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46. 구분과 화합, 와인과 사회

2021.04.04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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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숙성 중인 프랑스 루시옹 지역 와이너리.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경쟁우위와 외부 환경을 분석해 소비자 마음속에 제품이나 브랜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연결된 세상에서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는 소비자의 힘과 연대의식이 커지면서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에 끼치는 기업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 기업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포지셔닝은 더는 유효하지 않으며 많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여러 홍보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다차원적 접근방법, 수평적, 포용적, 사회적인 형태로 진화되어야 한다.

포지셔닝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하는 약속이다. 소비자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있어야 한다. 차별화 요소가 없다면 약속은 했지만 지키지 않은 것과 같고 기업 브랜드 가치는 하락한다. 다양한 유형의 비즈니스가 늘어나고, 기술혁명 가속화로 산업 전반에 진행되는 비인격화,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실망 등으로 소비자는 진정성 있는 차별화를 갈구한다. 점점 투명해지는 세상에서 진정성은 중요한 자산이며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진정한 독특함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프랑스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뛰어난 재배 환경에도 있지만, 품질관리체계를 빨리 확립했기 때문이다. 1935년 선포된 ‘원산지 명칭 통제’(A.O.C : Appellation d‘Origine Controlle) 제도는 포도 재배 지역과 명칭, 품종, 재배방법, 단위면적 당 수확량, 양조방법과 알코올 농도 등 원산지별 생산조건을 통제한다. 전통적 고급 와인의 명성을 보호하고, 유명 포도밭 지명 도용이나 명성 있는 생산자가 다른 지역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제조하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 지나친 규제가 생산자의 창의적인 시도에 걸림돌이 되고 새로운 와인 개발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정직한 생산자를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올바른 와인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해 품질과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일을 겪고 정의로운 일, 정의롭지 못한 일을 마주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는 많은 일들.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벤담, 칸트,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거창하게 나열하지 않아도 ‘정의’는 한 가지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복지, 자유, 미덕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수많은 가치와 함께 판단되어야 한다.

와인은 많은 것을 구분한다. 품종, 지역, 토양, 기후, 날씨, 재배방법과 양조방식까지 차별화되고 독특해야만 그 가치가 빛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조금 다르다. 서로 화합할 때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화합하려면 구분하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당하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어젯밤, 와인 한 잔 마시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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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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