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와인에세이] 01. 아이스와인
아이스와인
촬영은 밤 11시가 넘어서 시작되었다. 그날 온도계는 영하 23에 멈춰있었다. 마치 빨간펜 선생님이 빨간색 밑줄을 쫘~악 그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다. 포도밭 온도가 영하 23도라면 실제 체감하는 온도는 영하 33도는 미소 지으면서 넘는다. 글쎄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는 어떤 추위일까? 이렇게 표현하면 조금은 느낌이 와 닿을지 모르겠다. “웃으면 침이 얼어서 이빨에 고드름이 열리는 것 같다.” 자~ 지금부터 나의 친정 집 같은 캐나다 이니스킬린(Inniskillin) 와이너리의 아이스와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위에서 언급한 촬영은 이니스킬린 와이너리에서 아이스와인을 홍보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유명 기획사에 의뢰를 해 제작한 촬영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2분 30초 분량의 필름이 돌아갔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촬영에 동참하게 된 계기는 와이너리에서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가능하면 와이너리의 직원들이 동참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물론 추가 보수는 따로 있었다). 그래서 이니스킬린 와이너리 창업자, 와인 메이커, 빈야드 매니저 등등 거의 모든 직원들이 투입이 되는 촬영이었다. 더군다나 동양인은 나 그리고 일본인 요꼬가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는 장면은 훨씬 인터내셔날한 효과가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낮에는 뭐하고 한 밤중에 촬영을 하는지? 뭐 때문에 쓸데없이 사람들 고생을 시키는지? 대부분의 캐나다 와이너리에서는 밤에 포도 수확을 한다. 밤 또는 새벽에 하는 이유는 가장 기온이 내려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는 시점을 기다리는 이유는 아이스와인으로 사용할 포도즙의 당도 때문이다.
포도 알맹이는 크게 포도꽃자루에서 들어온 꽃솔, 껍질, 포도씨 그리고 포도 과육으로 구분된다. 이중 대부분을 과육이 차지하고 있고, 과육의 90% 가량은 수분이고, 그 수분 안에 당분이 섞여있다. 일반적인 포도 수확은 9월말에서 10월 중순까지 이어지지만, 아이스와인의 경우는 매해마다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가 다르다. 다시 말해 12월이 될 수도 있고, 1월 또는 2월이 될 수도 있다. 이때 기준이 되는 지침서가 VQA(Vintners Quality Alliance) 규정이다. 이 VQA 규정을 만든 사람이 도날드 지라르(Donald Zirald)라고 하는 이니스킬린 와이너리의 공동창업자이다. 인터넷으로 아이스와인을 검색해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문구가 “영하 8도가 3일 연속 지속되는 날씨에서 수확한 포도만을 사용해야 아이스와인 이라고 말할 수 있다”일 것이다. 이런 조항은 VQA 규정에 적혀있다. 또 이렇게 많이들 알고 있고…
하지만 만약에, 정말이지 만약에 영하 8도의 기온이 3일 연속 지속되지 않는 해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캐나다의 아이스와인 생산자들은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하나? 대한항공 기내 면세점에서 아이스와인 못 팔고 꿀차를 팔아야 하나?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VQA규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VQA 규정은 상황에 따라서 수정될 수 있다는 사항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지역은 겨울에 영하 8도가 3일 연속 이어지는 것은 매해 있는 일로 당연하다. 그러니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보험을 들어 놓은 문구인 셈이다.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원산지 규제인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 ) 규정은 있지만, 이 규정 또한 해마다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예를 들면 뽀이약 지역이 1헥타르에 55헥토리터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면, 이것은 50헥토리터가 될 수도 있고 56헥토리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절대로 58헥토리터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참고로 AOC의 명칭은 2013년 12월 17일부터 AOP(Appellation d’Origine Protégée)로 바뀌었다.
다시 캐나다 아이스와인용 포도는 왜 밤이나 새벽에 수확하는지 추가 설명을 해보자. 위에서 설명했듯이 포도알의 과육은 90 %가 수분이고, 그 수분 안에 한 두 방울 정도의 당분이 내포되어있다. 캐나다에서 포도 수확을 기온이 내려갈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는 추운 날씨에 수분은 얼려 분리시키고, 그 안에 있는 당분을 뽑아내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말하는 Brix(당도)의 경우 포도를 따서 당도측정기에 한 방울 떨어트려서 당도를 측정한다. 2015년 내가 영천 포도 축제에 갔을 때 포도왕으로 대상을 받은 거봉 포도의 당분은 19 Brix로 기억을 한다. 19라고 하는 수치는 1리터에 190g의 당분이 있다는 표시다. 보르도에서는 포도 수확을 할 때 포도의 Brix는 23 ~ 24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아이스와인용 포도는 당도가 어느 정도일까? 아이스와인용 포도의 당도는 Brix가 35는 넘어야 아이스와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다. Brix가 35를 넘지 않으면 아이스와인(Icewine)의 이름을 못 붙이고 레이트 하비스트(Late Harvest)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하지만 캐나다 와이너리 오너들 중에 일부러 레이트 하비스트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가격이 아이스와인하고 두 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Brix라고 하지 않고, Alcoolique Potentiel이라고 말한다. 물론 영어와 불어의 언어적인 차이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Brix와 Alcoolique Potentiel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가장 기초적인 양조의 수치인 Brix에 0,6(0.57)을 곱하면 알코올 도수가 나온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와인 메이커들은 Brix X 0.6(0.57) + 잠재 변수사항 (배양 효모를 사용할 건지? 자연 효모를 사용할 건지? 어떤 상태의 오크통에서 숙성 기간을 얼마 정도를 할지? 게다가 잔당을 어느 정도로 잡을지? 등등). 이렇게 무수한 상황에 따라서 알코올 도수를 계산하게 된다.
여기서 또 다른 재미있는 숫자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와인 병에 2009, 2010 또는 2015 이렇게 써있는 숫자를 빈티지(Vintage) 라고 한다. 그리고 이 빈티지가 나타내는 숫자는 포도를 수확한 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틀린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스와인의 경우는 포도 수확을 그 해의 12월에 하는 경우도 있고, 그 다음해의 1월 또는 2월에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포도를 수확한 해라고 한다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빈티지 이론과는 맞아떨어지지를 않는다. 그러면 “다른 와인들의 경우 포도를 수확한 해를 빈티지라고 해서 병에 기입을 하고, 아이스와인의 경우에만 예외로 합시다” 이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의를 하면 어떨까? 와인 병에 기입한 숫자, 즉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한 해를 표시하는 게 아니고, 포도나무의 새싹이 열린 해를 나타낸다고 말이다. 포도의 싹이 새로 핀 해를 빈티지라고 정의를 하면, 세상의 어떤 와인의 빈티지에도 적용이 될 듯싶다. 물론 아이스와인의 존재감이 기존의 빈티지 정의를 바꿀 만큼으로 와인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정말 내 친정 집 같은 이니스킬린 와이너리와 아이스와인 이야기를 하면 몇 날 며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이 정도로 글을 끝내야겠다. 그때 나와 같이 칼 바람을 맞으면서 촬영을 했고, 눈뜨면 얼굴 보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오늘 밤에는 소테른 와인 한 잔 해야겠다.
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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