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41. 와인과 여행

2021.04.04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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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있는 다락방에서 숙성 중인 마데이라 와인.

와인과 여행은 닮았다. 새로운 와인을 마시는 설레임, 가보지 못한 어딘가로 여행하면서 느끼는 떨림이 서로 닮았다. 처음엔 새로움이 좋지만, 점점 낯설고 어색한 것보다 익숙함이 좋아지는 것마저도 닮았다.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행이 고통이나 고난이 아닌 즐거움이나 유람의 의미가 된 건 교통수단이 발달한 19세기부터이다. 실제로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travail로 고통, 고난이다.

현대인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아이디어와 휴식을 찾는다. 때로 성지순례, 오지체험 등 고통과 고난을 통해 다른 의미와 행복을 찾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여행의 의미처럼 여행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로 탄생한 와인이 있다. 포르투갈어로 Vinho da Roda(Round Trip Wine)! 와인으로 ’왕복여행‘을 하면서 점진적인 온도 변화를 통해 복합미를 가지게 된 ‘마데이라’ 와인이다.

마데이라는 포트 와인과 같은 주정강화와인이다. 와인 발효가 끝나기 전 브랜디를 첨가하면, 발효가 중지돼 알코올 도수는 높고 단맛이 나는 주정강화와인이 된다. 발효가 멈추는 시점에 따라 단맛의 정도가 달라지며 와인 스타일이 결정된다.

16세기 후반, 주정강화가 되지 않은 마데이라는 아프리카, 인도로 향하는 상선에 실려 열대지역을 지날 때 높은 온도에 노출돼 금세 상했다. 이후 17세기후반부터 와인의 안정·보존을 위해 브랜디를 첨가한다. 배의 안정성을 위한 ‘밸러스트’로 쓰이고 돌아온 일부 와인이 배 안의 열기에 숙성돼 품질과 복합미가 증대된 독특한 와인으로 변했다. 세계일주 중 뜨겁고 출렁이는 열악한 환경에 변질되어 버려야 할 와인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마데이라’가 된 것이다.

사람은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돌아보며 고뇌하고 방황한다. 외롭고 슬플 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열정적으로 할일을 찾아 나선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고독, 채움이 아닌 비움을 위해 떠나는 여행. 어디론가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앞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 더불어 그 지역 풍미가 있는 음식과 함께할 수 있다면 여행은 새로운 추억과 경험이 된다.

스페인의 뜨거운 열정처럼 무더운 여름. 휴가철이지만 해외여행은 커녕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절. 감염 공포, 자가 격리…. 여행을 쉽게 떠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럴 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심정으로 고통을 견디며 더위를 이겨보자. 순례길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나 말라가 해변에 가지 못해도 타파스(식전에 술과 함께 곁들이는 약간의 음식)에 시원한 까바 한잔이면 나만의 멋진 와인여행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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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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