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의 노래(1)
축배의 노래(1)
우리는 술을 마시며 건배를 많이 한다. 멋진 건배사에 이어지는 건배는 술자리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모임의 회장님, 다수의 부회장님, 총무님 등등 감투를 가진 사람들이 골고루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할 때면 공공기관이 주최가 된 행사 혹은 류근 시인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에 등장하는 시 ‘계급의 발견’을 연상하게 된다. 상대의 존재감을 배려하기 위해 건배사를 하게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자진해서 건배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축배의 노래는? 부르는 사람이 없다. 가사를 알지도 못하고 가장 잘 알려진 Brindisi는 성악가가 아니면 부를 수도 없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이 축배의 노래가 모 대통령의 취임 경축음악회에서, 모 도지사의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누가 기획했는지 기절초풍할 일이다. 아무리 멜로디가 흥겹고 제목이 축배의 노래이지만 그 가사내용을 알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의 민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가사는 Brindisi에 비하면 양반이다. Brindisi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의 아리아라고 해도 나설 자리가 아닌 곳이 있다.
<지난 5월 포르투갈의 와인산지 바이라다(Bairrada)의 중심지인 아나디아(Anadia)에서 열린 공연에서 Brindisi를 부르는 성악가들이 스파클링 와인 잔을 들고 있다>
축배의 노래라고 우리나라에서 소개되기는 1954년에 개봉된 리처드 소프(Richard Thorpe) 감독의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에 등장하는 곡 ‘Drink, Drink, Drink’도 마찬가지다. Brindisi보다 더 낭만적이고 서민적이다. 가사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곡이 더 건전하다. 그래도 이 곡이 높으신 분들의 행사에서 공연되지 않는 것은 오페라의 아리아가 아니기 때문일까? 차이는 축배를 드는 술에도 있다. Brindisi에서는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황태자의 첫사랑에서는 그 배경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인지라 맥주가 등장한다. 하이델베르크로 유학 온 왕자의 학생 신분이 작용하기도 했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포스터>
우리나라 노래 중에서는 축배의 노래가 없을까? 홍성기 감독의 1959년 영화 <청춘극장>의 음악담장자 김동진이 작곡하고, 이태환 작사의 주제곡 축배의 노래가 있다. 남일해와 송민도가 함께 불렀다.
<1963년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가수 송민도의 애창곡집>
“한 송이 순정의 꽃 뉘에게 바치리까
마음의 창문을 내 앞에 열어주오
술잔을 높이 들어 청춘을 노래하면
이 밤은 즐거우리 인생은 즐거우리
나의 사랑 나의 희망 어떠한 가시밭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나의 사랑 나의 행복
어떠한 가시밭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어느새 잠이 들어 먼동이 트이면은
정든 임 그 모습을 그리며 잠 이루리
냉정한 인생에도 사랑은 따사로워
잠들면 꿈을 꾸리 꿈길에 만나보리
나의 사랑 나의 희망 어떠한 가시밭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나의 사랑 나의 행복
어떠한 가시밭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어떠한 가시밭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그런데 궁금해진다. 이 곡에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1980년대에 수입이 허가된 와인은 당연히 아니었고, 맥주일 가능성도 낮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좀 고급스러운 전통주이겠지. 위에서 배경이 된 국가가 각각 다르고, 술이 각각 다른 축배의 노래 3개를 소개했지만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 모두 사랑의 노래라는 것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이미 음주가(A Drinking Song)에서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라고 노래한 것처럼 사랑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인가?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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