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 and Wine – A Homage to Helmut Kohl
Berlin and Wine – A Homage to Helmut Kohl
‘독일 통일의 아버지(Vater der Deutschen Einheit)’로 불리는 헬무트 콜(Helmut Kohl) 전 독일 총리가 지난 2017년 6월 16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독일 전체가 전후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였던 그의 서거로 슬픔에 잠겼다. 2012년 독일의 역사학자이며 정치학자인 한스-페터 슈바르츠(Hans-Peter Schwarz)가 쓴 <헬무트 콜. 정치적 전기(Helmut Kohl. Eine Politische Biographie)>에서는 ‘새로운 유럽의 건축가(Architekt des neunes Europas)’로서의 헬무트 콜을 더 부각시켰다.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장 모네(Jean Monnet)가 1976년에 처음으로 유럽의 명예시민이 된 후 1998년에 역사상 두 번째로 유럽의 명예시민이 되었던 그는 유로화를 도입하는 등 유럽의 통합에 기관차 역할을 했다. 그의 장례식은 7월 1일 역대 처음으로 유럽장(葬)으로 엄수되었다.
1982년부터 총 16년간 서독의 총리, 이어 통일된 독일의 총리였던 헬무트 콜은 2008년 자택에서 넘어져 크게 다쳤으며 이때부터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었고 매년 건강이 악화되었다. 2009년 10월 3일 독일 아데나워 재단(Konrad-Adenauer-Stiftung)은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최하며 독일 ‘통일의 아버지들을(Väter der Einheit)‘ 초대했다. 헬무트 콜 이외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초대 대통령과 조지 부쉬 미국 제41대 대통령이 참가했다. 건강의 악화로 인해 생긴 언어장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없게 그는 이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 통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보다 내게 더 나은 것은 없다(Ich hab’ nichts Besseres, stolz zu sein, als auf die Deutsche Einheit).” 1,800명의 관중이 헬무트 콜에게 어떤 감동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진: B.Z. Berlin>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10월 3일에 독일이 통일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더불어 베를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East Side Gallery가 이 기간에 만들어졌다. 이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를 가로 질렀던 1,316미터 길이의 장벽에 세계에서 가장 큰 Open Air Gallery가 조성된 것이다. 1990년 2월부터 9월까지 21개국 118명의 아티스트들이 106개의 그림을 그렸다. 가장 유명한 것은 러시아의 화가 디미트리 브루벨(Dimitri Vrubel)이 그린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입맞춤하는 그림이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을 극복하게 도와주소서(Mein Gott, hilf mir, diese tödliche Liebe zu überleben)“라고 이 그림에 적혀있다. 1979년 동독 창건 30주년 기념식에서 있었던 ‘형제의 키스(Bruderkuss)‘를 묘사한 이 그림도, 1942년 베를린에서 출생한 기타 치며 노래하는 가수 라인하르트 마이(Reinhard Mey)가 작사작곡을 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되고 이후 분단된 베를린의 아픈 모습을 담은 노래 ‘나의 베를린(Mein Berlin)’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어느덧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베를린을 회고하고 있다. “저항과 모순, 현실과 유토피아. 그것이 나의 베를린이었다(Widerstand und Widersprüche, Wirklichkeit und Utopien. Das war mein Berlin).“ 이렇게 라인하르트 마이가 노래한다.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의 어느 날 독일에서 베를린 태생의 독일인 친구와 맥주 실컷 마시고 취해 함께 라인하르트 마이의 노래 ‘나의 베를린’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괴로워한 적이 있었던 것을. 그는 베를린의 ‘영광’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그리워했고, 나는 흘러가는 청춘의 모순된 날들에, 저항적인 고집에, 당시까지 베를린에 가보지 못한 부족한 용기에 괴로워했다.
<East Side Gallery에 그려진 작품 ‘형제의 키스’>
베를린은 그 동안 많이 변하고 발전했다. 유럽에서 가장 hot한 place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다소 불리한 위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유럽 단체관광 프로그램에 거의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독일에서 쾰른이 오랫동안 가졌던 예술적 지위를 베를린이 차지해 버렸다. 조이한이 쓴 책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이 출판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를린은 이제 뉴욕과 더불어 클럽 문화를 세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베를린 경제력의 약 20%는 창의적인 문화사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헬무트 콜 수상이 타계한 며칠 후인2017년 6월 18일에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의 작가 손관승은 ‘신뢰·창의∙스토리 3大 자본, 베를린을 힙스터 聖地로’라는 글을,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의 저자 정여울은 6월 19일에 ‘베를린. 한 달쯤 살아 보면 더 좋은 ‘휘게’의 도시’라는 글을 발표했다. 발 품을 팔아서 정성스럽게 쓴, 베를린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글들이다.
칸 국제 영화제,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꼽히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 ‘베를리날네(Berlinale)’는 1951년 동서 화합을 기치로 내걸고 당시 분단되어 있던 독일의 통일을 기원하는 영화제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슬로건이 ‘Schaufenster der freien Welt(자유로운 세계의 쇼윈도)’였다. 그러나 이미 30년 가까이 ‘자유로운 세계’의 의미는 다행히도 더 이상 분단된 독일이나 유럽의 냉전시대를 겨냥한 의미일 필요가 없어졌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독일와인협회(DWI)와 10년째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다. 매년 독일와인협회가 선정하는 약 20여 종의 독일와인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공식행사에서 서빙된다.
