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13)

2021.04.25 최고관리자
프랑스 0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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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유튜브를 통해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 하나가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30분에 ‘TV 조선’에서 방영되고 있는 ‘낭만논객’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김동건 아나운서 그리고 가수 조영남씨가 토크 식으로 진행하는 방송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김동건 아나운서가 운을 띄우면서 밥상을 차리면 조영남씨가 중간 중간에 반찬 몇가지를 올려서 상차림의 구색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김동길 교수님이 차려진 밥상을 정리하듯 교훈적인 멘트로 마무리를 하면 시청자들이 맛있고 즐겁게 소화시킬 수 있는 그런 식단 같은 프로그램이다. 

특히, 김동길 교수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멋에 대해서 자주 말씀을 한다. 멋이 정신적인 면일 수도 있고 물론 물질적인 면일 수도 있다.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으로 멋에 대해서 풀이를 하실 때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남는다. 내 개인적은 생각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김동길 교수님이 살아오신 지나온 세월은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 분의 옛 이야기들을 할 때의 포용력 그리고 어려운 영문시를 철자 하나 틀리지 않고 읊는 포스, 그리고 누구에게도 좀처럼 쉽게 설득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은 누가 감히 평가를 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 이야기를 하실 때만큼은 너무나도 평범한 한 소년으로 되돌아가시는 듯하다.

그리운 어머님에 대해서 또는 누님이셨던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님 이야기를 할 때의 모습은 철학, 이념, 문화 등등의 단어로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한 소년이 어머님 그늘 아래 있었던 지난이야기 또는 핏줄이셧던 누님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남동생의 입장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느낀다. 

어떤 요소들이 사상적으로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김동길 교수님을 그렇게 아주 평범한 소년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아닐까 싶다. 가족에 대해서 생각하는 감정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이 본인이 살아가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서 주위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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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드 로이약(Château Rouillac)을 방문했다. 거리로 계산하자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여섯 번째로 가까운 샤토일 것이다. 구슬비가 오락가락하는, 조금은 늦은 오후에 샤토에 도착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투어를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샤토는 쌍두마차를 준비해서 아이들 또는 방문객에게 샤토 한 바퀴를 둘러 볼 수 있게 배려를 해 놓았다. 내가 참여했던 그룹은 정확히 몇 명인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40명은 충분히 넘었다. 직원의 설명도 잘 안 들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집중도 안됐다. 게다가 소변도 마렵고 해서 그 그룹에서 빠져 나와서 화장실을 찾았다. 
밖으로 나오니 샤토 직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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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물 좀 빼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되나요?”라고 묻자, 직원은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고리 그리”로 가라는 것이었다. 손가락 지도를 따라 화장실 문 앞에 도착하니 나와 같이 수력발전소 댐 문을 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물론 전부가 똑 같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프랑스의 화장실은 남, 녀가 같이 사용하는 곳이 제법 많다. 왜 그런걸까?

샤토 드 로이약의 화장실도 38선 같은 남, 녀 구분 없이 수력발전소 댐 문을 여는 시스템이었다. 화장실 안에 있는 사람, 그 문 앞에 여성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내 앞에 할아버지는 수력발전소가 아닌 계란 노른자를 빼야 할 것 같은 얼굴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앞의 할아버지 순서가 되서 6~7분 기다리니깐 내 차례가 됐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내 앞의 할아버지는 계란 노른자를 터트렸다. 

나도 내 몸의 수위조절을 하고 다시 내 투어 그룹으로 되돌아가니깐 어디로들 갔는지 40여명의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하는 생각도 잠시, 그다지 찾고 싶지도 않았다. 
투어 그룹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효율적인 투어가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나’하고 조금은 갈팡질팡하는 사이 몇몇 사람들이 어떤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궁금해서 쫓아 들어가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와인 테이스팅 룸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마도 내 그룹의 앞 그룹의 사람들인 듯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샤토 직원이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룹의 여성 직원은 화장품 광고에 나가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얼굴이 예뻤다.

