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와인

2021.05.0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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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와인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쓰는 셈이다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수준의 아주 오랜 시절에 그리스 와인에 대해 잠깐 끄적거린 기억이 있다이제 유럽 지중해 연안의 대표적인 국가인 로마 제국의 와인에 대해 살펴 보자


와인의 세계화 효시가 고대 그리스였다면 진정한 세계화의 완성은 고대 로마 제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로마 제국의 성장은 와인 제작에 있어서 기술적인 발달은 물론 와인 제작과 관련된 지식을 현재와 유사한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계층화 된 사회 구조를 가지는 로마 제국은 귀족평민노예이방인에 이르기까지 유럽 대부분의 전 지역에 걸쳐서 와인이 이용될 수 있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특히 기독교의 국교화 이전 단계에는 성서에 입각한 절제된 생활과 금주의 권장이 희박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와인 그 자체는 일상적으로 물처럼 음용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자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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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의 유적들로마 제국 이전 가장 강력한 세력을 확보하던 북아프리카의 도시 국가이다.


로마제국이 성장하기 이전 단계의 이태리는 전술한 그리스특히 미케네 계열의 그리스 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시기였고주로 남부 지역의 해안가와 시칠리아 섬을 중심으로 선진 그리스 문명이 유입되고 있었다그러다가 토착 이태리 인인 에트루리아족들이 고대 그리스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화를 이루면서 현재 이태리 반도의 중부에 해당하는 라티움 지역과 투스카나 지역까지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이 확산되었다


이태리 반도는 중부의 척추와도 같은 아펜니노 산맥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 그리고 남부의 저지대에서 모두 포도 재배가 가능하다또한 그리스 못지 않은 해상 무역의 입지 조건이기 때문에 군소 도시 국가 난립과 유통 중심의 그리스에 비해 비교적 일관되고 체계적인 와인의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었다.

 

기원전 8세기경부터 중부 라티움 지역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로마는 그 후 공화정을 거치면서 영토 확장을 이루고 카이사르의 사망 이후 제정 단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제국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집단 취락에서 왕국을 거쳐 공화정 기간 동안의 초창기 로마는 당시 그리스 도시 국가에 원재료인 포도를 공급하는 농업 기반 사회였다그러다가 기원전 1세기 경 남부의 그리스인 거주지가 본격적으로 로마 영토에 편입되는 시기에는 기존의 에트루리아족들이 건설해 놓은 골 족과의 교역망 및 포도 재배 기술을 그대로 흡수하게 된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기원전 265- 146)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로마의 와인 제조술은 본격적인 모멘텀을 가지기 시작한다페니키아 인들이 일종의 조차지 형식으로 현재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건설한 카르타고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이자 지중해 일대의 모든 기술상업 정보가 유입되던 당시의 하이테크 도시이다포에니 전쟁의 승리로 지중해 너머까지 교두보를 마련한 로마는 이후 지중해 주변을 마치 호수처럼 둘러싸면서 활발한 영토 확장에 나서게 되고카르타고가 보유하던 발달된 농업 기술과 체계적으로 문서화 된 포도 관리법을 그대로 인수하였다


이미 이 당시에는 와인이 상하면 식초가 되고이러한 과정을 방지하는 법까지 상세하게 카르타고의 기록으로 남아있었다카르타고 인들이 고안한 파숨(passum)이라는 달고 알코올 도수 높은 와인 및콘디툼(conditum)이라는 지금의 독일 글뤼봐인과 비슷하게 향료와 꿀로 맛을 강화한 특별 와인도 로마에 유입되어서 높은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로마의 와인은 냉장 및 온도 유지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알코올 함량이 높은 숙성 와인이 많았는데대부분 물과 섞어서 음용되었다드문 경우 바닷물이나 송진혹은 콜타르 등을 섞어서 독특한 맛으로 즐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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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고고학과 학생들과 방문한 폼페이 유적멀리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화산이다.

