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오만
와인과 오만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오만과 편견>은 2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로맨스가 신분과 재력이라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로서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한다. 성격과 신분, 재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부여한 오만, 그것이 낳은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오만이 거만이 아니라 진정한 자긍심과 동의어가 되는 순간 소설도 끝난다.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은 즐겁다는 것. 다른 하나는 와인에 대해서 너무 잘난척하는 사람 때문에 그 자리가 불편하다는 것. 후자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와인평론가이자 와인서적 베스트 셀러 작가인 휴 존슨(Hugh Johnson)이 한 말이 생각한다.
“Wine is like sex in that few men will admit not knowing all about it.”
와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휴 존슨조차도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 어쩌면 휴 존슨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은 오만을 치유하는 최고의 묘약은 와인이라고 말한다. 와인이 오만한 사람들에게 효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와인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의 증거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만 때문에 우리가 못하는 일은 경쟁자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것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잠재된 세상은 성공의 싹이 없는 세상보다 낫다. 와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성공은 와인 마시는 사람을 선호한다. 와인은 영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로저 스크루턴의 이야기는 1976년 스티븐 스피리어가 조직한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의 30주년 기념 테이스팅과 연관이 있다. 당시 샤또 마고의 사장 폴 포타예의 주도로 프랑스 전통의 와이너리 세 곳이 참가하지 않은 것, 파리의 심판에서 화이트 부분에서 우승한 제임스 바렛이 크로아티아의 이민자 그르치기와 언쟁을 벌여 두 사람이 동시에 30주년 기념 테이스팅에 초대될 수 없었던 것을 오만하다고 로저 스크루턴이 본 것이다.
한국와인협회 김준철 회장은 와인은 격식보다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라고 강조한다. 와인을 마실 때 몸에 밴 바르고 깔끔한 매너도 중요하지만, 어떤 와인이나 음식이 나왔을 때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샹베르탱 와인이 나올 경우 이 와인은 나폴레옹이 가장 즐겨 마셨던 와인으로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가지고 다녔으며,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크렘린에서 이 와인을 마셨는데, 나중에 워털루 전쟁에서는 이 와인을 준비하지 못해서 패배했다더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와인은 지식의 술이기 때문에 어느 알코올 음료보다도 이야기 거리가 많고 많이 알수록 더 잘 즐길 수 있다. 와인이 있는 자리에서 본인이 갖고 있는 지식을 적당히 공유해서 그 자리를 즐겁게 하고, 다만 오만하다는 평을 받지 않는 것 또한 지식만큼이나 중요하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University Lecturer (Kyung Hee University, Catholic University of Pusan)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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