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9)

2021.04.25 최고관리자
프랑스 0 157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시골길을 가다가 한 허름한 집에 들른다. 놓쳐버린 점심 끼니를 묵밥으로 채우려 진흙으로 물들은 마당에 차를 주차하고 처마끝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뒷목덜미에 묻히고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식당 안에 손님도 없고, 나를 반겨주는 직원이나 사장도 없이 눅눅한 공기만이 나를 반긴다. 눈에 띄는 그나마 깨끗한 테이블에 앉아서 누군가 나에게 와서 주문 받기를 기다린다. 나이 지긋하진 할머니 한 분이 낮잠을 주무시다 깬 듯 때묻은 앞치마를 두르면서 방에서 나오신다.

“혼자야?”
“네?”
“혼자 밥 처먹으러 왔냐고?”
“네?”
“넌, 인간성이 더럽니? 친구도 없이 혼자 밥 처먹으러 다니고……”
“네?”
“기다려.”
“주문 안받으세요?”
“묵밥 집에 묵밥 처먹으러 온 거 아냐? 짜장면 처먹으려면 짜장면 집에 가고, 스테이크 처먹으려면 레스토랑에 가고……”

그리고는 주방으로 들어가신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면 “니가 갖다 처먹어. 넌 손모가지 없어?”, 
“얼마예요?”라고 하면 “돈 많으면 많이 내고, 없으면 다음에 와서 더 내."
한국에서 욕쟁이 할머니 맛집에서 흔히 벌어지는 대화 내용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2년 전 방문했던 샤토 시몽(Château Simon)이 바로 프랑스 판 욕쟁이 할머니 와이너리 같았다. 
물론 할머니는 필자에게 무례하거나 욕을 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샤토 시몽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샤토 시몽 이름만 가지고 작은 시골 포도밭길을 찾아 헤매고 헤맸다. 처음에는 헤매는 시골길도 아름답고 정겹더니 계속 뺑뺑이를 도니깐 점점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쪽 편에 전원일기를 보면 농촌 아저씨, 마줌마들(응삼이, 회장님 둘째 아들, 복길네, 부인회 회장 등등)처럼 몇 명이 무리 지어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었다. 시골 냄새가 물씬나는 곳이 었다. 

필자는 그 농촌 아저씨, 아줌마들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는 샤토 시몽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한 아저씨가 웃으면서 "사이몬 엔 가펑클?"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농촌틱한 농담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순수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필자는 그 농담을 한 아저씨보다 더 크게 웃으면서 "맞아요." 하고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자 필자에게 “이쪽으로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하면서 열심히 샤토의 위치를 알려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농촌 개그맨 분이 알려준 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찾고 있던 ‘Château Simon’이라는 조그만 푯말이 바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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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로 들어가는 입구는 나름대로 조경을 잘 해놓았다. 
부티크 같아 보이는 곳 안으로 들어가니,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할머니 한 분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계셨다. 전자 계산기로 곗돈이라도 들어온 것 계산하듯 완전 몰입상태이었다. 

필자가 말을 걸면 혼동될까 봐 잠시 기다렸다. 할머님 또한 필자가 온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난 듯 할머니는 필자에게 “뭔 일이래?”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와인 테이스팅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당연하지.”하면서 의자에서 힘 겹게 일어나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손님이 오면 습관처럼 오크통 숙성고에 바로 전깃불을 켜시는 것처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전깃불을 켜고는 바로 와인 테이스팅 하는데로 혼자 걸어가셨다. 

오크통은 관심 있으면 알아서 보고, 사진 찍고 싶으면 사진 찍고, 빨리 와서 테이스팅 하라는 아주 몸에 익숙한 행동들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할머니가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연세 때문에 모든 일이 귀찮은 것 같은 느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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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크통 숙성고 사진을 몇 장 찍고는 테이스팅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할머니는 와인 네 병를 꺼내시더니, "뭐 마실래?" 하는 것이었다. 설명도 없었다. 그냥 "니가 알아서 마셔."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필자는 맨 오른쪽에 있는 레드 와인을 가리키며 "이 것부터 맛 좀 봐도 될까요?" 했더니, 할머니는 필자에게 코르크 스크류를 건네 주시면서 "따서 마셔."하는 것이었다. 진짜 배 속에서부터 웃음이 나왔다.

