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마시는 이유
와인을 마시는 이유
와인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와인이 무엇인가?", "왜 와인을 마시는가?", "언제 와인을 마시는가?", “어떻게 와인을 마실 것인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과 만나 와인을 마시거나 인터뷰 성격의 대화를 할 때면 "어떤 와인을 좋아하시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획일적이거나 특별한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다. 이미 와인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답은 이제 와인에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진지하면서도 전문적이다. 나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처럼 이미지의 반란을 통해서 관습적인 사고의 일탈을 유도하지는 않지만,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 혹은 철학이론에 등장하는 예들을 인용하면서 언어의 구사와 사고의 대상에서 다양성을 가질 것을 추천한다. 와인을 마시는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선 와인을 글라스에 따르자 화려한 꽃 향기가 피어났다. 난 어느 순간 장미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입안에 넣자 싱싱한 산딸기를 비롯한 과일 맛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어 달콤하고 부드럽게 입안을 조여주는 타닌(떫은 맛)과 정교하게 짠 교토의 직물처럼 복잡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맛에 혀가 매료됐다. 그리고 어질어질할 정도로 오래 이어주는 여운까지…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 중의 하나인 기바야시 유코가 ‘DRC 에세조 1985’를 마시고 한 말인데 <와인의 기쁨>에 적혀있다. 이전까지는 와인이 “단순한 술”이었지만 그러한 생각이 변한 순간이었다. 향과 맛에 대한 수식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와인을 전도하기에 좋은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문장이다.
무라카미 류가 <와인 한 잔의 진실>에서 와인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와인밖에 마시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제법 센 알코올을 마셨지만 지금은 전혀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센 알코올은 몸을 안쪽에서부터 억지로 바꿔가는 것 같아서 싫답니다. 목과 위가 뜨거워져 그곳만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 지금은 왠지 무섭습니다. 물론 목이나 위가 뜨거워지는 게 무서운 건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아닌 듯이 느껴지는 부위가 몸 속에 생겨나는 것이 싫어진 겁니다. 그래서 당신도 잘 알듯이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죠. 와인은 절대 목과 위를 뜨겁게 흐트러놓지 않거든요. 꽃이 핀 고원의 얕은 여울처럼 몸 속에 한쪽으로 녹아들 뿐이죠."
우리는 보통 와인이 주는 감각적인 매력과 다양성, 때로는 건강과 연관된 관점에서 말하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들어보면 수긍이 간다. 알고 보면 문학가들의 예리한 관찰과 독자적인 언어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헤르만 헤세는 다양한 와인들을 좋아했지만 <황야의 이리>에서 다음과 같이 선호하는 와인에 대해서 적고 있다.
"나는 대체로 특별히 이름나지 않은, 맛이 아주 깨끗하고 순한 평범한 시골 포도주를 좋아한다. 그런 술은 아무리 마셔도 별 탈이 없고, 그 고장의 땅과 하늘과 숲의 정답고 향기로운 맛을 풍긴다."
특정의 경우에는 와인전문가들의 약속된 언어가 필요하지만 위와 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모르고 지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이 와인의 저변확대와 와인과 더불어 사는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University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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