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의 와인 테이스팅] 06. 와인의 aromas 테이스팅, 그 어려운 걸 해내려면?
와인 테이스팅 8 - 와인의 aromas 테이스팅, 그 어려운 걸 해내려면?
“시합 전 샅바를 잡고 어깨를 맞대는 순간 상대방 선수의 정보가 들어옵니다. 힘이 좋은 곳과 약점은 어디인지 무게중심은 어느 곳인지 금새 파악하죠. 경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승패를 읽을 수 있어요.” 전직 선수의 말처럼 씨름의 승부는 샅바잡기에서 결정된다. 도복을 입고 겨루는 경기가 아니어서 샅바 외에는 씨름 기술을 확실하게 걸 수 있는 것이 없다.
와인의 1차 재료는 아로마이다.
씨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시합 전초전 같은 샅바잡기는 와인의 향을 맡는 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은 향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흘려준다. 와인의 1차 재료는 향이다. 와인 향 없이 맛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품종으로 만들었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익숙한 향 또는 모호한 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인의 테이스팅 시 향에 집중해야 할 것은 와인 전체를 탐색하는 상상력이다. 예를 들어보자. 소비뇽 블랑이 풀 향이나 허브 향이 강하다면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장미 같은 꽃 향과 리치 같은 열대과일 향이 두드러진다. 반면 피노 그리는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고 섬세하고 모호하다. 그뿐만 아니다. 같은 샤르도네 품종이어도 코르통 샤를마뉴는 진한 미네랄 풍미가 강하다면 캘리포니아는 무거운 버터 향이 강하다. 이런 경우 전자의 와인은 산미가 높고 숙성 정도에 따라 복합적인 여운이 느껴질 것이고, 후자는 알코올 도수가 높으며 풀 바디한 와인일 것이다. 프랑스 메독지방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피망, 카시스 향이 나는데 반해 랑그독 지방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감초 향이 두드러진다. 이것만 봐도 산미와 탄닌에서 다른 맛과 질감을 보일 거라는 걸 상상해볼 수 있다. 또 사브니에르 지역의 슈냉 블랑이 어릴 때는 짜릿한 돌, 미네랄 풍미가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지만, 10년 이상 숙성되고 나면 좀 더 원숙한 인동덩굴의 향이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어린 사브니에르는 산미가 찌를 듯해서 튀게 느껴지겠지만 나이가 들면 원숙한 향과 어우러져 우아한 산미를 보여준다. 이처럼 모든 와인은 자신의 고유한 향을 지니고 있고 향을 통해 맛을 유추해볼 수 있다. 향이란 맛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향 자체가 맛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맛과 향을 분리해서 맛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 맛과 향이 하나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좋은 와인이 된다.
와인의 아로마는 와인의 맛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다.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와인 향에 무감한데 기가 막히게 맛을 잘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와인 향을 맡으며 와인의 맛을 미리 추측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맛을 보는 단계에서는 내가 예측한 맛과 얼마나 근접해있는지 또는 예측하지 못한 건 무엇인지 점검해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식으로 훈련해간다면 와인 테이스팅 실력을 늘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향을 잘 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와인 향을 잘 맞추기 위한 특별한 전수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많이 마시고 많이 (테이스팅 기록을) 써보고 (어떤 향인지를) 맞춰보고 실패하는 기본방법이 있을 뿐이다. 다 알고 있는 방법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와인 테이스팅 단계 향 맡기(Nez du vin)의 순서를 밟아보자.
와인 테이스팅 단계 향 맡기(Nez du vin)의 순서
첫째, 와인 잔에 와인을 부은 다음 곧바로 와인을 들이마시듯 맡는다. 처음 맡은 향은 또렷하게 드러나지만 미세해서 곧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보통 간과하기 쉬운 단계이다. 하지만 가벼운 분자의 향들은 이 때 강렬하게 드러난다. 이 단계를 무시하고 넘어간다면 이 같은 향들을 음미할 기회를 잃게 된다.
둘째, 와인 잔을 빙빙 돌린다. 다시 한 번 들이마시듯 맡는다. 두 번째 향은 통풍작용과 가벼운 산화작용 덕분에 새롭게 발전된 향들을 내뿜는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단계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향은 과일 향이다. 때로는 오크 향이 지배적이어서 과일 향이 강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 단계에서는 과일 향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품종이나 지역과 관련된 와인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붉은 과일과 검은 과일 향, 감귤류나 핵과일 그리고 열대과일 향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참고로 이런 부류의 과일 향은 아로마키트 보다는 잼이나 통조림 향이 실제 와인 향과 더 가깝다.
셋째, 와인 잔의 와인이 소용돌이치도록 와인 잔을 흔든다. 휘발성 향들이 날라간다. 그리고 와인이 잠잠해지도록 놔두어라. 와인 향과 관련된 성분들이 발산할 것이다. 와인 병에 담겨 있던 환원(reduction) 환경에서 와인 잔의 산화(oxidation) 환경으로 옮겨오면서 와인은 빠르게 또는 느리게 향 성분을 발산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 산화과정에서 발생한 스모키나 애니멀 향은 사라진다. 대신 두 번째 단계에서 없었던 새로운 향들을 퍼트린다면 프리미엄급 와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보리수 향, 페트롤, 가죽, 부엽토 등 토양을 포함한 와인의 품질과 관련되어 많은 정보를 세 번째 단계에서 얻을 수 있다.
넷째, 마시고 난 뒤 와인바닥의 향을 맡는다. 바닥에 남은 잔향은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 너무 풀 향이 강하거나 오크 향이 두드러진다면 휘발성분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이는 와인이 산화작용에 저항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장기보존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와인 잔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와인 잔을 덥힌 뒤 맡는 향은 와인이 장기숙성 될 때 어떤 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 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 단계가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와인의 향을 도저히 맡기 어렵다거나 알코올 냄새밖에 나지 않는다고 주눅들어 있는 초보자가 있다면 절호의 찬스가 왔다. 사실 와인 향은 와인이 사라진 빈 잔에서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게 드러난다. 테이스팅을 배우는 초기에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나는 향들을 맡고 그 향을 어떤 향이라 칭하는지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그와 비슷한 향이 나는 와인을 테이스팅 하면서 실력발휘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비에 젖은 철봉 냄새를 맡았을 때 (전문가들은) 그걸 미네랄이라고 표현했다 하자. 내 경험을(비에 젖은 철봉 냄새) 기호화(미네랄)해서 적용하는 것이 아로마 훈련의 기본이다.
많은 사람들은 향을 맞추는 것이라고 믿지만, 원래 타고나서 훈련 없이 곧바로 향을 맞춘다는 건 아주 드물다. 현실은 만화와 다르다. 향을 맞추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익힌 향을 와인에서 찾는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다양한 향들을 맡는 풍부한 경험, 다른 이들의 표현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내가 구별해낼 수 있는 아로마 포트폴리오를 늘려나가는 것 이것이 아로마 테이스팅의 중요한 자산이다.
WRITTEN BY 백은주 (Eunjoo Baik)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 워터, 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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