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그리움이다
와인은 그리움이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도시인 체르노비츠(Czernowitz)에서 출생한 유대계 여류시인 로제 아우슬렌더(Rose Ausländer, 1901~1988)는 같은 고향 출신의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과 달리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Einladung, 초대>라는 멋진 시를 남겼어요. 제가 직접 번역해 볼게요.
“탁자 위에는
사과와 포도주
연약한 색의 꽃들
당신을 초대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0번지
모네가 향을 그렸고
세잔에게서 사과가 익었고
유리병에 담긴 편지가 포도주를 가져왔습니다
반복하온데
진심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로제 아우슬렌더는 포도주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폴 세잔(Paul Cézanne)의 예술과 어우러져 있는 곳에서 낭만적이고 행복한 만남과 대화가 기다려지고 있음을 가장 함축된 언어인 시를 통해서 서정적,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네가 향을 그렸고 / 세잔에게서 사과가 익었고 / 유리병에 담긴 편지가 포도주를 가져왔습니다"라는 표현이 기가 막힙니다. 포도주는 그리워하던 소식과 함께 온겁니다. 물론 캘리포니아의 전설적인 와인메이커였던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1913~2008)가 말한 것처럼 포도주가 예술이라면(“Wine is art.”), 로제 아우슬렌더는 예술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헤르만 헤세는 <페터 카멘친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포도주는… 끝없는 몽상 속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러면 한때 내가 아름답게 생각했던 모든 풍경이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나를 둘러쌌다… 놓쳐버린 커다란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너무나 반가운 비애로 끝을 맺었다.”
헤세는 특정의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과거의 어떤 행복한 순간을 그리워했던 거죠.
여러분들도 이처럼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혹은 포도주를 마시며 누군가를 아니면 어떤 순간을 그리워해본 적이 있나요? 장 그르니에는 <일상적인 삶>이라는 책에서 “그것을(포도주를) 마시는 장소가 아무리 누추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상상력은 그곳을 동화 속의 나라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서라면 굳이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다.”라고 말합니다. 포도주가 있으면 다 행복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일종의 포도주 예찬인 셈이죠. 그런데 만약 포도주를 마시는 장소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면 혹은 포도주를 마시는 상황히 아주 특별했다면 어떨까요?
2011년 11월초에 독일의 와인산지 모젤에 있는 작은 마을 리저(Lieser)에 있는 독일인 누이네 집에서 며칠 묵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나 빈츠(Mana Binz)라는 이름을 가진 누이는 저와 피를 나눈 혈육은 아닙니다. 포도주가 소재 혹은 주제가 된 예술작품에 관심이 많았을 때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그녀와 교류하면서 언젠가 저를 동생이라고 불러 주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누이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나(Mana)가 남편과 살고 있는 주거공간과 5층짜리 건물인 갤러리 사이에는 3개의 공간이 있어요. 하나는 3층짜리 게스트 하우스, 다른 하나는 손님을 영접하거나 여유 있게 디너를 할 수 있는 공간, 또 따른 하나는 콘서트 홀입니다.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마나는 제가 이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매일 멋진 디너를 차려주었어요. 와인이라면 누구 못지 않은 내공이 있는 마나와 남편 안드레아스와 저녁 식사 때마다 얼큰하게 포도주를 마셨지요. 저는 취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콘서트 홀로 가서 혼자 음악을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일어나면 바로 콘서트 홀로 달려가서 같은 음악을 들었어요. 단 하나의 음악만을 반복해서. 그 음악은 영화 Out of Africa의 OST였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 아다지오였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음악을 들으며 아프리카가 아닌 우리나라의 산을 그리워했고 새로 탄생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어요. 옛날 왕 혹은 귀족들이나 잠을 잤던 것과 같은 근사한 침대에 누워 침대 반대편 벽에 걸려져 있는 마나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La naissance de Venus)’을 보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해석을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 제게 포도주는 음악과 협연하여 산에 대한 그리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치웠지만 게스트 하우스와 콘서트 홀 사이에 있는 공간의 벽에 당시에는 마나의 작품 ‘Liberté perdue?(잃어버린 자유?)’가 걸려 있었어요. 1998년 310x280cm의 크기로 천에 그린 이 작품에 대해서 마나는 2002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어린이 동화, 청춘의 꿈.
왕자는 올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높은 기마를 타고
태양에 저항하는 빛을 발하며.
그는 보물을 가져온다.
금과 은을.
그녀에게 장신구를 걸어주고
다이아몬드로 비위를 맞추고
그녀의 모든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새장에 그녀를 가둘 것이다.
그가 늘 가지고 다니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첫눈의 사랑? 잃어버린 청춘?
<마나 빈츠의 작품 Liberté perdue?>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왕자는 여성의 얼굴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녀’는 반대로 남성적인 얼굴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게 내게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녀’가 오른손에 새를 한 마리 들고 있어요. 어쩌면 마나는 ‘그녀’가 아닌 이 새를 왕자가 가지고 다니는 새장에 가두고 싶었나 봅니다. 물질이 아닌 진정한 마음으로 얻는 사랑을 이상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행이지요.
5년의 세월이 지난 2016년 5월의 어느 날 저는 다시 마나의 콘서트 홀에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5년 전에는 제가 음악을 직접 골랐는데 이번에는 마나의 남편이 선택한 음악을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포르투갈의 유명한 파두(Fado) 음악 가수인 안나 모우라(Ana Moura)의 앨범 Coliseu! 이 앨범의 세 번째에 수록되어 있는 곡 Ó meu amigo João가 울려 퍼지자 저는 마나의 정원에서 포도주를 마시다 콘서트 홀로 가서 이 음악을 다시 그리고 크게 들었습니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다가 그리워졌습니다. 음악 칼럼니스트인 황윤기가 말한 것처럼 파두는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운명론적인 인생관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들어보세요 포도주 한 잔 마시며 이 음악을. 얼마나 처절하게 당신의 심장을 두드리는지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포도주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그냥 주저앉게 됩니다. 이때 포도주로 인한 취기는 제게 음악과 함께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져다 주었지요.
누이네 집에 있는 콘서트 홀에는 2011년이나 지금이나 마나의 1998년 작품 ‘Love songs’가 걸려 있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이올린 연주가는 류시화의 시에서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피아노를 잘 친다면 이 공간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바이올린과 함께 연주할 수 있으련만…
2016년 5월에 앞서 3월 중순에 독일인 누이네 갔을 때 보졸레의 Saint-Amour 크뤼 와인을 마시며 좋아했었지요. 가메(Gamay)로도 훌륭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마나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대화를 나눴어요. ‘Liberté perdue?(잃어버린 자유?)’와 ‘Love songs”라는 작품이 걸려있는 누이네에서 마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와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함께 몇 차례나 마셨던 보르도의 그랑 크뤼나 독일 VDP 회원 와이너리가 생산한 리슬링보다 더 멋지게 어울렸어요.
티에리 타옹(Thierry Tahon)은 <와인의 철학, Petite Philosophie de L’Amateur de Vin>에서 와인을 욕망이라고 정의합니다. “욕망을 연기시키는 것, 욕망을 지연시키고 기다리게 하고, 욕망이 군침을 흘릴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쾌락주의적 전략이자,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금욕주의의 유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하며 다음에 와인을 마시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을 즐기라고 합니다.
무라카미 류는 <와인 한 잔의 진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와인을 마시면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일이 있다. 냄새를 맡고 시음한 순간, 어딘가 다른 장소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관능적인 착각이다… 진실은 순간적으로 보였다가 사라져서는, 반드시 감미롭고 위험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것도 그리움입니다. 의미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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