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핑계가 필요해!

2021.05.1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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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핑계가 필요해!


연말이어서 저녁모임이 많고 이러한 모임마다 으레 술이 따릅니다.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해서든 여기저기서 건배사가 넘쳐나고,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반복될수록 목소리가 커져갑니다. 한 해를 회고하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 깊은 자리가 과음으로 인해 불미스럽게 끝날 때도 있지요.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도 사고를 치겠어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쓰고 최근 SNS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류 근 시인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 지성사, 2010)에 등장하는 ‘계급의 발견’이라는 시는 요즘과 같은 술자리가 많은 때에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네요.

“술이 있을 때 견디지 못하고
잽싸게 마시는 놈들은 평민이다
잽싸게 취해서
기어코 속내를 들켜버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술 한 잔을 다 비워내지 않는 놈들은
지극한 상전이거나 노예다
맘 놓고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놈들은 
권력자다

한 놈은 반드시 사회를 보고
한두 놈은 반드시 연설을 하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잡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잰다

한두 놈은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슬슬 곁눈질로 겉돌다가 마침내
하필이면 천민과 시비를 붙는 일로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비극을 초대한다
어디에나 부적응자는 있는 법이다
한두 놈은 군림하려 한다
술이 그에게 맹견 같은 용기를 부여했으니
말할 때마다 컹컹, 짖는 소리가 난다.

끝까지 앉아 있는 놈들은 평민이다
누워 있거나 멀찍이 서성거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먼저 사라진 놈들은 지극한 상전이거나 노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은 놈은
권력자다
그가 다 지켜보고 있다”

거침없는 표현으로 술자리에서의 행태를 사회적 신분과 매칭한 류 근 시인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시인 스스로가 많이 경험했을 술자리에서의 모습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이 암시되어 있지요. 여러분들이 발견하는 술자리에서의 스스로의 계급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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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뭉크의 그림 중에는 ‘그 다음날(Der Tag danach)’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술 많이 마시고 침대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한쪽 가슴이 거의 보일듯하게 단정치 못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1909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이 이 작품을 매입하자 난리가 났어요. 뭉크의 그림을 늘 못마땅하게 여긴 유럽의 한 일간지가 미술관 측의 처사를 비꼬았습니다. “취기에 젖은 이 못된 여자를 불쌍하게 볼 사람은 없다. 설혹 갈 곳이 없다 해도 국립미술관은 그녀가 쉴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러자 오슬로 국립박물관 관장이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멋지게 반박하며 비난을 잠재웠지요. “그녀가 깨어나면 물어보겠다. 이곳이 쉴 만한 곳이냐고? 그러나 지금은 자게 내버려둬야 한다. 그녀가 있는 것이 미술관의 영예가 될지 치욕이 될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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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연말의 잦은 술자리. 오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류 근 시인처럼 계급을 매겨보는 재미도 맛보고, 스스로가 지나쳤다면 다음 날 비아냥거릴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멋진 핑계 하나 준비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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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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