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의 와인칼럼] 03. 코키지 프리(Corkage Free)를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코키지 프리(Corkage Free)를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 코키지는 얼마면 적정할까?
와인과 잔을 차에 싣고 다니다가 식사 때가 되어 어느 고깃집(음식점이라고 해도 상관없다)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자. 그 집에서는 소주, 맥주, 막걸리와 기타 전통주는 있으나 와인은 없다. 그래서 눈치를 살피며 미안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주인이나 종업원에게 물어본다.
“와인을 가지고 다니는데 와인을 마셔도 될까요?”
그러면 대답은 다음의 네 가지로 돌아온다.
1. 저희 집도 술을 파는데 여기서 가져오신 와인을 드시면 안됩니다.
2. 가져오셨는데 어쩔 수 없지요. 뭐, 오늘은 드세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안됩니다.
3. 아! 네, 드세요. 그런데 우리 집에 와인 잔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4. 아! 네, 얼마든지 드세요. 잔 가져다 드릴까요?
2013 샤토 무통 로칠드의 라벨을 그린 이우환 화백의 미디어 인터뷰 자리에서 들으니 이 화백은 1970년대 초반부터 와인을 마셔왔기에 이제는 식사를 할 때 와인이 없으면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와인 애호가이다. 사실 이 정도면 거장에게 이런 표현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조금 격하게 표현하면 와인 중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화백과 같은 와인 중독자들은 필자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에 꽤 많은 것 같다. 이 화백 같은 분들이야 와인 리스트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 음식점만을 골라서 갈 수 있고, 주머니 사정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일반 애호가들은 그럴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차에 와인을 싣고 다니면서 음식점에 들어가서 와인을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는 애호가들이 훨씬 더 많다.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호텔이나 전문 와인 바나 와인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일반 음식점(고깃집 포함)에서 와인을 파는 곳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음식점에서 와인을 취급하기는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와인 리스트가 없거나 또 와인 리스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판매 가격이 최소 5만원 이상이어서 1인 식사 가격과 같거나 더 비싸서 와인을 한번 마셔볼까 하는 초보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다가 와인 애호가일지라도 샵 가격대비 최소 1.3 ~ 1.5배 이상인 곳이 대부분이다 보니 선뜻 와인을 주문하기가 꺼려진다. 샵 가격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서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가서 내가 만약 식당을 운영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교과서적인 정답을 선택하여 4번 “네, 얼마든지 드세요, 잔도 가져도 드릴께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화이트? 레드? 레드라면 보르도? 부르고뉴? 어느 것을 가져다 드릴까요?”라고 하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아니면 적어도 3번처럼 “네, 드세요, 근데 잔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라고 응대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 입장에서 보면 4번은 와인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은 현 상황에서 와인 잔까지 별도로 구비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와인 애호가 입장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할 일이지만 과잉투자가 되니 어쩌다 가끔 있을 수 있는 상황을 위해 대비한다는 것은 필자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와인 전문 바나 레스토랑 말고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3번 정도로는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경험상 의외로 현실적으로는 2번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은 1번이다. 그리고 3번, 4번의 순서이다.
그런데 2번의 답변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니 오늘은 그냥 마시게 해주고 그럼 다음엔 오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한번 온 고객을 단골로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오게 하는 것이 음식업 성공의 기본 요체 아닌가? 다시 올 확률이 아주 낮은 고객을 상대하는 터미널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소비자 입장에서야 당장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뭐하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거기서 먹기야 하겠지만 다음엔 갈 수가 없다. 왜? 다음부턴 안 된다니까! 필자의 경우 두 번째 갔다가 “안 된다고 전번에 말씀 드렸지 않느냐”고 해서(와인 마시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 지 기억도 잘 하신다) 맥주도 시킬 테니 마시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퇴짜 당한 아픈(?) 추억이 있다.
1번 답변은 소비자 입장에서 순간 무지 당황스럽고 창피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는 하다. “미안하지만 그럼 저희는 여기서 못 먹습니다”라고 하고 나오면 되니까.. 그런데 이건 도심에서는 가능하지만 시골 같이 작은 곳이나 선택의 대안이 별로 없는 곳에서는 참 난감하다. 그래서 한번 더 도전해본다. 그럼 맥주도 시킬 테니 가져온 와인 마시면 안되냐고.. 그런데 그래도 안 된다고 완강히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주인들이 계신다. 필자가 이런 일을 처음 당했을 때는 하도 주인장이 당당하게 이야기하길래 이게 무슨 법적인 규제가 있나? 라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나라에 황당한 법이 많다지만 그래도 그런 황당한 법은 없을 것 같다. 근데 주인은 왜 우길까?
