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바람이 부르는 땅의 노래

2026.07.10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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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바람의 이름

시칠리아에는 항상 바람이 분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늦은 저녁 호텔 정문을 나설 때도 바람이 습기와 함께 바다 냄새를 밀어 올린다. 이 곳에서는 바닷가에서도, 내륙의 고원에서도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을 기억하는 이유는, 목덜미에서 무릎 근처에서 등을 떠 밀면서 온 방향에서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기 때문이었다. 5월의 바람은 사납지 않으며, 연이어 불어오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바람의 질감은 면이 넓으며 모서리가 없다. 뜨거운 지중해의 직사광선을 받는 포도나무의 열을 가볍게 식혀 주고, 좀처럼 멈추지 않으니 곰팡이가 자리를 잡기 어렵다. 오는 길 비행기에서 읽은 단어를 떠올리며... 이 바람이 시로코(Scirocco)인가요? 라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시로코는 훨씬 뜨겁기 때문에, 부는 순간 알 수 있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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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시칠리아가 지중해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란다. 겨울이 끝나고 봄에 들어서 아프리카가 지중해보다 빠르게 뜨거워지면 그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시칠리아를 습격한다. 가끔 사막의 모래 먼지를 몰고 붉은 바람이 되는 날도 있다. 그 바람은 그리스까지 몰아치는데 로이터에서 빨갛게 물든 하늘과 바다를 본 적이 있다. 시칠리아에도 가끔 붉은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 때 바람의 이름은 시로코인 셈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첫 문단을 보면 시로코의 이름이 등장한다. 배를 타고 남하하는데 역풍인 시로코가 불어 멀미를 한다는 내용이다.

반대로 유럽 대륙 북서쪽에서 높은 기압이 형성되면 프랑스의 론 골짜기를 불던 매서운 바람이 시칠리아까지 내려온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달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론 계곡에서 속도를 올려 바다 위를 달려 사르데냐섬을 지나고, 시칠리아를 지나 북아프리카 해변까지 몰아친다. 북쪽에서 부는 이 바람의 이름은 미스트랄이다. 미스트랄이 불었다면 괴테는 조금더 빠른 여행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여행자에게 바람은 나쁘지 않은 동행이다.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조금 헐렁한 옷과 스카프를 챙기자. 챙겨온 손 선풍기는 쓸모가 없고 머리카락은 묶는 게 좋다. 휙 불어 닥치는 바람이 모자를 집어갈 수 있어 모자에 긴 줄을 달아 목에 건다. 많이 걸어도 땀은 많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밤에는 기온이 훌쩍 떨어지기 때문에 짧은 원피스와 민소매만으로는 산책에 나설 수 없다. 그럴 땐 멋진 자켓을 벗어 툭 어깨에 걸쳐주는 친구를 한 명 대동하면 별로 가득 찬 밤 하늘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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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부터 밤하늘까지, 테누타 나바라

테누타 나바라(Tenuta Navarra)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열을 맞춰 들판을 달려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포도나무들의 행렬은 부드러운 바람으로 춤추고 있다. 포도나무 행렬의 끝에는 빨간 장미가 산들거린다. <어린 왕자>의 그 유난스런 장미와 마찬가지로, 장미는 조금 까다로운 환경에서 잘 자란다. 하루 최소 대여섯시간의 직사광선이 있어야 꽃 봉오리를 맺을 수 있고, 벌레와 병에 약하다. 그래서 농부들은 포도나무 옆에 장미를 심는다. 포도나무들이 종종 걸리는 노균병과 흰가루병에 똑같이 취약한데, 같은 병에 걸려도 더 빨리 증상을 보인다. 그래서 '포도밭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언덕 위에 넓게 펼쳐진 마당에는 커다란 천체 망원경이 있다. 이 망원경으로 태양을 바라보면 태양의 불길이 작게 이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가 조금 더 떨어지면 프라파토로 만든 스파클링 로제 <로즈모스 Rosemosse, 2025>의 빛으로 하늘이 물들 때까지 아페리티프를 즐긴다. 실상 프로세코와 로제를 가장 잘 파는 판매원은 노을이 아닐까. 이 노을빛을 내기 위해 적포도인 프라파토를 살짝 압착해 화이트 와인처럼 로제 와인을 만들어낸다. 아삭하게 구운 토스트 위로 얇은 소고기 카르파치오, 아보카도 무스 위 생새우, 작은 비프 버거, 또 시칠리아의 가장 유명한 요리인 샤프란에 절인 리조또가 들어간 아란치니를 한 입 베어 물면 콧등으로 와인의 꽃 향기가 나비처럼 앉는다.


