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음악
와인과 음악
1776년에 탄생한 독일의 에른스트 호프만(Ernst T. A. Hoffmann)은 낭만주의 소설가였지만 법률가, 작곡가, 음악평론가,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한 다재 다능한 사람이었다. 그가 1810년부터 몇 년 동안 발표한 12개의 단편을 모은 것이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인데 5편에 해당하는 ‘아주 산만한 생각들(Höchst zerstreute Gedanken)‘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종교음악을 위해서는 오래된 라인 강변의 와인이나 프랑스 와인을, 진지한 오페라를 위해서는 질 높은 부르고뉴 와인을, 희가극을 위해서는 샴페인을, 칸소네의 경우에는 정열적인 이태리 와인을, 아주 낭만적인 곡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불의 요정 샐러만더와 지령(地靈)에 의해 생산된 알코올 음료를 적당히 한 잔 마실 것을 권한다.”
이에 대해 샤를 보들레르는 <인공 낙원>에서 라인 강변의 와인이나 프랑스 와인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쓴맛이 있고, 부르고뉴의 와인은 진지한 격정과 애국심으로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으며, 샴페인의 경우 희가극이라는 장르에 필요한, 거품이 일듯 풍성하고 경쾌한 느낌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한 것이 흥미롭다. 장 홍 박사도 샤를 보들레르의 글을 인용하며 부르고뉴 와인을 한 잔 마시며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이나 <운명>, 오페라 중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아니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등을 들어보라고 권한다.
호프만의 이러한 추천은 와인과 음악을 매칭한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태리에서 유학한 자칭 팝페라 디바인 박정희는 <와인과 음악은 사랑의 묘약이다>라는 책에서 “여러 품종으로 블랜딩된 와인의 향을 최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특히 크로스오버가 잘 맞는다. 클래식과 클래식 재즈, 팝을 적절히 섞어 부담스럽지 않은 음악은 와인의 매력과 깊은 맛의 향연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추천하며 “와인과 음악으로 당신의 심장을 깨워 보자. 당신의 꿈을 밀고 나갈 힘이 용솟음칠 것이다. 와인과 음악이 세상을 움직일 조용한 돌풍이 될 것을 예감한다.”라고 확신하고 있다.
와인과 음악이 세상을 움직일 힘은 무엇일까?
적당한 취기가 철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음악의 창작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위대한 철학가, 예술가, 음악가를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음악이 정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음악과 와인이 새로운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베토벤이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다. "음악은 개인에게 새로운 생산력을 고취시키는 와인이다. 나는 인류를 위해 이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여 그들을 정신적으로 취하게 만드는 바쿠스다(Musik ist der Wein, der zu neuen Erzeugungen begeistert, und ich bin der Bacchus, der für die Menschen diesen herrlichen Wein keltert und sie geitestrunken macht.)”
나는 음악과 와인이 세상을 움직일 가장 큰 힘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와인과 음악에 대하여 가장 잘 인용되는 것은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명언이다. "음악은 침묵이라는 잔을 채우는 와인이다(Music is the wine which fills the cup of silence.)". 음악도 와인처럼 대화에,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음악을 통해 소통할 필요를 말하고 있다. 프립은 분명히 침묵을 깨는 독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소통은 우선 각자 스스로의 입장 혹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광고인 박웅현이 젊었을 때 인켈(Inkel) 광고 공모전에 참가해서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라는 카피로 수상한 적이 있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번스타인이 지휘했을 때 태어나고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음악이 세 번째 태어나는 그 순간,
인켈이 함께 합니다.”
작곡에 의해서 음악이 처음 탄생하고, 지휘자의 해석에 의해서 다시 태어나고, 듣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세 번째 태어난다는 이야기다. 음악을 듣는 순간 그 음악은 내 것이 된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작곡가나 지휘자, 연주자 혹은 가수와 같은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생산자나 거래상이나 소믈리에와 같은 느낌으로 와인을 마실 필요가 없다. 호프만이 ‘아주 산만한 생각들(Höchst zerstreute Gedanken)‘에서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의해서 와인을 추천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덧붙여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해석과 의견은 대립이 아니라 소통의 필요로 이어져야 한다. 소통을 통해 우정을 나누든 사랑을 하든, 아니면 거창하게 한 국가와 세계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든......
다양한 장르 속에서도 수없이 다르게 표현되는 음악들, 다양한 카테고리 속에서도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수많은 와인들……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와인의 다양함을 사랑하고 이로 인해 더욱 소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나는 바쁘고 스트레스 많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음악을 틀고 와인 한 잔 마시며 다시 소통할 날을, 우정을 나눌 날을, 사랑할 날을 기다린다. 오늘 내가 선택한 와인은 Saperavi 품종으로 만든 조지아 와인이었고, 가장 즐겁게 들은 음악은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인형의 노래’였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사람인 호프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 와인과 음악이 서로 어울리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형의 노래’가 선사하는 재치와 화려한 멜로디에 유쾌해했고, Saperavi 와인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한 선택이었다. ‘인형의 노래’가 Saperavi 와인을 긴장하면서 많이 시음해야 할 며칠 후의 상황을 미리 즐겁게 해주기를 바랬고, 와인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한 잔 이상 마시지 않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인형의 노래’(인형의 이름이 올림피아이어서 ‘올림피아의 아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를 듣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에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오늘 하루가 즐거워질 것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cTM-m7q3PE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University Lecturer (Kyung Hee University, Catholic University of Pusan)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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