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여행(1)
와인과 여행(1)
여행과 관광의 두 개념을 구분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국어사전도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여행이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고, 관광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여행에는 공간적인 이동이 더 강조되어 있고, 관광에는 본다는 의미가 더 강조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이 능동적인 떠남이고 관광은 피동적인 떠남이라고 그 차이를 설명한다. 즉, 여행은 자기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주도하는 여행을 하는 것이고, 관광은 남이 세워주는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고 관광의 본질은 소비 행위라고 설명한다. 여행객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얻고 새로운 사람과 문화를 접촉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관광객은 관광을 통해 편안함과 즐거움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요구하고 그 대가로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이고 관광은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행과 관광을 이와 같이 구분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오히려 관광은 여행의 하나의 목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즈니스를 위한 여행, 쇼핑을 위한 여행, 구도를 위한 여행, 성지순례를 위한 여행 등과 마찬가지로. 장 그르니에가 『일상적인 삶』에서 여행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라고 말하며 동기에 따라 여행을 다양하게 분류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관광 여행은 호기심을 위한 여행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장 그르니에가 여행과 관광의 구분에 대해서 직접적인 의견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내 의견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 의한 여행과 관광의 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관광공사의 발표를 바탕으로 한 최근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2017년 1월부터 11월까지 해외로 나간 한국인 여행객 수는 전년 대비 18% 늘어난 2409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다고 한다. 12월까지 포함하면 2600만 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출국률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뜨거웠다. 비교를 위한 다른 나라의 통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었느냐의 문제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많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를 이용해서 해외로 가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유럽의 나라들의 경우에 비해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 훨씬 불편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해외 여행이 늘어날수록 테마여행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것이다. 와인이 이제 대중화의 길을 가고 있어서 와인과 관련된 여행도 점차 관심을 끌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와인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와인투어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참가하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와인투어에 일반 관광이 포함되기도 하듯이 거꾸로 일반 여행에 와인과 연관된 관광상품도 한두 개씩 포함되는 것이 늘어날 전망이다. 뮌헨에서 가을에 열리는 옥토버페스트에 많은 관광객이 가는 것은 맥주전문가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옥토버페스트는 하나의 관광 프로그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뮌헨의 브로이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브로이하우스는 옥터보페스트에 비해서 일년 내내 방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옥토버페스트가 1810년에 시작된 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축제인 ‘뒤르크하이머 부르스트마크트(Dürkheimer Wurstmarkt)‘는 1417년에 시작되었으니 옥토버페스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약 70만 명 가까이 방문하는 이 행사를 아는 내국인은 거의 없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와인은 맥주보다 훨씬 더 관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즐기는 사람은 맥주의 경우에 비해서 훨씬 적은 편이다. 여행업계 종사자들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 국내에서 와인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와인업계 종사자들이 와인을 매력적인 관광상품으로 소개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와인은 여행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의 와인생산지에서도 많은 와인이 와인산지를 찾는 와인애호가들에 의해서 구입되고 또 현지에서 소비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와인산지가 관광적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탈진 포도밭은 그 자체로도, 또한 강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경사진 언덕의 광활한 포도밭도 멋있다. 멋진 와이너리 시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관광요소다. 수많은 와인축제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볼거리보다는 체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와인애호가들이 아니어도 와인생산지를 향하는 발길이 잦다.
<포트와인 생산의 중심지인 포르투갈의 빌라 노바 드 가야(Vila Nova de Gaia)>
와인과 여행을 접목시키려는 체계적인 시도가 최근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와인과 관광을 접목한 컨퍼런스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2016년부터 Global Conference on Wine Tourism을 개최해오고 있는데 2016년에는 조지아에서, 2017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멘도사에서 개최되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와인 이벤트 회사인 Wine Pleasures는 2009년부터 International Wine Tourism Conference를 개최해오고 있다. 해마다 장소를 바꾸어 가며 개최되는 이 행사는 와인과 관광을 접목시킨 유럽 최고의 전문행사로 2일간의 컨퍼런스와 하루의 워크샵으로 구성된다. 2017년에는 이태리의 시칠리아 섬에서 9회째 행사가 열렸고 2019년 4월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10회를 맞이했다. 미국에서는 2011년부터 Wine Marketing & Tourism Conference가 개최되어 오고 있다. 첫 해에는 캘리포니아의 나파(Napa)에서 열렸고 2018년 10월에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로사(Santa Rosa)에서 3일간 열렸다.
건전한 와인문화의 보급은 와인 비즈니스에 의해서만 달성할 수 없다. 와인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고, 문화상품으로서 와인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고, 와인과 관련된 여행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제공해야 한다. 와인산지들이 관광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와이너리 투어와 같이 특화된 관광상품으로 범위를 좁힐 필요가 없다. 일반적인 여행 프로그램에 와인과 관련된 매력적인 요소가 하나라도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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