테누타 나바라의 주력은 이 곳의 토종 품종인 프라파토와 네로 다볼라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시칠리아엔 하나뿐인 DOCG(2005 DOCG 승급)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를 만드려면 두 품종을 함께 써야 하기 때문이다. 깊고 진한 루비빛의 네로 다볼라는 검은 체리와 자두, 블랙베리향을 깊게 담아낸다. 풀 바디에 단단한 탄닌을 자랑한다. 핑크빛, 가넷빛을 띤 프라파토는 피노누아를 연상케한다. 딸기향과 장미향이 나는데, 석류향이 왕왕 느껴진다. 청량한 산미가 네로 다볼라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단단한 네로 다볼라를 바탕으로(50~70%), 프라파토(30~50%)를 더하는 것이 규정이다.

 

하지만 프라파토의 독무를 감상할 시간도 꼭 가져보길 바란다. 테누타 나바라는 앞서 언급한 로제 스파클링 로즈모스에 이어, 프라파토로 만든 로제, 레드도 만들고 있다. 프라파토의 본연의 생동감과 우아함, 산들거리는 과실향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오크는 쓰지 않는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조금 흔들리는 시선으로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주변에 이렇다할 불빛이 없기 때문에, 별들이 수놓아진 하늘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을 온전히 느끼며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건 홍보 기획자이자 천체 사진작가이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자켓을 빌려준 프레데릭의 덕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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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토리아의 전설, 그리고 소금호수, 카사 그라치아

테누타 나바라와 나란히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의 유망주로 꼽히는 카사 그라치아(Casa Grazia)에서는 비토리아의 전설에 대해 더 들을 수 있다.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이어진 역사 수업은 퍽 흥미로워서 배고픔도 잊게 했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지역은 고대 그리스의 정착 도시 중 하나로 기원전 3세기에도 와인의 거래가 이뤄졌다는 토지 매매 증서가 나올 만큼 유명한 곳이었는데, 오랜 침략기와 이슬람 지배기를 거치며 사실상 포도주 명산지의 명맥이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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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산업의 르네상스는 1600년 대 백작부인 '돈나 비토리아 콜로나'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600년 공작이던 남편이 사망한 직후, 그녀는 친정의 땅인 시칠리아 백작령과 함께, 남편의 막대한 부채를 떠 안고 만다. 빚 청산을 위해 땅을 잃을 위기에 처한 그녀는 이 땅을 구하기 위한 묘안을 한 가지 낸다.  

넓은 땅을 쪼개 이주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땅 한 뙈기에 연간 임대료로는 밀 63kg을 내도록 했다. 단 한 개의 조건을 달았는데, 바로 '반드시 포도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관대한 조건은 곧바로 바람에 실려 퍼져 나갔다. 시칠리아 전역 60개 마을, 더 나아가 (현재는 이탈리아의 본토인) 칼라브리아와 몰타에서 비토리아로 이주민들이 밀려 들어왔다. 자신들이 기르던 포도나무 묘목을 각자 가슴에 품고 말이다. 

불과 몇 세대만에 그녀의 정책은 황금기를 이끌어낸다. 1770년대엔 '비토리아 와인'의 명성이 드높아지면서 콧대 높은 피렌체 상인들도 구매해갈 정도였다. 그 황금기는 포도나무의 흑사병 필록세라가 창궐한 19세기 말까지 이어진다. 체라수올로 디 비토리아 와인협회가 인용하는 1800년대의 기록을 엿보면 '각지의 양조장에서 1500대에 달하는 마차가 스코글리티 항으로 향하고, 항구에서는 오크통 수백개가 배에 실려 나간다'고 적혀 있다. 이 와인들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로 향했는데 "오랜 항해를 견뎌내는 강인함, 붉은 거품, 특유의 매혹적인 향기"로 이름을 알린다.