여기서 자문해본다.
1. 이 집이 어마 무지한 맛집이고 단골 고객이 아주 많은 대박집이라서 나 같은 고객은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서?
2. 와인을 마시게 하면 다른 모든 고객들도 와인을 가져오게 돼서 주류 매출 비중이 크게 감소하기 때문에?
3. 그냥 그날의 기분이 나쁘고 고객의 인상이 별로 맘에 안 들어서?
그런데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역설적이게도 1번 맛집은 아니다. 오히려 대박집일수록 와인 마시는 것에 대해 아주 후하다. 심지어는 다음에 가면 와인 잔까지 준비해놓았다고 자랑한다. 그렇게 손님이 많아서 서비스 하는데 정신 없어 하면서도 와인 잔까지 챙겨준다.
그럼 2번? 다른 주류 매출 비중이 줄 것 같아서?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와인 때문에 그 집에서 파는 다른 주종이 판매되지 않을 리가 없기에. 소비자는 다양한 주류에 대해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론 와인 애호가로서 그리고 와인 소매업 종사자로서 그럴 정도로 와인 마니아가 늘어나면 아주 행복하기는 할 것 같다.
3번, 그냥 그날의 기분이 꿀꿀해서 동대문에서 뺨 맞고 남대문에서 화풀이하는 식은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서비스업이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으니까.. 그래도 그러면 서비스업에 종사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맘대로 행동할 수 있는 다른 업을 선택해야 되지 않을까?
음식업 시장의 현황을 보면 더더욱 그러면 안될 것 같다. 시장 상황은 경제 여건상 반퇴자나 명퇴자, 청년 실업자들이 너도 나도 음식점을 차리다 보니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그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코키지 프리를 선언하는 음식점들이 많아지다 보니 고객들이 샵 시장에서 구매하여 음식점에 가서 마시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와인 소매시장에서 샵 시장(Off Premise/Off Trade)와 업소 시장(On Premise/On trade)의 비율이 최근 약 3~5년간 75~80% : 20~25%로 업소 시장의 비율이 아주 낮아져 있다. 이는 다른 와인 수입국의 5 : 5 내지는 6 : 4 정도의 비율에 비해서 우리나라 업소 시장이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준다. 2015년도 와인 수입 금액이 189백만 달러라고 한다. 2014년 수입 금액이 177백만 달러였으니 5.6% 신장한 걸로 봐서, 와인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소시장의 위축은 코키지 프리도 일조를 하기는 했으나 이는 경쟁 상황에서 음식점주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환경을 바꿀 수 없으면 적응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음식업의 핵심은 음식의 맛, 그것도 차별화된 맛이고 음식 판매가 주수입원이어야 한다. 와인은 부대수입이고. 여기에 서비스까지 좋으면 금상첨화이고 대박집이 된다. 필자가 와인 애호가라서 아무데서나 편하게 원하는 와인을 마시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말이 전도된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업에서 결코 성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코키지 프리면 좋겠지만 결코 코키지를 전혀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와인 소비 시장 상황으로 보면 와인의 품질 수준에 따라서, 일반 잔을 제공할 경우 병당 오천 원 정도, 고급 와인 잔이면 병당 일만 원 ~ 일만 오천 원 정도가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와인을 가져와서 마실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연히 잔을 깰 경우는 변상을 해서 받되 그 가격을 미리 예고해놓으면 된다.
아주 예외적으로 마음대로 높은 코키지 가격을 받아도 되는 곳은 우리나라에 몇 군데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독보적인 음식 맛을 선보여서 소위 접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필히 갈 수 밖에 없는 곳이면 된다. 접대라는 것은 음식도 음식이지만 서비스와 가격대도 접대하는 사람이나 접대 받는 사람, 서로의 품위 유지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음식점들이 잘 되는 날이 우리나라의 관광문화사업이 잘되고 있는 날이라 생각하고, 그건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음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기에, 본업의 핵심을 다시 생각해보고 와인애호가를 제대로 응대해서 모든 음식업 종사자들이 대박 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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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철형 (Chul Hyo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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