 

로마가 공화정 단계에 들어서던 시기까지만 해도 고급 와인은 당시 시장을 석권하던 그리스 와인이었지만 지속적인 수요의 증가로 인하여 마침내 이태리의 현지 와인도 본격적인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게 된다이 시기가 바로 로마 와인의 황금기로서그랑 크뤼 포도밭이 생겨나고 BC 121년산의 와인은 당시의 집정관인 루시우스 오피미우스(Lucius Opimius)의 이름을 따서 유명한 오피미안 빈티지 와인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지금의 광역 로마시를 중심으로 롬바르디아에밀리아-로마냐투스카나 등의 산지가 호황을 누리게 되며 시칠리아 섬에는 마메르티움(Mamertium)이라는 최초의 와이너리도 설립된다


이 시기의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는 나폴리 시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폼페이라는 도시로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하여 당시의 로마인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 된 중요한 유적이다폼페이는 일종의 향락 도시이자 소비 도시로 술의 신인 박쿠스(Bacchus)를 숭배하였으며와인 전용 저장 토기인 암포라를 밀봉한 채로 대량 보존한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당시의 중요한 와인 물류 센터인 폼페이가 화산에 손상되면서 와인 수급에 타격을 입은 로마제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전 영토에 무분별하게 포도 나무를 심는 공급 과잉이라는 역효과를 야기했다이에 파생되는 알코올 과다 복용포도 재배 농가의 몰락와인 가격의 하락이라는 사회문제가 대두되자 당시의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로마 황제는 새로운 포도나무 식목 금지 및 기존 포도나무의 절반 이상을 근절하는 칙령을 발효해서 200여년 간이나 유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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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으로 복원된 로마시대의 콘디툼 와인과 주신(酒神박쿠스의 석상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는 서쪽 끝으로 영국 남부북쪽으로는 라인강과 다뉴브강을 경계로 하는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지중해 남부의 북아프리카 사하라 이북 및 중동 지역의 페르시아 서쪽까지 진출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이 시기는 현재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의 와인 제조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말하자면 로마제국 영토=와인 재배 면적의 최대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로마제국이 서양 문명의 고전적 완성을 이룩했다면 그러한 문명 파급의 가장 큰 수혜를 본 분야가 바로 와인 문화이다


로마 제국 당시의 이태리 외부 지역에 해당하는 히스파니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일대),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일대), 게르마니아(현대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대), 그리고 브리타니아(현재의 잉글랜드 지역지역까지 포도 재배 및 와인 문화를 파급시켰고현재의 유명한 와인 생산 지역인 보르도모젤리오하 일대도 다 로마 제국 당시부터 개발된 지역이다


특히 기독교의 국교화와 더불어 서양 문명을 하나로 묶어 주는 영적 일체감을 확보한 로마 제국은 21세기 현재에 통용되는 와인의 이미지메이킹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절제된 음주를 주장하는 카톨릭 교리에 맞추어서 와인 생산은 양적으로 다소 축소되었지만황제와 교황을 정점으로 한 귀족 문화의 성장과 함께 품위와 고급화가 이루어지는 계기는 바로 로마 제국의 와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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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최대 영토 범위지금의 유라시아 일대 와인 재배 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현재 이루어지는 와인 산업의 기본적인 포맷은 로마 제국에서 이루어진 셈이며비록 중세의 문화적 암흑기와 이슬람 세력과의 접촉 및 흑사병과도 같은 격변을 겪으면서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와인 문화에 대한 대부분은 로마 제국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속담은 어찌 보면 물리적 의미로서의 길을 넘어서 와인을 포함한 인류 문명 요소의 대부분이 로마를 거쳐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실 로마 제국은 적어도 서양인들의 정신 세계에서 가장 이상향으로 자리잡은 세계관의 결정체이기도 하다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라는 인류 공통의 윤리적 덕목이자 정신적 참회 기재가 등장해서 인간이 향락과 절제라는 길항관계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모든 것이 허용되던 그런 시기였기 때문이다


생각이 자유로웠고 인간 관계가 지극히 세속적이었고 본능에 충실해도 죄악시되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다그런 시절에 와인이 숭배와 탐닉의 대상으로 자리잡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제는 더 이상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노스탤지아로만 남아있게 되었다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런 노스탤지아를 느끼게 해 주는 매개체인 와인에 더욱 애착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유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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