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27. 와인과 욕망

2021.04.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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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잔을 그려 삶을 표현하는 유용상 작가의 ‘선택받은 사람’.

우리 삶은 얼마나 불안정한가? 상심 가득한 현실의 회의적인 일상. 매일 반복되며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을 잠깐 정지시켜 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필요가 있다.

‘마신다’는 것(drinking)은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마시는 행위의 목표는 생존이다. 흔한 일상에서 우리 몸이 마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시음’(tasting)은 우리 영혼에서 나오는 욕망이다. 시음은 쾌락을 목표로 하는 욕망으로 진지한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시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는 별것 아닌 것으로 만족하지만, 욕망은 세밀하게 대상을 고르고 까다롭게 군다. 욕망이 절정에 이르는 것은 쾌락이 없는 상태,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 결핍 덕택이다.

시각은 와인의 색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고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하다. 미각은 비정신적인 영역에서 즐거움을 준다. 후각은 가장 흥미로운 단계로 와인의 복잡함, 함께했던 사람과 장소, 상황과 감정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내 안에 새겨진 경험이 와인과 함께 연상되는 것, 맛과 향의 균형이 좋은 와인 한잔은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친구의 죽음, 실연의 아픔. 끊임없이 사랑하고 좌절하면서 느끼는 고뇌와 절망, 방황, 극복, 죽음까지 수용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사랑. 이를 통해 불완전하지만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 ’헤르만 헤세‘는 말한다. “와인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축제에 초대하고 그들에게 행복의 섬으로 가는 무지개의 다리를 놓아준다. 그들이 피로를 느끼면 머리 밑에 베개를 베어주며, 그들이 비애의 함정에 빠지면 친구처럼, 위로하는 어머니처럼, 조용히 정답게 안아준다. 혼란스러운 인생을 위대한 신화로 바꾸고, 큼직한 하프로 창조의 노래를 연주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사람은 누구나 선악의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 인간은 다양하고 모순된 인자가 따로 모여 형성된 총합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순적 인간과 이중적 인간은 확연히 다르다. 유혹이란 것은 늘 달콤하고 자극적이다. 내 속에 악의 자아가 자라날 때 그 자아를 죽이려 하기보다는 선한 자아가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면, 자신의 진짜 성향을 알고 있지만 자기 기만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중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살지, 모순적 삶을 살지, 판단은 자기 몫이다.

지금 모습대로 사는 것. 원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 그러기 위해 스스로 질문하고, 그에 답하기 위해 고민한다.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와인 잔을 흔들어주면 와인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인생도 흔들리면서 더 넉넉해지고 풍요로워 질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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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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