2월 중순에 개최되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에 베를린은 전세계 와인업계의 주목을 받는다. 매년 2월 첫째 주 목요일부터 4일간 세계 5대 국제와인품평회 중의 하나인 ‘베를린와인트로피(Berliner Wein Trophy)’의 Winter Edition이 열리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베를린와인박람회(Weinmesse Berlin)’를 개최한 베를린의 회사 DWM이 1994년에 이 행사의 일환으로 전시업체가 출품한 와인 중에서 소비자가 선호하는 와인을 선정하는 일종의 품평회를 도입했다. 다음해부터는 와인전문가만 이 품평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2000년에 이 품평회는 베를린와인트로피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고, 2004년부터 국제와인기구 OIV의 승인을 받았으며, 2007년부터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로고로 사용된 입상와인을 위한 메달 스티커가 와인의 병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정부, 독일 연방 정부, EU를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해서 얻어낸 결과였다. 한때는 분단된 독일의 상징이었고 이제는 통일된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이 전세계의 와인 유통망을 통해 알려지고 있으니 베를린와인트로피를 통한 베를린의 도시 마케팅 효과는 엄청난 것 같다.
헬무트 콜은 와인을 즐겨 마셨다. 그의 고향인 라인강변의 루드비히스하펜(Ludwigshafen)이 속해있는 팔츠(Pfalz) 지방의 와인을 특히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마찬가지로 이 지방의 전통음식인 자우마겐(Saumagen)이다. 콜은 팔츠 지방의 작은 도시 다이데스하임(Deidesheim)에 있는 다이데스하이머 호프(Deidesheimer Hof)에서 국빈들과 식사하기를 좋아했다. 다이데스하이머 호프는 호텔과 슈바르처 한(Schwarzer Hahn), 상크트 우어반(St. Urban)이라는 이름을 가진 2개의 레스토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크트 우어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처 전 영국 수상,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 부부,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등과 식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상크트 우어반은 헬무트 콜의 ‘제2의 거실(Zweites Wohnzimmer)‘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상크트 우어반에서 시라크 대통령과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고 있는 헬무트 콜>
와인애호가였던 헬무트 콜이 생전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평화롭게 무너진 모습을 레이블에 담은 와인을 알았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독일 모젤와인협회의 아돌프 슈미트(Adolf Schmitt) 명예회장은 1990년 빈티지의 젝트에 그날 전세계에 보도된 사진을 레이블에 담았다. 그리고 “1899년 11월 9일의 베를린에 대한 기억(Erinnerung an 09. 11. 1989 in Berlin)”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22년의 숙성 후에 처음으로 데고르쥬망을 하기 시작하고 매년 수백 병씩 데고르쥬망 후 출시되고 있는, 금년에도 새로이 출시될 이 1990년 빈티지의 젝트는 엘플링(Elbling)이라는 주로 모젤에서 생산되는 아주 산도가 높은 포도품종으로 만들어졌다. 아직도 뛰어난 산도로 신선함을 잃지 않고 있는 이 희귀한 와인은 마치 베를린 장벽이 평화롭게 무너진 역사적인 순간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슈미트 회장은 이미 sold out된 1989년 빈티지의 리슬링 젝트에도 같은 사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아돌프 슈미트 회장은 유럽의 평화를 꿈꾸며 쉥엔(Schengen)에서 괴테가 그린 그림을 레이블에 담아 ‘시인의 꿈(Dichtertraum)’이라는 프리미엄 젝트를 생산해오고 있다. 2017년에는 East Side Gallery에 있는 그림을 레이블에 담은 ‘베를린(Berlin)’이라는 이름의 리슬링 젝트와 같은 이름의 리슬링 화이트 와인을 한국의 파트너인 수입사 나루 글로벌을 통해 론칭했다. ‘베를린’ 리슬링 화이트는 독일의 이네스 바이어(Ines Bayer)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 ‘Es gilt, viele Mauern abzubauen(무너뜨릴 벽은 많다)’를, ‘베를린’ 리슬링 젝트는 독일의 비르깃 킨더(Birgit Kinder)가 그린 ‘Test The Rest’를 레이블에 담고 있다. 후자는 한때 동독의 국민차였던, 주로 플라스틱과 마분지로 만들어진 트라반트(Trabant, 애칭으로 ‘트라비’라고 부른다)가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장벽을 트라반트의 손상 없이 뚫고 나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평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한국에 수출되는 와인에 베를린의 East Side Gallery에서 볼 수 있는 그림을 자신이 생산하는 와인의 레이블에 담았다고 슈미트 회장은 설명한다.
나는 슈미트 회장이 생산한 1989년과 1990년 빈티지의 젝트를 여러 번 맛본 경험이 있다. 오늘은 이 위대한 젝트 생산자의 와인을 맛본 순간을 되새기며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명복을 빌고 싶다. Ruhe in Frieden!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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