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

2021.05.1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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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

 

와인에 대한 새로운 서적에 어떤 것이 있는지 자주 온라인에서 검색하는 편인데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라는 책이 새로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주 기뻐했다무엇보다도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첫째는와인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거나 와인 테이스팅에 대한 전문용어를 독특하고 재미있게 풀이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책 제목을 통해 짐작했기 때문이다전자의 경우라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둘째는헤르만 헤세의 팬인 내가 아끼는 책 <우리가 사랑한 헤.헤세가 사랑한 책..>의 표지 디자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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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온라인을 통해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에 대한 소개와 목차를 읽어 내려가며 실망으로 변했다내가 기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더구나 이 책에서 소개한 100개의 낱말이 어떤 체계적인 분류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알파벳(번역서이니까순으로 나열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저자 제라르 마종(Gérard Margeon)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데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다더구나 확인해보니 그가 이미 2009년에 프랑스에서 출판한 책 <Les 100 mots du vin>을 이제서야 번역출판한 것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무엇이 이 책의 매력인지가 알고 싶었다광고인 박웅현이 쓴 <여덟 단어>보다 조금 더 비싼 책이지만 이 책처럼 그 가치가 있을 것이고특히 나의 짧은정리되지 않은 와인에 대한 지식을 보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것도 편하게 읽으면서 말이다요즈음 내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어휘 구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짐작했다프랑스 원서가 128쪽인데 원서보다 작은 크기의 책으로 304쪽으로 국내에서 만든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원서의 표지보다 번역본의 표지가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 그 의도를 정당화해주기도 한다또한 무라카미 류의 <와인 한 잔의 진실>보다는 훨씬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와인은 절대 목과 위를 뜨겁게 흐트러놓지 않거든요꽃이 핀 고원의 얕은 여울처럼 몸속에 한쪽으로 녹아들 뿐이죠.” 무라카미 류가 와인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와인 한 잔의 진실>을 읽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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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출판된 원서의 표지>

 

 

보통의 와인서적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와인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주요 와인산지 및 대표적인 포도품종에 대한 설명을 빠뜨리지 않는다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다와인 교육기관을 방문하지 않는 와인 초보자들에게 그러한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는 것은 맛없는 와인을 마시라고 권유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반면에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는 이제 막 와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와인 애호가들에게 먼저 추천하고 싶다한두 번 읽어서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내용 때문에 와인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또한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순서로 읽을 필요가 없다궁금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낱말을 하나씩 읽어가는 것이 좋다저자가 100개의 낱말을 체계적으로 혹은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다저자가 머리말에서 적고 있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는 책계속 반복해서 읽히는 책을 만들려는 의도가 책 전체에 녹아져 있다.

 

저자인 제라르 마종은 알랭 뒤까스(Alain Ducasse) 레스토랑의 수석 소믈리에로 오랜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다그는 소믈리에라는 직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책에서 적고 있다. “소믈리에 업무의 핵심은 소비자의 요구와 기대에 맞춰 와인을 제안하는 일이지만 그의 행동반경은 레스토랑에 한정되지 않는다포도밭을 다니며 다양한 떼루아를 경험하고그곳에서 나는 와인을 시음하는 것도 모두 소믈리에의 업무다.”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에 양조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간결한 필치본질을 향해 직진하는 생각들과장과 허세 없는 담담한 논평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고 싶게 만드는 짧고도 유려한 에세이다가장 중요한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걸 버릴 줄 아는 전문가의 단호함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이렇게 출판사의 리뷰에 적혀있다공감하는 내용이다러시아 태생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Marc Rothko)는 색면 추상이라고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인데 그는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했으며이러한 이유에서 ‘Simple is the best’라는 디자인 철학을 가진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간단하고 짧은 글로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많은 경험과 깊은 이해 그리고 효과적인 전달능력과 풍부한 어휘력을 필요로 한다.

 

<와인을 위한 낱말 에세이>는 와인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에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평범한 와인 서적을 지양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책이나 글을 쓰는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고이해하고 있는 지식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가 아닌 것처럼. “유사 이래 인간은 항상 와인을 마셨다알코올이 선사하는 도취감 때문에 그토록 와인을 즐겼는지도 모른다아니인간이 와인을 사랑하는 더 큰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가치와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각양각색의 풍미를 와인에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와인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 부분이 간결하면서도 얼마나 멋진가프랑스에서 2009년에 출판된 책이 이제야 국내에 번역출판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Wine Folly처럼 인포그래픽을 활용하는 것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언어와 문학이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언어적으로 매력적인 와인에 대한 글이 앞으로 새로운 지평선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독일의 형법 및 법철학 학자인 프리트요프 하프트(Fritjof Haft) <법학 학습 입문(Einführung in das juristische Lernen)>에서 처음 시도하고 <형법총론(Strafrecht, Allgemeiner Teil)>에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앞으로는 도표와 정확하면서도 간결한 언어를 사용한 책이 등장할 것을 기대해본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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