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아홉 번째 - 샤토 아르삭(Château d'Arsac)’

2021.04.25 최고관리자
프랑스 0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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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아홉 번째 - 샤토 아르삭(Château d'Arsac)’



이번에는 대하소설 분량의 샤토 아르삭(Chateau d’Arsac) 방문기를 기록해보자. 

때는 이천십오년 을미년 11월 어느 금요일 오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오후 2시에 샤토 방문 예약을 해놓은 상태다. 

샤토와 포도밭을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 먹을 시간이 살짝 지난 오후 1 5분에 시계 바늘이 쉬고 있었다. 2시에 샤토를 방문해서 투어가 시작되면 1시간 정도 소요되니까 투어가 끝나면 3, 그렇다면 지금부터 3시까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졌다3시까지 안먹고 참기에는 내 위에 너무나 혹독한 훈련을 주는 것 같아 바로 빵집 수색에 나섰다.

 

마고(Margaux)에는 내가 자주 가서 사먹는 빵집이 하나 있다. 가격 착하고, 맛 효자인 집이다. 

빵집으로 들어가니 시간이 늦어서인지 선택할 빵 종류가 많지 않아 큰 바게트에 치즈만 올려져 있는 것을 골라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오늘도 점심은 차에서 빵이구나! 그래도 먹을 수 있는 게 감사할 일이지.” 이렇게 혼자 주절거리면서 꾸역꾸역 사온 큰 바게트를 다 먹었다. 

굶주렸던 내 배는 스폰지가 물 빨아들이듯 큰 바게트를 다 빨아들였다.

 

그런데 배에서 신호가 왔다. “에이~ 너무 많이 먹었나?”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마고지역에 내가 알고 있는 샤토 한 곳에서는 건물 밖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직원들 눈치 볼 것 없이 이용하면 되니까. 더 급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재빨리 알고 있는 샤토로 출발했다. 


샤토에 도착해서 거의 뛰다시피 해서 화장실 문을 여니까 다행히 문은 아무 거부 반응없이 열리는 것이다. ~ 하고 큰 한 숨 한 번 내쉬고 화장실 안에서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잠시 후 문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지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모든 근심걱정을 떨쳐버리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이런 젠장 문이 안열리는 것이었다. , 잠깐만 이건 아니잖아! 손잡이를 아무리 돌려도 돌아가지가 않는다. 조금 전 밖에서 들렸던 사람들 소리는 직원이 화장실 문을 잠그는 소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저 앞쪽 샤토 건물 옆으로 누군가 한 명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 손짓만 크게 했지만, 그 사람은 나를 못 본채 10초도 안돼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딱 떠오르는 생각이 무인도에 고립됐을 때 헬리콥터가 나를 못보고 그냥 지나치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였다. 화장실에 갇힌 채 샤토에 전화를 걸어도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화장실 옆이 바로 샤토 사무실이라서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사무실 안쪽에서 전화벨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지만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샤토 직원들도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간 것 같다. 


이곳 샤토 직원들이 점심 먹고 오면 2, 샤토 아르삭 예약도 2, ~ 진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3평 남짓한 화장실 공간에서 별별 생각이 다들었다. 동물원의 작은 우리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동물들의 심정도 알겠고, 자유라는 게 얼마나 맛이 있는 단어인지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지금이 오후 2시 전이라서 직원들이 점심 먹고 다시 올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금이 오후 5시 이후라면 유리창을 깨기 전에는 혼자서 토요일, 일요일을 화장실에서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그 샤토는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2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젊은 남녀 4명이 화장실 앞을 지나가는 것이다. 그 네 명도 샤토를 방문하기 위해서 왔나보다. 


쪽팔리게 문을 크게 두드릴 수는 없고, 들릴 정도로만 최대한 얌전한 척 문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젊은 애들은 나의 신호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 큰일이다, 저 친구들을 놓치면 안 된다는 각오로 문을 세게 걷어차다시피 했다. 드디어, 내가 갇힌 화장실 쪽으로 일제히 쳐다보는 것이다. “살았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젊은 친구들은 문 앞까지 왔다. 닫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판문점 남북회담이 이루어지듯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친구들 얼굴에는 두 가지 표정이 비벼져 있었다. 안타까움과 재미있는 웃음!

 

남자 한 명이 나를 안심시키더니 어디론가 가서는 5분만에 샤토 직원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젠장 하필이면 그 샤토 직원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샤토 직원은 조금은 당황하면서 황당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나보고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라고 물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서 무안해서 가능하면 빨리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샤토 직원은 반복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복잡하고도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샤토 직원에게 방문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투어가 가능하냐고 묻고, 직원은 예약이 벌써 다 찼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샤토를 떠났다. 30분 동안의 시간에 나의 감정 변화는 이랬다. 황당-조바심-분노-걱정-포기-반가움-환희의 맛을 테이스팅 한 시간이었다.

 

샤토 아르삭 예약시간에 늦지 않게 가려고 열심히 달렸지만 가을 포도나무 단풍이 나를 쉽게 보내주질 않았다. 게다가 새로 구입한 카메라를 자꾸 사용하고 싶어서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아직 달려있는 포도의 맛도 보았다. 그러면서 2시에 정확하게 샤토에 도착했다. 샤토 직원은 10분 정도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입니다. 포도밭 사진 좀 찍고 있을게요.” 하고는 포도밭에 놓여져있는 조형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는 다시 샤토 투어 시작 장소를 되돌아오는데, ! 이게 왠일인가? 조금 전 화장실을 사용한 샤토에서 나를 구해주었던 젊은 친구들이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샤토에서 투어를 못해서 이 샤토로 왔나보다. 아니 그런데 메독에 있는 수많은 샤토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이 샤토냐고 오늘은 진짜 하루 종일 쪽 팔리는 일만 생기네! 그 젊은 친구들도 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 활짝 웃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거울로 내 얼굴 표정을 직접 봤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사진으로 찍어놓고 싶었다. 이렇게 긴긴 스토리를 각본으로 만들어놓고 샤토 아르삭의 투어는 시작됐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메독 지역에 가면 와인 만드는 샤토와 포도밭만 있다.”라고. 차를 타고 가도가도 포도밭이고, 걸어도 걸어도 포도밭이다.”라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샤토 아르삭은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라는 이미지보다는 주말에 도시락 준비해가서 하루 쉴 수있는 예술 공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샤토 아르삭은 메독 지역과 보르도를 연결하는 큰 도로 D1215 D2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메독 지역으로 가는 D1215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La Winery”라고 하는 오렌지색 간판의 와이너리가 있는데, 이 와이너리를 가기 2분전쯤 해서 우회전하면 있다 (설명이 좀 애매하긴 하지만, 요즘은 GPS가 잘 되어있으니…). 내가 “La Winery”를 예로 든 이유는 두 와이너리의 오너가 같기 때문이다. 라 와이너리는 메독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대식 건물의 와이너리이다.

 

샤토 아르삭의 건물이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다. 이곳에는 와인이 오크통에 들어가서 숙성되는 곳이다. 또다른 전통 스타일의 샤토 건물도 쉽게 눈에 띤다. 

이곳은 주로 리셉션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플라타너스 나무와 소나무가 조화롭게 잘 정리정돈된 길을 따라 샤토 안으로 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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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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