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인 와인여행에 대한 갈증
인문학적인 와인여행에 대한 갈증
작년에 지인에게서 책 한 권을 소개받았습니다. “조만간 이 책을 구해서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한지 어느덧 한 해가 지났습니다. 언론인 출신의 손관승이 쓴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책인데 마침내 이 책을 손에 쥐고는 저자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부러워했지요. 저자는 직장생활을 정리한 후 젊은 시절 읽었던 책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200년 전 괴테가 떠났던 그 여행길에 오릅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200년 전 괴테가 떠난 그 길을 따라 내 삶도 새로이 시작되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손관승은 “여행은 체력이다. 로마에서는 특히 그렇다. 처음엔 눈으로 시작하다가 머리로 이어진 뒤 결국은 다리 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로마 여행이다. 그럴 때는 잠시 쉬었다 가야 한다.”라고 말하며 괴테가 다녀 간 카페 그레코(Caffè Greco)에서 느긋함에 대한 것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너무도 오랫동안 느긋함과 다른 방향에 서있었다. 느린 것은 악, 더 나아가 죽음을 의미하는 직업을 살아왔다. 오죽하면 기사의 마감시간을 가리켜 데드라인이라고 표현할까. 이제부터 나는 다른 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곳 카페 그레코일지도 모른다.”
카페 그레코의 실내 모습
오스트리아의 화가 루드비히 파씨니(Ludwig Passini)가 1856년에 그린 <로마의 카페 그레코에 있는 예술가, Künstler im Cafe Greco in Rom>
지난 3월 로마에 갔을 때 ‘스페인 계단’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 그레코에 잠시 들렸습니다. 로마에 같이 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곳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실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괴테의 사진이 걸린 곳을 잠시 보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아주 행복했었는데 손관승이 쓴 책을 읽으니 아쉬움이 많이 느껴집니다.
소설가 천운영은 2013년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의 말라가에 머물렀는데 그때 어릴 적에 읽었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읽었다고 합니다. <돈키호테>의 첫 페이지는 돈키호테의 식단을 소개하며 시작되고 책에 돈키호테와 산초가 먹는 음식에 대한 소개가 많이 나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일 년에 걸쳐 <돈키호테>에 나오는 음식 목록을 작성하고, 그 음식을 찾아 스페인 곳곳을 방문하고, 마침내 작년 말 연남동에 “돈키호테의 식탁(La Mesa del Quijote)”이라는 스페인 음식점을 차렸습니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궁금증에 견디다 못해 며칠 전 이 음식점을 찾아갔습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 결국 자리가 없어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쁜 천운영 작가와 몇 마디 대화만 나누고 온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잠시 만나본 그녀의 열정적인 모습이 아이디어만큼이나 멋지게 여겨졌습니다.
연남동에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의 식탁(La Mesa del Quijote)” 간판
연남동에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의 식탁(La Mesa del Quijote)” 내부 벽면에 걸려 있는 예술작품
작가 정여울은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 손에는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 쥐어져 있었다. 입시 지옥에서 헤맬 때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있었고,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는 《데미안》을 읽고 있었으며, 내게는 도무지 창조적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가슴앓이를 할 때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있었다. 의미 없이 나이만 먹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려울 때는 《싯다르타》를 읽고 있었으며, 내 안의 깊은 허무와 맞서 싸워야 할 때는 《황야의 이리》를 읽고 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지만, 내가 살아온 ‘무의식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름다운 필연이었다.”라고 적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태어난 도시 독일의 칼프, 그가 생의 마지막 날들을 보낸 스위스의 몬타뇰라 등 헤세의 흔적을 찾아 다니고 나서 쓴 <헤세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소개하는 것이지요. 헤세를 좋아하고 해외출장이 잦은 내게 늘 교훈을 주는 멋진 책입니다.
손관승과 정여울 작가는 여행과 인문학을, 천운영 작가는 음식과 인문학을 접목시켰습니다. 와인과 연관된 일로 수많은 유럽과 남미의 도시들을 방문하면서도, 대학에서 와인과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도 아직 이러한 열정과 아이디어를 가지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특히 천운영 작가의 아이디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녀가 개발한 음식을 맛보며, 스페인 와인 한 잔 마시며(가능하면 돈키호테의 고장 ‘라 만차’에서 생산된 와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볼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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