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오주석’의 와인 에세이 ‘열두 번째’

2021.04.22 최고관리자
이탈리아 0 68


손님의 품격

 

 

볼로냐는 별칭이 많다.

뚱보의 도시.

미식의 도시.

대학생의 도시.

붉은 벽돌과 회랑의 도시.

볼로네제 스파게티와 샐러미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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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개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 봐도

가려고 하는 장소는 나타나지 않았고

비를 맞고 땀을 흘리며 찾아간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다.

배는 고프고

야속하고

답답하고

절망하고

실망했다.

모든 상황에 대한 실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고

삐딱하게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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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걷다가 보니

도시를 이루는 큰 탑들과

붉은 벽돌의 건물

끝없이 이어지는 회랑과 작은 다락방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누비는 학생들

시장 한편에 펼쳐진 다양한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놓치고 있는 어떤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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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려놓고 발견하기.

예상하지 않은 우연에 맡기기.

일찍 숙소로 돌아가서 몸이 회복될 정도로 푹 잤다.

그렇다잠이 보약이다.

기운을 차린 다음날.

도시는 이곳을 찾은 손님에게

조금씩 문을 열어주었다.

하늘은 구름이 물러가고 난 틈새로

푸른 빛을 보여주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찾은 식당은

우리를 위한 회랑쪽 자리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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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도 하기 전에

주인장은 우리에게 시칠리아 화이트 와인을 권했다.

시트러스 향과 깔끔한 피니쉬와 적당한 산미.

역시.

오늘 준비된 요리는 몇 가지가 있는데

뭐가 좋을까?

양이 적다면 1인분으로 쉐어하면 어떠냐고 묻는다.

메인 음식에 어울릴 와인을 추천하면서

지하에 있는 셀러에 가보라며 은근 자랑이다.

왜 이곳이

볼로냐에서 유명한 곳인지 느낄 수 밖에 없을 정도의

방대한 와인과 유명인들과의 기념 사진.

시칠리아 출신임이 분명한 주인 아저씨의 응대.

토스트에 올리브 오일과 뿌려진 소금에서 느꼈던 그 아삭한 식감은

기어코 모 브랜드의 토스트기를 거금 주고 사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음식과 서비스심지어 계산 때 보여준 주인장의 셀프 디스카운트

그리고 마지막 한잔의 그라파는

볼로냐를 다시 가야 한다는 마음에

도장을 남기는 세러머니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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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손님들을 위해서

우리는 아침부터 장을 가고

좋은 재료를 고른다.

인생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와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 충분히 행복하다.

근데어떤 손님들은 바빠서혹은 배가 너무 불러서,

낮이라고스파게티 하나만 먹고 이곳을 떠난다.

안타깝다.

잊지 못할 와인과

맛난 음식이 있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가?”

주인장이 나에게 한 이야기다.

 

일일이 손님들을

심지어 우리와도 허그를 하며

언제든지 볼로냐를 찾으면 다시 오라는

그 가식 없는 인사는

먼 길 떠나냐 하는 여행자에게는 배부름 이상의 힘이 된다.

 

손님은 주인장에게 잠시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즐기는 것,

그것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2016 12월 초볼로냐를 기억하며.

 



WRITTEN BY 오주석 (Jooseok Oh)

TBWA Korea Experience Content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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