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와인의 역사(1)

2021.05.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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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열세 번째’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1)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와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알게 되는 것은 모두 프랑스, 이태리와 그 외에 스페인과 독일 등의 나라들의 역사들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외국의 와인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와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책에도 별로 안 나와있고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아주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와인의 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현대의 역사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구도 시원한 답변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와인 문화가 대중화되지 못하였고 또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들이 없어서 수십 년 전의 일들인데 과거에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점점 더 잊혀진 세월이 되어서 우리나라의 와인 문화는 뿌리를 알기 어렵게 되고 말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와인이 대중화는 되지 못하여 와인이 많이 소비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틀림없이 많이 소비되고 와인 애호가들도 늘어나게 되어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도 와인애호가들이 궁금해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20대 층에서는 이미 수입 외국 와인에 길들여졌고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국산 와인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30대 후반과 40대 이상의 와인 애호가들은 제법 유명했던 국산 와인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온 많은 분들께서도 기억을 회상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 와인의 역사를 가능한대로 정리해 보겠다. 사실 이러한 일은 국내 와인 생산 회사나 와인 수입회사가 해야 할 일이지만 다들 장사하기에만 바쁜 기업들이라 생각을 못하고 있는 듯하여 필자라도 이 일을 나름대로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력은 하지만 개인이 하는 일이라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 구분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는 고대, 근대와 현대의 시대로 구분해볼 수 있다. 고대란 고려시대와 이조 시대 등의 와인 역사로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 시대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과거의 기록에 의존해서 알아볼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근대란 대개 해방 이후에서 80년대까지의 역사이며 국산 과실주와 와인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때의 일이라 경험한 분들이 많이 생존하고 있어서 증언을 토대로 알아볼 수 있는 시대이다. 현대란 와인의 수입이 개방된 이후의 최근의 시대로 1988년 올림픽을 전후해서 와인이 정상적으로 수입되면서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세가지로 크게 구분해서 알아보겠다.


1.한국 와인의 고대사(해방 이전 와인의 역사)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에는 주로 정치, 사회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공부하여서 시대별 음주 문화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다른 주류에 관한 자료는 제법 많이 찾을 수 있으나 와인에 관한 자료는 찾기가 무척 어렵고 제대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중국은 오랜 와인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BC 2 세기경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여 마셔왔다. 특히 귀족 사회에서는 아주 귀한 물품으로 취급되었다. 중국과 여러 면에서 교류가 많았던 우리나라에서도 포도 재배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와인이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구체적인 기록은 많지 않으나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에게 중국 원나라 세조가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충숙왕이 몽고의 공주를 맞아들일 때에 원나라의 황제가 하사한 포도 씨를 심었으나 당시에는 포도 재배 기술을 몰라서 재배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내에서 포도가 재배되고 와인이 양조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나 언제부터 포도를 재배하여서 와인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조 인조 시대 호조 판서인 김 세렴이 대마도 도주와 포도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효종 때에는 하멜이 표류해오면서 네델란드에서 적포도주를 가지고 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1866년 독일 상인인 오펠트가 포도주와 샴페인을 들여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구한말 기독교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포도주와 포도 나무를 가지고 와서 포도를 재배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미사 등으로 와인의 수요가 많은 천주교에서 초기에는 유럽의 와인을 가지고 와서 사용하였고 이때에 사용하였던 오크 통들이 오래된 수도원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나중에는 신부들과 수도원의 수사들에 의해서 수도원 인근에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1906년 뚝섬에 원예 모범장이, 1908년 수원 권업 모범장이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일찍 서양에 신사유람단을 보내어서 서양의 문물을 도입하면서 포도와 와인 산업도 돌아보고 왔기 때문에 1875년에 이미 포도 재배를 많이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묘목을 가지고 와서 포도를 재배하고 상당히 많은 와인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18년 경북 포항, 지금의 비행장 자리에 포도원을 조성하고 적포도주를 생산하였으며 “아카다마”라는 와인을 생산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량으로 포도를 재배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한국 와인의 근대사(해방 이후부터 1970년 중반까지 근대의 국산 와인의 역사)
이 기간은 해방 이후에 과실주를 생산한 전반기와 포도로 만든 국산 와인의 전성기였던 후반기로 구분을 할 수 있다. 


