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09. 토스카나 3락(樂)의 교차로, 몬테풀차노
토스카나 3락(樂)의 교차로, 몬테풀차노
몬테풀차노는 토스카나의 맛과 멋, 경치의 3박자가 어우러져 있다. 고원에 위치한 광장 중 빼어난 건축미로 알려진 피아짜 그란데(Piazza Grande) 는 16세기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토스카나의 미니어처란 별명에 걸맞게 당시 이탈리아 건축양식의 기준인 피렌체 풍이 녹아있다. 피렌체의 베끼오 궁과 흡사한 시청사가 그렇고 두오모는 피렌체의 산로렌조 바실리카를 몬테풀차노로 옮겨 놓은 착각이 들만큼 닮았다.
<몬테풀차노 정상에는 피렌체풍의 건축물이 들어선 피아짜 그란데 광장이 있다>
광장 주변에는 동굴 와이너리가 몰려 있다. 5백 년 전에 와인 양조와 저장 목적으로 파내려 간 곳으로서 지금도 본래 기능을 훌륭히 해내고 있어, 도심에서 와인이 생산되는 몇 안 되는 와인도시로 손꼽힌다. 동굴 안에는 한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떠다니며 이 공기를 호흡하며 와인은 숙성되고 있다. 동굴 투어의 마침표는 무조건 맛봐야 하는 영순위 토스카나 맛으로 찍는다. 여기서 멀지 않은 피엔자의 신선한 양유로 만든 페코리노 치즈가 와인에 젖은 혀에 착 감기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몬테풀차노는 토스카나주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다>
세 번째인 경치는 필자의 사춘기 추억과도 연관이 있다.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한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본 후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쁜 올리비아 허시를 많이 질투했었다. 올리비아를 질투할수록 그녀가 찍힌 책받침과 사진이 책상 서랍에 쌓여만 갔다. 레오나르도 화이팅(로미오분)이 줄리엣을 바라보던 뜨거운 눈빛에 꽃혀 밤 잠을 설친 다음 날 수업시간에는 쏟아지는 잠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 하면 보통 베로나가 떠오르지만 피렌체 출신의 제피렐리 감독은 토스카나 배경에 베로나를 빙의했다. 때 묻지 않은 무공해 풍경이 펼쳐지는 토스카나 남부와 움브리아 경치 그리고, 원작 출판 시기와 엇비슷한 나이를 먹은 건물 안에서 촬영되어 생동감은 더했다. 감독은 원작 주인공의 실제 나이에 근접하는 남녀 주인공을 캐스팅해 극적 효과를 높였다. 영화가 개봉되던 1968년에, 올리비아 허시는 16살, 레오나르도 화이팅은 18살을 맞이했다.
<피콜로미니궁 안뜰, 이미지 출처www.poderesantapia.com>
영화 도입부의 케플렛가에서 열린 가면무도회 장면은 피엔자에서 촬영되었다. 가면무도회에 몰래 숨어든 로미오가 춤추는 줄리엣을 보고 큐피드 화살에 꽂히는 장면과 영화OST인 “What is a youth”가 흐를 때 두 주인공이 만나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은 교황 피오 2세의 피콜로미니 여름궁전이 무대다. 15세기 중순에 탄생한 피엔자는 피오 2세 교황이 꿈꾸던 이상향을 인간 세계에 실현해 놓은 유토피아다. 공사기간이 단 4년인 초고속 계획도시란 기록도 갖고 있다. 건물 완성에 수 백 년 걸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이탈리아에서 피엔자가 독특한 이유다.
태양 주위를 도는 별의 집합인 태양계처럼, 몬테풀차노 주변에 모여있는 7군데 마을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와인 지역을 이룬다. 산조베제가 주된 품종이지만 이곳에서는 산조베제보다는 푸르뇰로 젠틸레(prugnolo gentile)란 호칭이 더 익숙하다. 이탈리어로 자두(prugna)와 공같이 둥근 모양인 젠틸레(gentile)의 합성어인데 포도알이 자두처럼 둥글고 검붉은 색이 돈다.
