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실 핑계
와인 마실 핑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술을 마십니다. 핑계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니 이러한 표현을 애주가들은 싫어하겠지요. 술을 마시는 이유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또한 그냥 술이 좋아서 마시기도 하지 않나요? 아무런 핑계 없이. 핑계나 이유가 없더라도 지인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술이 동반되기도 하지요. 일종의 습관처럼. 꼭 술을 마시고 싶어서는 아니지만 성인들이 모일 마땅한 자리가 술집 이외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낮에 사람들이 커피숍에서 만나 거피 한 잔에 대한 특별한 욕구가 없어도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자리는 술이 주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음식이 주가 되면서 술이 반주의 역할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 핑계나 이유가 더 필요하겠죠.
많은 문학가가 술에 대한 시를 썼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술, 특히 와인 마시는 이유에 대한 명언을 남긴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와인 중에서도 특히 샴페인과 연관된 것이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독일의 작가인 프리드리히 폰 보덴슈테트(Friedrich von Bodenstedt, 1819~1892)가 다음과 같이 쓴 것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같은 봄에 술 마시는 핑계로 한 번 읊어볼 만합니다.
“겨울에는 봄을 기다리며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봄이 오면
봄이 왔음을 기뻐하며 다시 와인을 마신다.”
“Im Winter trink ich und singe Lieder
Aus Freude, dass der Frühling nah ist –
Und kommt der Frühling, trink ich wieder
Aus Freude, dass er endlich da ist.”
샴페인을 즐겨 마셨던 나폴레옹 1세와 윈스턴 처칠이 다음과 같이 간접적으로 샴페인에 대한 예찬을 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패했을 때는 위로 받기 위해 샴페인이 필요하다."
“I drink Champagne when I win, to celebrate… and I drink Champgane when I lose, to console myself.”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 ~ 1821)
“승자는 샴페인을 마실 자격이 있고, 패자는 샴페인으로 기분을 풀어야 한다."
“In victory we deserve it, in defeat we need it.”
“샴페인을 마시는 경우는 오직 두 가지이다. 저녁을 위한 게임이 있을 때와 게임이 없을 때이다.”
"There are only two occasions when I drink Champagne, and these are: when I have game for dinner and when I haven't."
-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769 ~ 1821)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샴페인을 마셔야 한다고 하니,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그들이, 우리가 유사한 핑계를 대고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저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핑계를 자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샴페인 생산자였던 마담 릴리 볼랭저(Lilly Bollinger, 1899~1977)가 남긴 명언은 어쩌면 생산자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폴레옹이나 처칠에 비해서 섬세하게 표현했지요.
“나는 행복할 때나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신다. 때로는 혼자 있을 때 마시기도 한다. 손님을 모실 때 샴페인을 서빙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한 모금 음미하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때는 마셔준다. 그밖에는 일체 손대지 않는다. 목이 마를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I drink my Champagne when I’m happy and when I’m sad. Sometimes I drink it when I'm alone. When I have company I consider it obligatory. I trifle with it if I'm not hungry and drink it when I am. Otherwise I never touch it - unless I'm thirsty.”
간결하면서도 멋진 것은 역시 코코 샤넬(Coco Chanel, 1883 ~ 1971)이 남긴 명언입니다.
“나는 오직 두 경우에만 샴페인을 마신다. 사랑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I only drink Champagne on two occasions. When I am in love and when I am not.”
코코 샤넬의 사생활, 특히 사랑 경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만약 사랑의 아픔이 있었다면 적어도 그 순간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사랑과 연관된 코코 샤넬의 명언을 여기에서 옮기며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시 <사모>가 생각나서 소개해 봅니다.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랑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와인을 주제로 혹은 소재로 언급한 시나 명언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찾아보면 술에 관한 멋진 글들이 많습니다. 동양적인 정서 때문인지 가슴에 더 와 닿습니다. 조지훈의 시에서 ‘여인’과 ‘여자’가 일제에 짓밟힌 조국인지 그냥 인간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멋지다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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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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