젊은 여성은 사람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열심히 와인에 대해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면서도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페팅 조끼를 입은 한 중년 남자가 환갑잔치 사회자처럼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면서 그 샤토 여성직원의 모습을 너무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양 손으로 잡고 두 팔을 높이 들어서 여직원만을 향해서 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샤또 직원이 무안할 정도로 저렇게까지 사진을 찍어야하나?, 하여간 수컷들은 다 똑같다니까. 예쁜 건 알아가지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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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테이스팅룸도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 신도림역만큼이나 사람들로 붐볐다. 
무엇을 마시는지도 모르고 세 종류의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는 나혼자 밖으로 나왔다. 
그냥 혼자 여기저기 샤토에 발자국이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샤토의 이곳 저곳 뚜껑을 열어보았다. 

샤토의 한 쪽 구석에 마장 마술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그 앞쪽으로는 마방(馬房)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말 한 마리는 세상 일이 궁금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빼꼼이 창문 밖으로 내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호기심에 마방(馬房)안으로 들어갔다. 

고시촌 같은 1평 남짓의 공간이 즐비하게 있고 그 안에는 말 여덟 필이 지푸라기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방의 한 쪽에서 한 남자가 말 한마리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었다. 가위로 수평에 맞춰서 털도 잘라주고, 발에 매니큐어(페인트) 칠도 해주고 마치 ‘말 미용실’ 같아 보였다. 

나는 그 남자에게 말들에 대해서 말을 걸었다. 그 남자는 내 질문에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정성을 쏟는 이 말은 샤토 주인의 말이라는 것이다. 궁금해서 가격도 물었다. 제네시스 몇 대 살 정도의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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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때 조금 전 와인 테이스팅 룸에서 페팅 조끼를 입고 예쁜 여직원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대던 그 사람이 마방(馬房)으로 들어 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 말고 마방(馬房)에 있던 다른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말을 관리하던 남자는 나에게 이 말이 그 남자의 말이라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요?”라고 묻자, “저 사람이 여기 샤토의 주인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샤토 주인이 직원 사진은 뭐하러 그렇게 미친듯이 찍었던거야?” 구시렁거리면서 ‘사진 한 방 찍자고 할까?’ 하다가 다른 사람들과 재미있게 이야기 하길래 말았다.


나는 마방(馬房)을 나와서 샤토 안의 구석구석의 사진을 찍고는 와인을 사기 위해 부틱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틱 안에 페팅 조끼 입은 샤토 오너가 조금 전 사람들에게 와인에 대해서 설명한 예쁜 여직원과 같이 웃으면서 나란히 서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 팔은 직원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로 말이다. 얼굴 표정에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미소와 함께! 그러면서 내 귀에 들린 소리 “아빠, 저 와인 박스 이쪽으로 옮길까봐? 사람들 다니는데.” 그 예쁜 샤토 여직원(?)은 샤토 오너의 딸이었던 것이다. 

샤토의 딸이 그 날이 특별한 날이어서 인지 아니면 매일 샤토 일을 그렇게 돕는 건지는 물어보질 않아서 모른다. 그렇지만 아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샤토에 대한 설명 그리고 와인에 대해서 얼굴이 상기될 정도로 열심히 설명하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뿌듯했을 것이다. 

더욱이 같은 공간에서 딸하고 같이 일하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행복했기 때문에 그렇게도 열심히 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가족이 아닐까? 행동하는 양심가, 살아가는 멋을 아는 김동길 교수님을 평범한 한 소년으로 만드는 가족간의 정(情)이 분명히 이런것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한 지붕아래에서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다. 그런데 크지도 않은 우리 집에서 우리 애들을 보는 시간은 점심, 저녁 먹을 때가 전부일 것 같다. 나도 샤토를 사서 말을 키우던가, 아니면 집에 있는 인터넷, 스마트폰, 타블렛, TV 등을 없애버리면 가족들 얼굴 볼 시간이 많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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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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