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의 전설’과 와인 바이러스
영화 ‘바람의 전설’과 와인 바이러스
2004년 히트를 쳤던 영화 ‘바람의 전설’은 처남이 경영하는 총판 대리점에서 관리사원으로 근무하면서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박풍식(이성재 분)이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동창생 송만수(김수로 분)를 통해 알게 된 사교댄스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내용을 담은 영화이다. 최고의 댄서가 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 춤의 고수들을 찾아 다니며 5년 동안 배운 춤솜씨로 사교댄스의 스타로 변신한 박풍식은 미모의 여형사 송연화(박솔미 분)를 만나게 된다. 춤바람 난 경찰서장의 부인이 카바레에서 제비에게 수천 만원을 갖다 바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풍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짜 환자로 입원하여 풍식에게 접근하고 그의 과거사까지 속속들이 알게 된 연화는 풍식에게서 춤을 배우며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영화 ‘바람의 전설’은 사교댄스의 붐을 일으키게 되었고 같은 해에 일본에서는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이 인기리에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다음해 11월 말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이 연재만화는 국내 와인시장의 저변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유사점 이외에도 영화 ‘바람의 전설’은 와인과 연계해서 살펴볼 만하다.
종이컵이 없어서 커피만을 쏟아내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만난 여형사 연화에게 풍식은 “콜롬비아산 수프레모라는 커피인데 향이 참 좋지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병실에서 원두커피를 한 잔 마실 것을 권한다.
병실로 들어온 연화에게 풍식이 커피를 권하며 말을 건넨다.
“드셔보세요. 향이 참 좋습니다. 일반 자판기 커피랑은 비교가 안되죠.”
“고맙습니다. 맛있네요.”
“향기가 좋다라고 해주십시오.”
“향기가 좋네요.”
“그렇죠? 이 향기가 날 행복하게 합니다.”
커피의 향기는 풍식에게 춤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며 연화가 풍식의 제안대로 향기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풍식의 유도로 연화가 춤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대화들은 아직 와인을 접하지 못한 사람에게 와인의 경험이 제법 있는 사람이 와인을 한 잔 마셔볼 것을 권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와인을 처음 접한 사람이 맛있다고 말했을 경우 와인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섣부르게(?) 와인의 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풍식과 연화는 공통으로 처음 춤을 배우는 순간 바람이 부는 것을 느낀다. 바람은 춤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을 상징하며 영화의 제목인 ‘바람의 전설’이 바로 이 장면과 연계되어 있는 것 같다.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에게 값싼 와인보다는 맛있는 와인을 마셔보게 하는 것이 그에게 와인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기에 유리하다는 일리 있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첫경험’이 아주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의 끝 장면에서 남주인공인 풍식의 행복한 웃음과 눈물이 보이며 여주인공인 연화가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 사람의 정체를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춤을 추는 사람이고 난 그 춤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에도 이젠 바람이 분다. 행복한 바람이.”
와인에 심취한 사람들이 와인 바이러스를 전파하며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닐까?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박정우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이 ‘아, 나도 저 춤 한 번 배워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난 성공한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와인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와인에 심취한 사람들이 와인을 권하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와인은 단순히 술이 아니고 문화라고 흔히들 말한다. <남들이 춤 출 때… “우리는 예술합니다”>라는 ‘바람의 전설’ 광고 카피와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저 예술합니다”(풍식), “아무나 예술하나요~~?”(풍식)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지인인 모 와인수입사의 대표가 일산 장항동에서 운영했던 <와인의 전설>이라는 와인 바에서 와인을 마셨던 것이 기억난다. 얼마 전 우연히 온라인에서 같은 이름의 와인 바가 월미도에 있다는 정보를 읽은 적이 있어서 오랜만에 연락해보니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상표등록된 이 이름만 빌려주었다고 한다. 와인업계 종사자로서 2000년대 중반처럼 ‘전설적인’ 와인의 바람이 새로 불기를 기대해 본다. 저와 와인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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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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