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가 바뀔 때면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새로운 계획과 꿈으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고 지난 해에 못 이룬 것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주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반면 해가 바뀌는 순간은 친구 혹은 지인들과 술 한 잔 마시며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주로 스파클링 와인, 특히 샴페인을 마십니다. 1973년에 결성된 영국의 밴드 Sailor는 A Glass of Champagne이라는 노래로 1976년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 노래에서처럼 샴페인은 여성의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Let’s get together, the two of us over a glass of Champagne”. 그 외 생일 등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샴페인을 마시곤 하죠. 그러고 보면 해가 바뀌는 순간 샴페인을 마시는 것은 묵은 해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보람찬 새해의 도래를 축하하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버블이 이것을 상징합니다.
나는 해가 바뀌는 순간 스파클링 와인 대신에 독일 프랑켄(Franken) 지방에서 생산된 2014년 빈티지의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를 선택했습니다. 바르도르프(Bardorf)라는 와이너리가 생산한 스위트한 와인인데 바르도르프는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스위트 와인 생산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프랑켄 지방에서는 원래 뮐러 투르가우(Müller-Thurgau)와 질바너(Silvaner)라는 화이트 품종이 가장 많이 재배되고, 특히 질바너로 유명합니다. 프랑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약 40%는 복주머니 모양의 와인 병 복스보이텔(Bocksbeutel)에 담겨 판매됩니다.
바르도르프의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몇 년 전 프랑켄와인협회의 마케팅 디렉터에게서 선물로 받았다가 아껴두었었는데 이번에 해가 바뀌는 순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화이트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보다 칼라가 진해서 마치 레드 와인 같은 인상을 받았지요. 입안에서 느껴지는 미네랄과 은은한 페트롤 향, 그리고 뛰어난 산도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페트롤 향은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오토바이를 타신 아버님의 등에 매달려 논과 밭, 강가를 지나고 언덕을 넘어 할아버지 산소에 갔던 기억을 회상하게 해주었습니다. 경쾌한 산미와 달콤함은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을 동반하는데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의 농축미는 성숙해질 것을 훈계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와인을 마시면서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게 되었지요.
첫째, 헤르만 헤세가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서 말한 것처럼 와인은 “수많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열쇠(Schlüssel für Heere von Erinnerungen)”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금년에 깊이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둘째, 프랑스의 소믈리에 엔리코 베르나르도(Enrico Bernardo)는 <Savoir goûter le vin>라는 책에서(이 책은 <How Wine>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와인은 여행이다.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인생의 철학을 담고 있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땅의 개척자나 다름없다. 황금을 찾고 새로운 수맥을 찾는 사람이다.” 아주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와인은 여행’이라는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셋째, 영국의 철학자 Roger Scruton은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I drink therefore I am: A Philosopher’s Guide to Win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미켈란젤로에게서 모성애에 수반되는 비애와 거룩한 고통을 배웠다. 모차르트에게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슬픔도 기쁨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배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게 용서와 그 용서를 통하여 영혼이 어떻게 정화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와인을 통하여 배운 것은 내 안에서 솟아나왔다. 와인은 내가 알게 된 것의 가교일 뿐, 결코 그 원인은 아니었다.”
와인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이 호기심을 충족해서 내 스스로 만족감을 얻고 건전한 와인문화의 저변 확대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Asia Ambassador for Slovenian autochthonous grapes
University Lecturer (Kyung Hee University, Catholic University of Pusan)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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