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선물 – 사랑과 우정
포도나무 선물 – 사랑과 우정
2018년의 어느 날, 그리스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가 쓴 책 <천상의 두 나라>를 읽으며 몇 해 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을 인상 깊게 읽은 것을 회상했다. 카잔차키스는 중국과 일본을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첫 문장을 아주 인상적으로 적고 있다.
“내가 아는 나라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기 위해 눈을 감을 때면, 마치 연인이 내 곁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기쁨으로 전율하는 나를 느낀다.”
10여 년 동안 세계의 많은 곳을 다니며 적은 여행노트를 담은 삶의 이야기 <끌림>은 여행의 열정,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먼 곳을 향한 열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여행에 대한 책이 아니다. 관광안내서도 아니다. 그래서 여행하는 자, 여행을 앞둔 자의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이제 <끌림>에서 소개된 ‘포도나무 선물’이라는 짧은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칠레 시골 마을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운전을 하고 지나가다가 포도 향기에 취해 포도농장에 들려 포도를 사고 싶어했다. 이 청년은 정성스럽게 따서 바구니에 담은 포도를 아주 비싼 가격에 팔려고 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놀란 그 여인이 이유를 묻자 청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말 맛있는 포도입니다. 세상 그 어떤 포도보다 맛에 있어서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높은 값을 부른 이유는, 이 포도들이 열린 한 그루 포도나무를 통째로 선물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와서 이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를 따가십시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값을 치르고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선물 받으시겠습니까?”
여인은 흔쾌히 승낙을 했고, 매년 초가을 무렵이면 청년은 포도를 따러 오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그리고 여섯 번째 가을이 되던 해에 둘은 포도나무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청년은 비싼 값을 받음으로써 그녀가 포도농장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까지도 선물했던 것이고 이것은 청년이 원하던 사랑의 결실로 이어졌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2018년의 추석날 독일의 와인산지 모젤에서 젝트(Sekt, 독일의 스파클링 와인)를 생산하는 친구 클라우스 헤레스(Klaus Herres)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부터 내가 공식적으로 모젤에 있는 포도나무 한 그루의 대부(Pate, Godfather)가 되었다고. 그는 2015년에 처음으로, 그리고 3년 후의 8월초에 다시 내게 약속한 것을 지켰다. 내가 찜 해두었던 포도나무를 보며 한 약속을. 이로 인해 나는 일년에 한 번 이 포도나무가 있는 포도밭을 방문하고 수확을 도울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사실 상징적은 의미가 강하다.
2013년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그가 생산하는 젝트에 관심을 가져 내가 모젤에 간 기회에 그의 와이너리를 방문한 것이다. 동양에서 온 사람이 그에게 연락을 하고 그의 와이너리를 방문하겠다고 하니 그는 의외라며 좋아했다. 그 후 우리는 독일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초대된 이태리에서의 와인행사에서 적어도 1년에 두 번은 만났다. 우리의 만남은 시간이 지나며 우정으로 변했고 하루 혹은 불과 며칠만의 만남을 서로 만끽했다. 그의 유머와 인생을 즐기는 삶과 철학에 나는 반했고, 그는 동양인 친구를 가진 것에 즐거워했다. 그가 페라리를 타고 포도밭 부근의 도로에서 시속 200km 가까이 달릴 때 나는 조수석에 앉아 긴장하면서도 그 미친 순간을 즐겼다. 그의 요트를 타고 모젤 강에서 투어를 할 때면 정말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해했다. 반면에 내가 그에게 준 것은 그의 와인에 대한 관심과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대한 경외뿐이었다.
클라우스가 내게 선물한 포도나무는 피스포터 에르츨라이(Piesporter Erzlay)라는 이름을 가진 포도밭에 있다. 모젤 로렐라이(Moselloreley)라는 별명을 가진 이 포도밭은 배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독일의 유일한 포도밭이다. 약 500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는 이 포도밭을 클라우스는 2007년에 경매를 통해 구입했다. 이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나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추석날 받았을 때 나는 전율하며 좋아했고 감사했다.
위대한 와인애호가였던 헤르만 헤세는 <게르트루트(Gertrud)>에서 와인과 우정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기묘한 인생에 대해 악의 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독일 친구 클라우스와 다시 와인 한 잔 같이 마실 날이 기다려진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우정을 나누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테마인 사랑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우리가 이세상에서 겪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아픔에 대해서.
포도나무는 사랑이고 우정이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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