필자는 "네! 할머니."하고는 능숙한(?) 솜씨로 코르크를 땄다. 그러자 할머니는 필자에게 잔을 내밀며 "따라봐."하는 것이었다. ㅎㅎ 아니 누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지…… 그렇지만 할머니의 행동이 전혀 밉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먼저 당신이 와인 맛을 보고는 필자에게 "마셔."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와인 테이스팅에서 중요한 절차 중의 하나인 호스트가 와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다음 손님에게 와인을 권하는 매너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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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와인 테이스팅이 끝나자 할머니는 필자에게 다시 코르크 스크류를 주시면서 "또 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겹고 마음 편안한 샤토는 프랑스에 많지 않을 것이다. 두 개의 와인 테이스팅을 끝내고, 할머니는 소테른 와인을 권하셨는데 사양했다. 필자가 샤토 시몽을 방문했던 이유는 스위트 와인을 맛보러 간 것이 아니고, 레드 와인을 사러 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샤토 시몽이 위치해 있는 곳은 Barsac이라고 하는 곳이다. 보르도에서는 40km 남쪽에 위치해 있고 달착지근한 와인을 생산하는 소테른 지역에선 차로 10분 거리 정도 밖에 안 걸린다. 

Barsac, Sauternes, Bommes, Fargues 그리고 Preignac이라고 하는 다섯 지역의 조합이 있다. 
이 다섯 지역의 조합은 Sauternes Appellation을 지키기 때문에 와인 병에다가 Sauternes이라는 AOC를 적는 것이 허락되어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 흥미가 있던 것은 샤토 시몽에서 생산하는 스위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샤토 시몽은 1814년부터 와인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가족 중심 단위의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샤토다. 그리고 바르삭 지역 이외에 그라브 지역에도 포도밭이 있기 때문에 그라브 아펠라씨옹의 레드 와인을 맛 보기 위해서 필자는 샤토를 방문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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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맛을 본 레드 와인을 구입하기 위해 “할머니, 조금 전에 마셨던 2007년 산으로 두 병 주세요!”라고 와인을 부탁했다. 할머님은 필자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좀처럼 나오질 않으셨다. 한 3분만에 모습을 드러내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없어."였다. 

"다른 것 사려면 사고, 아니면 그냥 가."하시는 것이었다. 필자가 좀 망설이자, 또 한 병을 따라고 하는 것이었다. 맛보고 사가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할머니 괜찮아요. 그냥 이걸로 한 병 주세요."하고 2008년 와인을 사가지고 왔다. 정말 재미있는 할머님이셨고, 아마도 다른 와이너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할머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리고 2년이 지난 지난해 11월에 다시 샤토 시몽을 찾았다. 바뀐 것은 없었다. 
들어가는 길 입구에 조경이며, 샤토의 페인트 색이며…… 옛날 이 났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볼까? 아마도 몰라보실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티크 안으로 들어갔다.생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신발들이 쭉 늘어져 있으며 문 안쪽에서 애들 노는 목소리, 어른 목소리가 섞여서 마치 설날 식구들이 모여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옛날 할머니하고 와인 테이스팅을 했던 곳에서는 젊은 남자가 이미 온 다른 두 손님에게 와인을 열심히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필자도 또 와인 한 잔 먹기 위해 그 쪽으로 향했다. 젊은 남자는 필자에게 “와인 테이스팅 하게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옛날처럼 “레드 와인 한 잔 주세요.”라고 하자, 그 남자는 “스위트 와인이 아니고 레드 와인요?”라고 되묻는다. 레드 와인을 받으면서 필자는 그 남자에게 “여기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라고 물으려다 아차 싶어서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신발이 널부러져 있는 곳으로 갔다. 필자의 눈에는 할머님들이 신을 것 같은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목소리도 들리지가 않았고. 아마도 할머니는 잠시 외출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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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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