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에 따라 마시는 와인 비냥(Vinhão)
사발에 따라 마시는 와인 비냥(Vinhão)
와인투어 형태이든 일반적인 관광의 형태이든 와인이 생산되는 나라에 갈 경우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와인을 맛보는 것이 와인애호가에게는 큰 매력이다. 특히 이 와인과 잘 어울리는 현지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국내에서는 포트와인이나 마데이라 와인과 같은 주정강화와인을 제외한 포르투갈의 스틸 와인을 아직 다양하게 접할 수 없지만 최근 몇 년간 포르투갈와인협회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으로 인해 포르투갈 와인의 수입이 늘어나고 있다. 포르투갈은 세계 11위의 와인생산국이다. 인구는 천만 명이 조금 넘을 정도로 적지만 와인 소비가 많아서 세계 12위의 와인소비국이다. 와인의 수출에 있어서는 Volume 기준 세계 9위이며, Value 기준으로는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일주일의 일정으로 와인과 관광이 적절히 매칭된 포르투갈 투어를 다녀왔고 이어 바이라다(Bairrada)에서 열린 국제와인행사에 참가했다. 바이라다는 스파클링 와인생산으로 유명한 곳이고 특히 바가(Baga)라는 토착품종을 많이 사용한다. 바이라다 이외에 비뉴 베르드(Vinho Verde), 도우루 밸리(Douro Valley), 리스보아(Lisboa), 알렌테주(Alentejo) 지역을 다녀왔는데 전체 일정 동안 테이스팅한 수백 여종의 와인 중에서 킨타 다스 아르카스Quinta das Arcas)라는 와이너리가 생산한 비냥 이스콜랴(Vinhão Escolha)가 가장 독특했다.
이 와인은 비냥(Vinhão) 100%를 사용해서 만든 비뉴 베르드 DOC의 와인이다. 비뉴 베르드는 포르투갈의 가장 북쪽에 있는 미뉴강(Minho) 강과 도우루(Douro) 강 사이의 와인산지로 포르투갈에서는 가장 큰 DOC 지역이다. 보통은 알코올 도수가 낮고 가벼우며 톡 쏘는 맛의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레드, 로제, 스파클링 와인도 생산된다.
킨타 다스 아르카스(Quinta das Arcas)가 생산한 비냥(Vinhão) 100%의 와인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은 NCampelo라는 포르투갈 와이너리의 오너인 누노 캄펠로(Nuno Campelo)였다. 우리 일행이 Herdade Penedo Gordo 와이너리에서 운영하는 알렌테주의 보르바(Borba)에 있는 게우트하우스 전체를 빌려 하루를 묵던 날 디너와 겸해서 마셔보라고 누노 캄펠로가 직접 가져온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비뉴 베르드의 사람들은 비냥으로 만든 포도주를 집에서 많이 마시며 특히 와인 잔이 아닌 사발로 마신다고 설명했다. 와인이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을 할 경우 품질의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는데 생소하면서도 신기했다. 비냥으로 만든 모든 와인에 해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가정 내에서 혹은 이웃사람들과 마시기 위해 가정에서 만든 경우에만 해당하고 현대식 양조시설을 갖춘 와이너리에서 만든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포르투갈 사람처럼 사발에 와인을 마시면서도 이 와인에 매력을 느낀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다.
<비냥을 사발에 담아 마시는 아베크와인의 최태호 대표와 이 와인을 소개한 누노 캄펠로>
아주 진한 보랏빛을 띤 이 와인은 붉은 과실과 풀, 초콜릿, 바닐라 향이 두드러졌고 조금 느낄 수 있는 애니멀 노트가 그 복합미를 더해주었다. 칼라에서의 기대감과는 달리 미디엄 바디의 이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12%밖에 되지 않고 부드러운 탄닌과 뛰어난 밸런스가 매력적이었다.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러워 사발에 계속 입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90% 프렌치 오크통과 10% 아메리칸 오크통에서 6개월 동안 숙성시킨 이 와인의 경우에는 누노 캄펠로의 설명과는 달리 수출에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시골의 맛을 담은 와인이라고 느껴져 더욱 끌렸다. 올리브와 포도나무 밭에 둘러싸여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던 분위기 때문에도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알코올 불로 즉석에서 구운 소시지와도 잘 어울렸다.
비냥으로 만든 와인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도 행복한 경험이었지만 이 와인을 소개한 포르투갈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포르투갈 식의 음식을 곁들이고 그들의 방식으로 와인을 마셔본 것은 포르투갈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생산한 와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누노 캄펠로에게 감사한다. Obrigado Nuno!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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