<푸르뇰로 젠틸레(Prugnolo Gentile)>
여기서 몬테풀차노는 남이탈리아의 토착 품종인 몬테풀차노와 전혀 관계가 없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와인처럼 원산지명을 본땃다. 뜻이 몬테풀차노(Montepulciano)산 귀족풍 (nobile)의 와인(vino)으로 18세기 이전에는 단출하게 몬테풀차노 레드와인(Rosso di Montepulciano)으로 불리었다. 그러다, 이 와인을 맛 본 한 귀족(Giovan Filippo Neri)이 노빌레(Nobile)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현재처럼 이름이 길어졌다. 다소 길지만 우아한 풍미로 귀족층을 매료시키던 와인 스타일의 정곡을 찌르는 단어다. 최근에 몬테풀차노 와인 콘소시엄에서 명칭 간소화 안을 통과시켰다. 단어 ‘Vino(와인)’를 뺀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로 가뿐해진 라벨을 단 와인을 조만간 만나볼 수 있게 될 거다.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차노 와인이 나오는 포도밭 면적은 1,250헥타르이며 연 6백2십 만병이 생산된다(2018년 몬테풀차노 와인 컨소시엄 통계). 일곱 군데 마을 중 평지를 제외한 해발 250에서 600 m 구간의 구릉지에서 재배된 포도로만 만들어진다. 모래와 점토가 주된 토양이며 자갈과 플라이오세 시대(530만~260만 년 전)로 추정되는 화석이 간간이 섞여있다. 와인 법에서는 푸르뇰로 젠틸레는 최소 70%와 카나이올로와 칠리에졸로 레드 품종을 최대 30%까지 블랜딩 할 수 있게 규정해 놨다. 하지만 대부분의 와인은 푸르뇰로 젠틸레로만 양조되는게 추세다. 숙성기간은 2년이며 그중 1년은 반드시 오크 숙성을 거친다. 풍작이 좋은 해는 3년 숙성해서 리제르바를 만든다.
<Cantina Dei 와이너리 숙성실 내부>
칸티나 데이(Cantina Dei) 와이너리의 오너 카테리나 데이(Caterina Dei)는 몬테풀차노 와인에 매혹당한 이유를 이렇게 고백한다. “와인과 음악은 같은 언어로 말을 건다. 그 언어는 감성이며 번역이 필요 없다.” 성악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부친이 급사하는 바람에 와이너리의 경영을 떠맡게 된다. 오페라 가수의 꿈은 접었지만 그녀는 몬테풀차노 와인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듣게 된다. 이후 그녀는 몬테풀차노 와인의 우아함과 음악을 연결시키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그녀의 음악과 와인의 열정은 와이너리 건물 곳곳에서도 드러난다.
<달팽이 등껍질을 본 따 만든 지하셀러 입구>
사무실을 제외한 양조와 숙성 시설을 지하로 숨겨놓아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추구했다. 달팽이 등껍질 모양의 계단으로 내려가면 트라베르티노 대리석으로 지어진 셀러로 이어지며 교향악이 울리는 듯한 장엄함이 압도한다. 유리벽으로 된 셀러 출구 밖에는 야외 음악당이 기다리고 있다. 셀러를 나와 무대에 서면 그제야 셀라 위는 음악당의 관중석임을 알게 된다. 카테리나는 음악당에서 종종 콘서트를 연다. 몬테풀차노 와인을 마셔가며 듣기에 적당한 마리아주 음악이 연주된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Cantina Dei 웹사이트(http://www.cantinedei.it/musica/)의 MUSICA메뉴에 접속하면 들을 수 있다.
<Cantina Dei 와이너리의 와인>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2015
블랜딩 품종과 비율: 푸르뇰로 젠틸레 90%, 카나이올로 10%, 알코올 14,5%. 슬로베니아산 오크통에서 24개월 숙성했다. 짙은 루비색이 돌며 자두, 블랙베리, 젖은 흙, 숲 향기, 커피 향이 은은히 난다. 타닌이 어려 소량의 쓴맛과 떫은 맛이 나지만 알코올의 유질감이 타닌 결을 매끈하게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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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o Nobile Di Montepulciano Bossona Riserva 2013
푸르뇰로 젠틸레 100%, 알코올 15%. 대형 보테에서 36개월 숙성 후 추가로 병에서 12개월 숙성했다. 보쏘나는 점토, 모래와 화석이 섞여있는 포도밭의 이름이며 플래그십 와인이기도 하다. 말린 제비, 장미, 민트, 자두향, 토바코, 감초 가죽 향이 또렷하며 집중감 있다. 원만한 타닌과 산미의 조화에 곁들여진 짠맛이 풍미를 높인다.
WRITTEN BY NanyoungBaek
Sommelier of AssociazioneItaliana Sommelier,
Wine Writer, Blogger, Judging Panel at Wine Competitions
President of BARBAROLSCUOLA(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Member of Cheese Tasters Panel for EUROFINS Cheese Laboratory
백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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