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대부(Godfather) 그리고 와인의 칼라

2021.05.14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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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대부(Godfather) 그리고 와인의 칼라

 

외로움은 다른 것으로 채워질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대상이 아니면 안 된다그래서 그리움은 추억으로 남는다.”

며칠 전에 누군가에게 인생상담 비슷한 것을 해줄 때 들은 말이다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그냥 개똥철학이라고 치부하며 넘어갔다가장 큰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오히려 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상이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든 멀리 떠나 보낸 자식이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이든……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자인 칼 둔커(Karl Duncker)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객체와 객체가 주는 즐거움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이해를 돕기 위해 그는 와인을 예로 들며 와인(Wine)과 와인을 마시는 것(Drinking the wine)은 모두 객체(Object)이자 즐거움을 주는 수단 혹은 원천(Means or Sources of Pleasure)이며와인을 마시면서 갖는 감각적 경험(Sensory experience in drinking wine)이 즐거움이라고 설명한다와인을 마시면서 갖는 감각적 경험만이 와인을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객체와 객체가 주는 즐거움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둔커의 분석이 예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둔커의 철학은 그리움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때로는 특정한 사람이나 장소가 아니라 이것과 연관된 행복한 경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럴 때는 사람도 장소도 대체가 가능하다내가 그리움은 그 대상이 아니면 안 된다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특정인이나 일정한 장소와 무관한 막연한 그리움도 있다사진가이면서 에세이스트인 이해선은 <인연언젠가 만날>이라는 책에서 내 추억의 시원은 어디쯤일까요근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방황하는 일은 이번 생에서 끝냈으면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정여울 작가는 <소설 읽는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 막연한 그리움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누군가와 대화하고 싶기는 한데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다털어놓고 싶은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미칠 듯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시작하기만 하면 생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내 곁의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내 말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의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아니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어줄 독심술의 귀재는 없을까내 마음을 읽더라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을그저 내 마음의 무늬와 빛깔을 가만히 바라봐주는 사람은 없을까.”

 

가끔 음악을 들을 때면 막연한 그리움을 느낄 때가 있다특히 영화 <대부(Godfather)>에 나오는 OST “사랑의 테마(Love Theme from The Godfather)”가 그렇다내가 이 음악을 들으면서 자주 느꼈던 그리움은 어떤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장필순이 처절하게 부르는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가 여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과거의 구체적인 추억을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시칠리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그냥 멜로디가 막연한 그리움에 젖게 만든다우리의 정서 이나 포르투갈의 파두(Fado) 음악에 깔려있는 사우다드(Saudade)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동안 시칠리아에 두 번이나 다녀왔지만 그 음악을 들을 때면 느끼는 막연한 그리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시칠리아에 다시 가고 싶은 그리움을 자극하지도 않는다영화 <대부>의 배경이 된 마을 코를레오네(Corleone)를 가보지 못해서 그런 것은 분명히 아니다사라진 것은 시칠리아 섬에 대한 신비뿐이고그리움은 여전이 대상도 없이 운무처럼 밀려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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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Theme from The Godfather”는 악기로만 연주되었을 때 그리움을 자극한다이태리의 니나 로타(Nina Rota)가 작곡한 이 곡에 래리 쿠식(Larry Kusik)이 가사를 붙여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Speak Softly, Love”라는 제목으로 불러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치게 되었다그러나 1972년에 개봉된 영화 <대부> 1편에서 들을 수 있는 경음악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그리움도 느끼게 하지 못한다적어도 내게는 그렇다차라리 1990년의 <대부> 3편에서 영화 속의 안토니 코를레오네(Antony Corleone, 알 파치노 분의 마이클 코를레오네의 아들)가 부르는 시칠리아어 버전 “Brucia La Terra”가 훨씬 낫다이 시칠리아어 버전도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래리 쿠식의 가사와 다르다.

 

래리 쿠식의 “Speak Softly, Love”에는 흥미로운 가사가 나온다.

“Wine-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

Deep velvet nights when we are one”

 

햇빛에 의해 따뜻해진 와인 칼라의 낮도대체 낮은 어떤 와인 칼라를 갖고 있을까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쓴 시 <Ode to wine>은 “Day-colored wine, / night-colored wine, / wine with purple feet / or wine with topaz blood”으로 시작한다흥미롭게도 래리 쿠식과는 반대로 낮 칼라의 와인을 노래하고 있다여기에서 와인이 갖는 낮의 칼라는 무엇인가모두 화이트 와인을 의미하는가?

 

네루다는 다양한 와인의 칼라를 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반면에 래리 쿠식이 말하는 와인 칼라는 실제로는 포도밭의 칼라인 듯하다포도밭을 전문으로 그리는 독일의 아트스트 미하엘 아피츠(Michel Apitz)는 자신이 그린 포도밭 그림과 와인에 대한 시를 매칭한 책의 제목을 포도밭의 칼라가 아니라 <와인의 칼라(Farben des Weines)>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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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앞부분에서 언급한 그리움의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게슈탈트 심리학자 둔커의 예를 바탕으로 내가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이 특정인인지 아니면 그 특정인과의 행복한 경험인지를 정확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후자라면 특정인은 대체가 가능한 것이고전자라면 불행하고 우울하게 생각할 필요만도 없다누군가를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런 대상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장필순의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들으며 와인 한 잔 마실 것을 추천하고 싶다그리고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그리고 삶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이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University Lecturer (Kyung Hee University, Catholic University)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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