이 시기의 품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학자들은 16세기 이전부터 재배 기록이 발견되는 네로다볼라와 프라파토를 기본으로, 다양한 유럽 지역의 포도 품종이 뿌리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20세기 후반 다시 비토리아의 전설을 이어가려 하는 카사 그라치아에서도 그릴로, 카타라토, 모스카토, 시라, 카베르네 소비뇽, 트라미너 등 다양한 품종을 길러내고, 실험적인 양조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그러면서도 카사 그라치아다운 스타일을 만드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는데, 바로 은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미네랄리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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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로나 카타라토 같은, 화이트 와인들에서 특히 웅장한 울림으로 느껴지는 이 미네랄리티는 바다로부터, 바다 바람으로부터, 또 소금호수로부터 온다고 이 곳 사람들은 믿는다. 비토리아 지역의 역사의 산 증인인 바다에서 와이너리는 불과 2.5km 떨어져 있는데, 그 사이에 시칠리아 섬에서 가장 큰 염수호인 비비에레 호수를 품고 있다. 람사르 협약 아래 자연보호구역인 이 호수의 옆으로는 6만 대의 올리브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그 너머에는 지중해 관목숲(Marquis)이 있는데, 서풍이 관목림의 허브향과 꽃 향기를 올리브와 포도에 입힌다는 이야기다.


미네랄리티가 곧은 등줄기를 세우고 있는 이 관조적인 화이트 와인 <페르 마리 그릴로 Per Mari Grillo, 2024>에는 과연 지중해의 들풀과 꽃 향기가 옅은 잔무늬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듣고는 소금물을 머금고도 굳건히 자라는 풀들과 사구에서만 자란다는 흰 야생 백합, 야생 조류들의 고향인 비비에레 호수와, 관목숲까지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오랜 후회로 남는다. 대신 안개가 흩어지는 새벽의 비비에레 호수를 그대로 그려 넣은 이 와인의 라벨을 보며 목을 축이자. 품종은 그릴로로, 시트러스, 오랜지 블라썸, 살구의 싱그러운 향 너머로 자스민 꽃, 이름 없는 들풀의 향기가 흩어진다.

여담으로 카사 그라치아의 상징과 같은 짙은 푸른색은 비비에레 호수의 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서기 50년의 기록에 따르면, 옛 여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 호수를 찾았다고 한다. 물이 마르면 소금기가 말라붙어 큰 거울처럼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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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력의 힘으로 빚어낸 태양과 대지의 노래’, 페우디 델 피쇼토

역사 수업이 너무 지루하지 않았다면 이제는 1800년대의 와인을 상상해볼 차례다. 비토리아 부인의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이 지역에는 세 가지의 특징적인 모습이 자리잡는다. 바로 이 지역 점토로 만든 무역용 항아리인 암포라, 농가 건물 발리오(Baglio), 또 양조장(Palmento)이다. 카사 그라치아에서 이번엔 다시 북쪽으로 15km 정도 내륙으로 들어오면, 페우디 델 피쇼토(Feudi del Pisciotto)가 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농가를 개조해 만든 호텔은, 낮의 열을 받아 저녁에도 내내 따스한 돌을 올려 만들어졌다. 키안티 클라시코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카스텔라레 그룹의 와이너리로, 이 곳의 백미는 18세기에 실제 양조장으로 쓰이던 거대한 팔멘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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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팔멘토 안은 상쾌하다. 양 방향으로 창이 있어 바람이 드나들고, 동굴처럼 또는 비어있는 성당처럼 기분 좋은 돌 냄새가 난다. 새들이 잠깐 들어왔다 툭툭 발자국을 찍고는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하얗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팔멘토의 구획들은, 양조장이기보다는 이제는 유적에 가깝다. 다만 기대고 만지고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는 차이뿐이다.


1700년대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유산은 초기의 포도 양조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문 밖에서 포도를 던져 넣고 가장 윗칸에 가득 찬 포도를 맨발로 밟는다. 즙들은 중력에 따라 흘러 그 다음 칸으로 흐르는데, 여기서 대부분의 부산물을 내려놓고 가장 밑칸으로 흐른다. 이 곳에 오롯이 모인 포도즙이 발효를 거치며 와인이 된다그 결과물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도를 높이기 위해 농익은 채 도착한 포도들은 공기와의 접촉 때문에 사과향과 견과류향을 머금게 된다. 벌레를 막기 위해 문을 닫아 놓을수록 팔멘토 안은 발효 중 이산화탄소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 곳의 와인메이커인 마르코는 당시 와인은 현대의 우아하고 절제된 와인들과는 많이 달랐으며, 알콜 도수를 최대한 높이되 보존력을 높이기 위해 가당해 무척 달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오랜 항해를 견뎌내는 강인함, 붉은 거품, 특유의 매혹적인 향기"를 곱십어본다면 이런 주장엔 꽤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당시엔 노동법이나 아동보호법이 없었으므로, 양조의 과정에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많이 동원됐다는 잔혹한 증언도 곁들였다. 양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로 인해) 기절하면 들어올리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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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것은 모두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깨끗하고 현대적이며 실험적인 양조가 이뤄지고 있는 새 와이너리는 고스란히 옛 와이너리의 지혜를 이어가고 있다. 포도와 포도즙은 옥상으로 운반되고 경사로를 통해 아랫층의 양조장으로 옮겨진다. 오로지 중력의 힘을 이용하는 이 방식은 포도즙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식이다. 현재는 병입 장소까지 저장 탱크보다 낮게 위치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곳의 대표 와인의 품종은 네로다볼라로, 시칠리아식 양조의 철학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네로다볼라의 2015년 빈티지<Nero d’Avola, 2015> 2017년 와인스펙테이터의 세계 100대 와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와인의 라벨은 베르사체가 맡았다.

