 제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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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고르곤졸라 컨소시엄고르곤졸라 치즈는  g마크가 찍힌 알루미늄에 포장되어있다>

 

 

몇 년 전에 밀라노 북쪽에 있는 한 도시에 볼 일 있어 전철 타고 가다가 고르곤졸라를 지나치게 되었다내 눈은 열심히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목장이나 치즈 공방을 찾았지만 회색빛 아파트 단지만 눈에 들어왔다실망스럽게도 내가 상상하던 고르곤졸라 모습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다치즈를 낳았고 초기의 본산지로서 전성기를 구가했었을 뿐생산 중심지는 롬바르디아주 동부와 피에몬테주 동남부로 옮겨진 지 오래다.

 

탄생지로서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고르곤졸라 마을은 마치 바롤로 와인의 고향인 바롤로 마을을 제외하고 바롤로 와인 축제를 벌이는 것과 같다시칠리아섬에서 생산된 네비올로 와인을 바롤로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고르곤졸라 치즈 규정이 지정한 16군데 지역 밖에서 생산된 블루치즈는 고르곤졸라가 될 수 없다대신에르보리나티(erborinati)치즈란 광의 개념에 속하게 된다에르보리나티는 파슬리란 뜻으로  푸른곰팡이가 뻗어나간 모양이 마치 파슬리 줄기와 흡사한 데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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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Nino Negri 와이너리발텔리나 계곡의 Grumello 포도밭>

 

 

고르곤졸라는 그 어떤 치즈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존적인 풍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보듬는 유연성이 뛰어나다와인 중 일등 궁합은 달콤함의 귀재귀부와인이다쌍둥이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듯 곰팡이를 매개로 태어난 와인과 치즈는 유전상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있다고르곤졸라 산지와 인접한 곳에서 또 다른 와인 파트너를 찾았다북 밀라노를 경유해 부호와 명사의 별장지로 알려진 코모 호수를 지나 북서쪽으로 30km 더 가면 도달하는 발텔리나(Valtellina) 계곡이다독일 시인 헤르만 헤세가 경치에 반하고  와인 맛이 환상적이라고 극찬했던 명소다.

 

발텔리나 계곡은 테라쩨로 특징 지울 수 있으며테라쩨(terrazze,테라스)는 이탈리아의 포도재배 지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경작지다알프스의 급경사 산기슭과 해안선과 맞닿은 절벽에 일구어진 친궤테레와 아말피해안이 그 예다.

 

먼저땅 속 깊숙이 박힌 돌을 캐낸 공터는 평지에서 옮겨 온 흙으로 채워진다캐낸 돌은 적당하게 잘린 다음 흙 두덩이 가장자리에 차곡차곡 쌓여진다힘들게 만든 밭이 빗물이나 바람에 휩쓸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이렇게 한 계단의 테라쩨가 완성되는 데는 한 세대의 세월이 걸리며 그런 이유로 영웅의 포도밭(viticoltura eroica)으로 칭송받고 있다.

 

발텔리나의 테라쩨는 길이가 25백 km에 달하며 급경사에 폭이 좁기 때문에 수확철에는 딴 포도를 헬기로 평지로 나르는 이색적인 광경이 벌어진다발텔리나 와인은 네비올로 포도로 만들어지며 원산지인 피에몬테지역 밖에서 생산된 와인 중 유일하게 바롤로와 동급인 DOCG 등급에 오른 와인이다해마다 생산되는 발텔리나 수페리오레’ 와인과 유난히 날씨가 좋은 해에 수확한 포도만을 선별 건조한 포도로 만든 스포르자토 디 발텔리나의 두 종류가 있다.

 

가시 같던 치즈의 향미는 발텔리나 와인에서 스며 나오는 복합적인 풍미와 탄탄한 바디감과 하나가 되어 원무를 춘다감초향가죽 향이 은은하게 나다가 체리와 장미향으로 이어지는 발텔리나는 고르곤졸라의 버터버섯원두향과 조화롭게 한 몸이 된다콧 등이 멍 할 정도의 알싸한 맛은 와인의 둥그런 타닌과 알코올의 개입으로 곧 기분 좋은 후미로 돌아선다매끄러운 결과 탄력 있는 조직이 감추고 있는 크리미함은 입안에 충만한 행복감을 주며 와인의 산미는 느끼함을 말끔히 가셔 준다.



<치즈 마니아를 위한 고르곤졸라 선택 요령>

 

최근에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이탈리아에 오는 혼행족이 늘고 있다이들은 맛집이나 마트에 가서 로칼 푸드를 경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마트의 치즈 코너에는 한국인한테 친숙한 고르곤졸라 치즈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고르곤졸라는 워낙 유명해서 이탈리아 내에서도 짝퉁이 많아 고르곤졸라 컨소시엄은 다양한 정품 치즈 선택법을 알려준다.

 

고르곤졸라 치즈는 실린더 형태에 무게가 12kg이며시장에 출시될 때는 g마크가 새겨진 알루미늄 포장에 싸여 있으므로 이 표식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이 덩어리는 포장단계에서 아예 그람 단위로 잘린 뒤 소형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진공처리 후 담기는데이경우 플라스틱 용기 겉면에는 DOP 마크와 생산자명이 표시된다.

 

마트 내 치즈 코너에 진열되어 있는 소형 포장 치즈를 구입할 때도치즈 양면에 마크가 찍힌 알루미늄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만일 없다면에르보리나티 치즈나 짝퉁 고르곤졸라 임을 의심해야 한다고르곤졸라 마니아라면 가스트로노미아(gastronomia) 고급식품점도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원유를 달리하여 장기 숙성한 에르보리나티 치즈는 폭넓은 블루치즈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피칸테 고르곤졸라는 푸른곰팡이 부분이 분리되거나 손가락으로 만졌을 때 미끈거리면 안된다곰팡이의 맛이 겉돌지 않고 속 살의 부드러운 맛과 조화를 이뤄야 완성미 높은 고르곤졸라다.

 

발텔리나 와인은 테라쩨란 지역특성으로 인해 생산량이 적어 구하기 쉽지 않다이럴 경우 랑게 네비올로(Langhe Nebbiolo)나 네비올로 달바(Nebbiolo d’Alba)와인은 멋진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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