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26. 와인과 기다림

2021.04.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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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숙성 중인 프랑스 루시옹지역의 리버잘트와인.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좋은 씨를 뿌려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영어속담 ‘Everything has its seed’와 한자성어 ‘명불허전(名不虛傳)’과 일맥상통하다.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상 악화나 잘못된 방식 탓에 질 낮은 포도가 나오기도 한다. 좋은 포도를 사용했음에도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포도나무 수명은 길며 오래될수록 최상급 포도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수확량이 줄기에 품질·수익성을 고려해 보통 30년 주기로 새로운 포도나무를 심는다. 포도나무 뿌리를 뽑아낸 포도밭은 3년 이상 휴경기를 가져야 지력을 회복할 수 있고, 어린 포도나무가 자라기 좋은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포도나무는 심은 지 3년이 지나야 첫 수확을 할 수 있다.

포도 수확은 품종·날씨·포도밭 상태에 따라 적당한 수확 시기를 기다리다가 포도의 당도·산도가 이상적 균형을 이루었을 때 시작한다. 와인은 탄닌·산도·당도가 높을수록 오크통이나 병 속에서 오래 숙성되면서 더 좋은 와인으로 만들어진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과정에서 ‘기다림’은 중요한 변수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처럼 와인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의려지망(倚閭之望)’, 부모가 자식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심정처럼 기다림은 흘러가는 시간에 기대와 의미를 두는 것이다. 섣달그믐날, 일 년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변화는 내게서 조금씩 시작되는 것이다. 남을 바꾸려하지 말고 나를 바꾸자! 감정을 못 이기고 뱉어내는 나쁜 말을 자제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자.

맛과 향이 없는 소주는 주로 울분을 토하고 싶을 때 마신다. 바로 원샷! 기다림이 필요 없다. 와인은 향과 맛을 즐기는 술, 기다림이 필요하다. 사람은 후각과 미각이 만족되면, 부정적인 생각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를 할 때는 와인을 마시자. 와인은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를 즐기는 술이다. 와인은 낯설고 어려운 외국문화를 외워야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와인 이름, 지명, 품종의 지식을 외우기보다 와인의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 허리를 베어내어 / 봄바람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고운 임 오신 날 밤이 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지금은 곁에 없는 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노래하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시조처럼 와인도, 인생도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으로 더욱 빛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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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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