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 교수의 와인칼럼] 01. 어떻게 하면 와인 테이스팅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와인 테이스팅을 잘할 수 있을까?
와인 테이스팅 강의를 하다 보면 초보자들로부터 자주 접하게 되는 반응이 있다.
하나는 “저는 테이스팅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마시기나 해야겠어요.”와 같은 자책형에서부터 “와인향을 잘 모르겠어요. 아로마키트를 사면 좀 도움이 될까요?”와 같은 물품구매형까지 반응들은 제각각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테이스팅을 잘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좌절하거나 난감해한다는 것이다. 취미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도 취미이상의 열정을 쏟아 붓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와인은 하나의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약간의 고통이 수반된다. 와인에 관한 이론이야 무수한 정보와 교재를 통해 배울 수 있어도 테이스팅은 머리로 익혀서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접해보지 못한 수많은 과일과 꽃 이름들을 내 것인 양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내뱉기 어려울 때 더욱 그렇다. 이처럼 와인을 마시는 건(drinking) 즐거운 일이지만, 시음(tasting)은 왠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데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와인 테이스팅을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먼저 와인 음용과 와인 테이스팅에 대한 차이를 구별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와인을 마시고 난 뒤 각각 다르게 표현한 아래의 테이스팅 노트를 살펴보자.
“엄청 제멋대로인 맛이야. 게다가 고집스럽고.
이 와인은 미련할 정도의 정열과 탁 트인 하늘의 맛이 나. 이 와인이 맘에 들어.”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 대사 중에서)
“오렌지 빛이 도는 붉은색, 잘 익은 자두 아로마와 이끼, 낙엽 향, 무거운 무게감, 잘 잡힌 균형감, 부드러운 탄닌, 6~7초 가량 여운이 도는 잔향, 수개월 보관 가능, 붉은 살 로스트 미트와 잘 어울릴 것이다.”
(어느 전문가의 테이스팅 노트 중에서)
여러분은 위 두 가지 가운데 어떤 식의 표현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즐겨 사용했는가?
첫 번째 것은 와인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무척 아름다운 표현이지만 자의적인 해석이 강한 느낌이 든다. 이런 식의 표현을 두고 ‘테이스팅’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것은 와인 테이스팅을 익혀온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와인의 스타일이나 느낌을 유추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거니와 다른 와인과 구별되는 ‘독창성’을 잘 표현해 낸 ‘테이스팅’이라고 볼 수 있다. 테이스팅은 와인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따라서 타인과 주고 받는 교류가 가능하도록 약속된 기호와 상징을 교환하며 교감해야만 한다. 또한 와인을 마시는 일, 즉 drinking은 다른 주류처럼 또는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각을 즐기는 행위이다. 반면에 와인을 시음하는 것, tasting은 체계와 목적을 향해 이루어지는 의식이다. 마치 미술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표적 화풍의 역사, 구도 잡는 법, 색깔 선택하는 법, 재료의 쓰임새 등의 지식을 갖춰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쟝 클로드 뷔팡(Jean-Claude Buffin)은 “지각한 감각을 잘 고른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와인 테이스팅을 정의했다. 결국 테이스팅이란 와인이 주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지각해서 우리가 약속해 둔 가장 적합한 언어로 찾아내는 훈련인 것이다. 예를 들어 와인이 실크 같다거나 벨벳 같다 라는 표현은 무척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이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탄닌의 텍스쳐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탄닌의 양과 숙성도에 따른 미묘한 질감의 차이를 구분해서 정확한 상태를 진단하는 전문적이며 구체적인 용어이다. 아마도 테이스팅이 어렵다 하는 것은 이 체계적 훈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테이스팅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다. 남자주인공은 선천적 시각장애자였다. 20대 청년의 주인공은 운동도 잘하고 다양한 장르의 점자책을 읽어서 지식도 풍부하며 사회성도 뛰어난 매력적인 남성이다. 그야말로 눈이 안 보이는 것 말고는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해오던 어느 날 의사의 제안으로 개안 수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 청년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과 마을 그리고 이웃주변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의 본론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고 가장 감동스러워야 할 그 순간 주인공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불편한 장애를 겪게 된다. 통 유리창은 부딪치기 일쑤이며 거리감각이 없기 때문에 도로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피해야 할 줄 몰라서 교통사고가 날 뻔하는가 하면 목소리만 기억했던 가족들의 얼굴은 구분하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좌절하다 전문의를 찾아간 그에게 의사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당신은 ‘시력’을 찾은 것입니다. 당신이 일상인처럼 익숙한 행동을 하려면 ‘시각’이 있어야 하고 지금부터 훈련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각, 후각 그리고 미각은 점점 무디어진다. 이 감각을 예민한 상태로 돌리려면 안 쓰던 근육을 스트레칭하듯 계속 일깨워줘야 한다. 테이스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와인이 주는 정보를 적절한 감각기관과 연결하고 자극하는 위치를 파악해서 주의를 기울인 뒤 뒤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익숙해질 때까지 무의미해 보이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건너 뛸 수 있는 천재는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테이스팅은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별세계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감각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노력한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티베트에 사는 어느 노스님이 겨울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에 도착했을 때 놀란 사람들이 아무 장비도 없이 어떻게 그 험준한 산을 넘어왔느냐고 물었더니 “한걸음 헌걸음 걸어서 왔지요.”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그 한걸음 한걸음을 잊지 않고 전진하다 보면 와인을 즐기면서 음미할 수 있는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
WRITTEN BY 백은주 (Eunjoo Baik)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워터∙티 마스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