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의 와인 테이스팅] 02. 트로트 그리고 보졸레 누보

2021.04.17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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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그리고 보졸레 누보



트로트 가수에게는 가창 실력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흥'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흥’이야말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기도 하다. 더불어 저급한 음악문화 ‘뽕짝’이라는 편견을 이겨내는 힘을 쌓으면서 말이다. 보졸레 누보가 그러하다. 언젠가부터 보졸레 누보는 저가와인 또는 현지 싸구려와인을 몇 배 부풀려 파는 와인이라는 이미지가 뒤따른다. 하지만 내게 보졸레 누보 와인은 품격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지친 이들의 흥을 돋우고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줬던 트로트를 연상시킨다. 

성공한 마케팅의 명암
보졸레 누보는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 보졸레 지역에서 생산되는 햇포도주를 말한다. 프랑스만해도 꼬뜨 뒤 론, 앙쥬, 투렌, 가이약, 부르고뉴, 마콩 같은 지역에서는 첫 수확한 포도로 오랜 숙성이 필요 없는 가볍고 신선한 햇포도주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와인이 바로 보졸레 누보다. 보졸레 누보 와인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마케팅작품이라 칭찬할만한 보졸레 지역 와인생산업자들의 뛰어난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 그 유명한 문구 “보졸레 와인이 막 도착했습니다(Le Beaujolais Nouveau est arrivé)”. 이 간결하고도 명백한 문구를 앞세우고 전세계 소비자들이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를 기다리도록 붙잡아 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졸레 누보의 마케팅은 거품을 불러일으켰고 반감으로 이어져 이제 보졸레 누보는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로 인한 결과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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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보졸레 지역은 누보 와인 말고도 보졸레, 보졸레 빌라쥬, 보졸레 크뤼 와인 가격과 품질 등 다양한 아뺄라시옹이있다. 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막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 등을 필두로 이봉 메트라(Yvon Métras), 쥴리 발라뉘(Julie Balagny) 등 와인메이커들이 생산하는 내츄럴 와인으로 인해 보졸레 와인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보졸레 지역의 앞날에 누보를 생산하는 저급와인 산지라는 이미지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정말 보졸레 누보는 보졸레 지역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미운 오리새끼일까?

장터의 축배 와인 보졸레 누보
원래 보졸레 누보는 축제의 와인이다. 그런데 이 축제가 화려하거나 소란스럽다기보다는 그 본질을 들어가보면 함께 모이는 ‘흥’이 있는 장터의 잔치였던 것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일년 농사를 마친 농부들의 지친 손에 들려 수확을 축하하는 축배였으며 전시에는 피난민들의 향수를 달래주던 위로주가 되었던 술.  즉 보졸레 누보라는 이름 안에는 과거와 시골, 고향에 대한 향수가 담겨있다. 그건 마치 우리가 한가위 하면 송편이나 시골집 밤하늘에 뜬 보름달, 강강수월래를 떠올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보졸레 누보 와인의 정신은 보졸레 지방의 축제를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졸레 지방에서는 보졸레 누보가 출시되는 날을 사이로 120여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그 가운데 가장 리더 격인 축제는 보쥬(Beaujeu)마을에서 열리는 싸르멍뗄(Sarmentelles)축제이다. 이 축제는 불붙은 포도나무 가지를 실은 손수레 행렬로 유명하다. 그래서 포도나무 가지라는 뜻의 싸르멍(Sarment)에서 따와 축제이름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축제가 열리는 날, 그러니까 보졸레 누보가 나오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는 프랑스 전국각지에서 그리고 외국에서까지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햇술의 도착을 축하한다. 가장 순수한 전통이 남아있는 축제라 자부하는 싸르멍뗄 축제는 시청 앞에서 열리는 와인시음 콩쿠르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후 다양한 공연들의 볼거리와 오케스트라 공연들이 이어진다. 음식과 함께 준비한 보졸레 와인을 시음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다. 이제 열한시 십오분. 이 때 보졸레 농민들은 역 광장에 서서히 모인다. 그리고 포도나무 가지에 불을 붙여 주변을 환히 밝힌 다음 불붙은 가지들을 손수레에 싣는 의식이 진행될 것이다. 이 의식은 한 해 동안 포도 경작에 힘써온 농사꾼들에게 명예를 돌리기 위해 내려온 전통이라고 한다. 이들 손수레 행렬은 성당 앞 광장을 향하여 천천히 걷고 관광객들은 그 뒤를 따른다. 드디어 0시. 하늘에서 폭죽이 터짐과 동시에 “보졸레 누보 에 따리베(Beaujolais Nouveau est arrivé)”라는 함성이 터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햇술은 그 곳에 온 모든 이들에게 돌려진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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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이가 드니 트로트가 좋아질까?’ 대한민국을 사는 40~50대라면 이런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저 `분위기 띄우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불렀던 트로트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느 날 문득 트로트의 가사가 마치 쇼팽의 선율처럼 영혼을 울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클래식에서부터 재즈, 대중가요 그리고 트로트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에 같이 모여 있다. 보졸레의 모르공 같은 와인을 마시면 왠지 나도 모르게 반성을 하게 된다. 단단하고 넘치는 파워는 그간 얼마나 보졸레 지역을 과소평가했던 나의 무지를 꿰뚫어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때 보졸레 누보가 우리를 위로해 줄 수도 있다. 때로는 너무 심각하지 않게 마시는 흥에 겨워 마실 필요도 있다. 11월19일. 올해도 보졸레 누보는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이다. 이제부터 축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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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백은주 (Eunjoo Baik)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 워터, 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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