 

하지만 지면이 허락한다면 시칠리아 땅의 가능성을 와인으로 구현해낸 와인 하나를 특별히 더 소개하고 싶다. 시칠리아로는 보기 드문 세미용과 게부르츠트라미너를 말려 만든 디저트 와인 <파시토 타키스 Passito Tachis, 2019>'. 프랑스의 세미용과 독일의 게부르츠트라미너의 만남도 독특하지만, 세미용의 산도와 게부르츠트라미너의 향을 잘 살려냈다는 자신감이 돋보인다. 농밀하게 미끄러져 들어오는 단향 위에는 장미와 꿀, 말린 노란 과일의 향기가 춤을 춘다. 산도가 좋아 들척지근하게 늘어지지 않고 산뜻하게 여러 요리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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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의 개척자인 양조자 '자코모 타키스'에 헌정됐다. 자코모 타키스는 와인 애호가이기도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철학을 따라 국제 품종들을 들여와 사시카이아, 솔라이아, 티냐넬로로 이어지는 수퍼투스칸의 시대를 연 사람이다. 그는 갈릴레이가 남긴 "와인은 태양(light)과 대지(mood)의 작품"이라는 명제를 고민한 끝에 실험을 성공시켰고, 시칠리아 같은 아름다운 땅에서는 어떤 포도 품종이든 재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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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소한의 개입으로, 뜨거워지는 대지의 호흡을, 마세리아 델 페우도

 

하지만 '태양과 대지의 작품'은 또 하나의 시련을 맞고 있다. 점점 대지가 뜨거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특히 시칠리아의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시칠리아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와이너리들의 푸른 밭에는 까만 줄이 포도나무들의 행렬을 따라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포도나무가 생존할 수 있을만큼의 물만을 공급하는 생명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람이 살짝 멈춰 태양의 뜨거움이 직접 쏟아지는 한낮에 마세리아 델 페우도(Masseria del Feudo)에 도착했다. 1860년부터 와인을 만들던 농가를 사서 만든 이 곳엔 작은 돌교회가 한 채 서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올리브 나무가 우뚝 서 있다. 돌담 사이엔 달팽이 몇 마리가 숨은 듯 매달려 있다. 거의 멎은 듯한 바람이 정적 속에 간간히 열기를 거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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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로 펼쳐진 포도 밭으로 쏟아지는 5월의 태양 아래서 작업자들은 아직은 쌀알만한 크기의 푸르고 단단한 포도알을 가장 건강한 것만 남기고, 잎도 쳐낸다. 태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포도나무는 모든 생존력을 열매에 모을 것이다. 그래서 양조자들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려 하는 포도나무에게 지나친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다만 점점 땅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햇빛을 조금 더 가릴 수 있도록 이파리 몇 장을 더 남긴다고 한다.

 

1860년부터 시작된 마세리아 델 페우도의 양조는 100년을 넘는 기간을 달려왔고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필록세라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이제는 매년 달라지는 태양과 대지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양조 효모를 넣지 않고 포도에 앉아 있던 야생 효모가 발효의 주역을 맡게 하며, 숙성도 시멘트 탱크에 맡긴다. 미세한 산소 접촉을 허용하면서도 포도 본연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쪽을 선택한다.

 

매년 치열해지는 도전 속에서도 땅의 호흡을 듣고자 하는 노력은 매년 더 깊어지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매해 수확기마다 구획별 포도를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눠 토양의 변화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해 매년 양조 방식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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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경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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