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향, 천국의 맛
천국의 향, 천국의 맛
언론인이자 교육자인 미국의 심란 세티(Simran Sethi)가 쓴 책 <빵, 와인, 초콜릿>의 맨 첫 부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것은 음식에 관한 책이 아니라 실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떤 것에 완전히 몰두해 음미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 관한 책이다. 나는 이런 사랑을 적어도 음식에서는 런던의 비밀스러운 서퍼클럽(Supper Club)이나 파리의 숨은 비스트로(Bistro), 몸바이의 다바(Dhaba)처럼 정말 근사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가장 큰 사랑은 소박한 곳에서, 내 모닝커피나 빵 한 조각, 초콜릿 한 입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런 평범한 즐거움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면 그것을 새롭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심란 세티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오는 소확행, 그리스의 문학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다음과 같이 쓴 내용과 같은 맥락의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 필요한 건 그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베로나 서쪽의 가르다(Garda) 호수 가까이에 있는 와이너리 Villa Cordevigo가 생산한 바르돌리노키아레또(Bardolino Chiaretto) DOC의 로제 와인 이름이 Heaven Scent이다. 코르비나(Corvina) 80%, 론디넬라(Rondinella) 20%를 블렌딩해서 만들었다. 특이한 병 모양과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복숭아 혹은 조금 연한 핑크 빛 와인의 칼라와 함께 상당히 매력적이다. 감귤류 과일과 꽃 향이 느껴지고 입안에서는 신선함과 함께 딸기와 체리 맛이 살짝 다가온다. 산도와 밸런스도 좋다. 탄성을 지를만한 훌륭한 와인은 아니지만, 이 와인을 마시는 장소가 아무리 누추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상상력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작품 <선상파티의 점심, Le déjeuner des Canotiers >에 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Heaven Scent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다. 천국의 향, 천국의 맛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아주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일상에서 늘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는 감각적인 쾌락일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인 쾌락은 그랑 크뤼와 같은 아주 고급와인이나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와인을 마셨는가가 중요하고 또한 어떤 음식과 함께 즐겼느냐가 중요하다.
사실 나는 해외에서 개최되는 국제와인행사에 비교적 자주 참가하는 편이라서 특별한 음식과 함께 다양한 와인을 마셔본 경험이 많지만 미식가도 아니고, 와인과 음식의 매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와인과 음식이 어울리면 그냥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이 매칭을 즐기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5월 이태리에서 한 경험을 통해 와인을 잘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마실 경우 최고의 감각적인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게 천국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값비싼 와인도 아니었고 특별히 비싼 음식도 아니었다. 그래서 심란 세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범한 즐거움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면 그것을 새롭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페데리치(Federici) 가문이 운영하는 이태리 리구리아 주에 있는 와이너리 라 바이아 델 솔레(La Baia del Sole)가 생산하는 100% 베르멘티노(Vermentino)로 만든 와인 사르티콜라(Sarticola)를 해물 스파게티와 함께 마셨을 때 천국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의 만’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페치아 만’에서 가까운 한 레스토랑에서 이 와인의 생산자인 페데리치 형제와 이태리 친구 엔조(Enzo)와 함께 한 디너였다.
다음 날 엔조와 함께 친퀘 테레(Cinque Terre)에 관광을 갔었는데 5개의 테레 중 북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몬테로소(Monterosso)에서 엔조의 제안으로 낮에 엔초비에 곁들여 친퀘 테레에서 생산된 와인을 한 잔(문자 그대로 단 한 잔) 마셨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와인은 Azienda Agricola Vétua가 생산한 이 지역의 화이트 와인이다. 엔조의 말에 의하면 진한 칼라 때문에 Cinque Terre DOC를 받지 못한 와인이라고 한다.
모두 이태리의 리구리아에서 한 경험이라서 특별한 곳이라는 것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고가의 와인도 아니었는데 천국의 맛을 경험했다고 생각함으로 인해 나는 심란 세티의 말에 공감을 갖게 되었다. 나의 경험은 모닝커피나 빵 한 조각, 초콜릿 한 입과 같이 일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와인 애호가들이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것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평범한 장소에서 그런 기회를 갖는다면 상상의 나래를 펴서 우리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면 행복했던 추억과 연계해보자. 와인은 헤르만 헤세가 말한 것처럼 “갖가지 추억을 여는 열쇠(Schlüssel für Heere von Erinnerungen)” 아닌가?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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