2.1.전반기
이 기간은 우리나라가 참 가난했던 시기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기 전이고 또 외환 사정이 좋지 못하여서 정부에서 모든 주류의 수입을 일체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인이 정상적으로 수입이 되지 않았고 또 국산 와인의 생산은 미미하였다. 관광 호텔들에서만 와인을 취급하였는데 이는 관광호텔 협회에서 회원들의 와인 수요량을 파악하고 협회 차원에서 수입하여서 각 호텔로 배정하였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외화 획득을 위하여 관광호텔에서는 와인을 정상 취급하였다. 그러나 이시기에도 관광호텔 이외의 시중 경양식 식당에서 가끔 외국 와인을 취급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정상 수입품이 아니고 대부분 미국 PX에서 흘러나온 부정 주류들이었다. 지금도 연세 좀 드신 분들은 젊었을 때에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마신 일이 있었을 것인데 이들 와인이 모두 부정 주류들이었다.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미제 아줌마들을 통해서나 혹은 양키 시장 등에서 와인을 어렵게 구할 수는 있었다.
 
이 당시에 포도가 아닌 과실로 만든 과실주는 몇 군데에서 생산이 되고 있었다. 당시에 전국에서 사과가 가장 많이 생산되던 대구의 동촌에 소재한 파라다이스㈜에서 1969년 사과로 애플 와인인 “파라다이스”가 생산되어서 서울의 젊은이들 사이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고 신문과 라디오 등에서 광고를 하였다. 지금도 과거를 회상해보면 어렴풋하게 “애플 와인 파라다이스”라고 하는 광고의 기억이 떠오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과가 많이 생산되어서 “사과” 하면 대구를 떠 올렸었는데 지금은 대구에서는 사과가 거의 생산되지 않고 이제는 안동, 청송 또 더 북쪽 지방인 강원도, 경기도 등지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드는 일이다. 또 대구 인근의 경산에 있던 태양주조에서도 “태양사과주”를 생산하였다. 대구와 경산에 있던 이들 2개 공장도 견학했는데 생산 공정과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칼라가 금방 갈색으로 변하고 산화취가 많은 술이었으나 당시에는 꽤 인기가 많은 술이었다.

또 옛날에는 “딸기” 하면 수원, 일산, 송추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었는데 특히 수원의 서울농대 인근에서 딸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당시에 수원 농대 인근에서 딸기로 만든 “그린존”이란 딸기 와인이 생산되었다. 1975년으로 기억되는데 수원 농대 인근의 딸기주 공장을 방문해 본 일이 있었다. 딸기를 발효하고 술을 만든 뒤에 병에 담아 살균을 하는데 큰 솥에 물을 데우고서 그 속에 병을 담가서 살균을 하는 등 참 고전적 방법으로 술을 만들고 있었다. 칼라도 금방 변하고 맛도 산화취와 열 처리 향이 많이 나는 술이었다. 당시에는 주로 막걸리와 소주들이 많이 소비되던 시대라 과실주의 문화가 형성되지 못 하여서 음주가들의 큰 관심은 받지 못하였다.  

순수하게 포도로 만든 국산 와인의 역사를 보면 1968년 현재 농수산물 유통공사의 전신인 농어촌개발공사가 일본의 와인메이커인 산토리㈜와 합작으로 한국산토리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일본 산토리의 기술 지도하에 대전시 월평동의 공장에서 선리 포트, 선리 로제, 판 포트 등의 와인을 생산하였는데 이 와인이 한국에서 상업적 처음 생산된 국산 와인이다. 한국산토리㈜에서 생산한 와인과 브랜디의 가격은 당시로는 너무 비싸서 판매가 부진하였고 이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농어촌개발공사는 이 회사를 1973년 해태주조㈜에 매각하였다. 회사를 인수한 해태주조㈜에서는 1974년부터 해태 노블 와인을 생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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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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