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다짐
새로운 다짐
해가 바뀔 때면 우리는 새로운 다짐을 많이 합니다. 신정에도 그렇고 구정에도 그렇지요. 가족들이 모여 설을 같이 보내는 구정에는 가족 구성원들간에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로운 결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지성인 이어령 박사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완성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뒤가 비어 있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빈칸을 찾아 채워줘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그 빈칸을 채우려 하는지요?
이어령 박사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바이블시학으로 소개됩니다. “진달래, 찔레꽃은 좋아해도 백합과 장미 향기는 맡아본 적이 없는 사람, 보리밭, 콩밭에서 일해본 적은 있어도 포도원, 올리브 동산에서 땀 흘린 적은 없는 사람, 험한 산에서 길을 잃었어도 광야를 헤매면서 복타본 적은 없는 사람…” 이렇게 생활과 문화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을 적은 것이 이 책이라고 합니다. 74세에 기독교 세례 받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 “맹물이 포도주로 변할 때”와 “포도밭에서 일할 때”라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시를 소개합니다.
“기억은
시간의 저장소가 아닙니다.
휘파람 소리같이 지나가는 시간과 사건들을
욕망의 참나무통 안에 가두어 발효시키는 것
철 지난 포도알들이 노을처럼 불타다가 터지면
그때 당신은 내 일상의 기억들을 발효시키는
지하실의 어둠이 되어 찾아오십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오래 침묵하는 법과
아픔을 참는 법과
눈물 없이 망각하는 법을
일러주십니다.
이제는 늙어 마지막 내 한 방울의 젊음이
가을 벌판에 쏟아지는 찬비가 되는 날
비로소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따르라 빈 잔에
눈물처럼 고이게 하지 말고
희열의 샘물처럼
사랑의 잔을 넘치게 하라.
맹물의 기억은 오로지
당신의 지하 창고의 어둠 속에서만
진한 향기의 포도주가 됩니다.”
<맹물이 포도주로 변할 때>
“포도는 잡초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고 하더라
그 목마름이 얼마나 타올랐기에
물을 찾는 뿌리가 수십 척 땅속
암반수에 이른다고 하더라
포도나무 가지에 움이 트고
작은 꽃들이 피어날 때
님이 와서 말한다고 하더라
너를 사랑한다고
그 갈증의 뿌리가 나뭇가지마다
포도송이를 영글게 할 때
포도원지기는 이마의 땀을 씻고 말한다 하더라
이 포도밭은 당신의 것
당신이 이 포도밭 주인이라고
그분이 목말라할 때 신 포도주가 되지 않도록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포도를 딴다 하더라
알알이 소망의 빛이 배인 포도송이를 따다 술을 빚고
말한다고 하더라
여기 지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술이 있나이다
말한다고 하더라
내가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요
오직 한 분의 입술을 적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고 하더라
포도로 빚은 술은 사람의 피보다
더 붉다 하더라
여름 태양빛이 노을로 불탈 때보다
더욱 붉다 하더라
내가 포도밭에서 일할 때
그런다고 하더라”
<포도밭에서 일할 때>
종교인들은 이러한 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이해하겠지요. 저같이 무신론자도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구정을 앞두고 이러한 시들을 소개한 것은 필자가 기독교 신자가 되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어령 박사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구정을 맞이하며 “포도주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문장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어서입니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와인을 마시면 즐겁고 행복하다”일 것입니다. 더센트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와인을 마시는 행복한 날들이 더욱 많기를 기원합니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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