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희의 내추럴와인] 04. 내추럴 와인 탐구생활 4편 – 와인과 첨가물: 이산화황의 유익성과 위험성의 균형
내추럴 와인 탐구생활 4편 – 와인과 첨가물: 이산화황의 유익성과 위험성의 균형
그렇게 하라고 할 때는 싫던 공부에 대한 재미를 뒤늦게 알아갈 무렵 떠나게 된 유학생활은 그야말로 극한 체험이었다. 나이 먹고 집 떠나 이게 무슨 고생인지 투정할 새도 없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해야 할 때, 커다란 이민가방에 이것저것 꾸려온 짐에서 발견한 육포는 나에게 비상 식량이었으며, 잠시나마 유학생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hot item이었다.
나보다 하루라도 젊은(?) 한국유학생들은 학교생활 틈틈이 다국적의 친구들과 이것저것 영국의 식재료를 탐방한다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랬는데, 집밥이 그리웠던 나는 이것저것 한국산 식재료를 공수하기 바빴고, 귀하게 얻은(?) 무 말랭이, 호박고지, 고사리, 도라지 등등을 이용해서 나름 한국식 반찬으로 우리 음식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타향살이에 한꺼번에 식재료를 구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건조 저장된 식품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찾아보니 영국의 마트에도 내가 좋아할 만한 식품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말린 과일과 beef jerky(육포) 같은 것들이었다. 나름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던 터라 시간이 지나도 저장해 놓고 먹을 수 있는 식품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색깔도 고운 건조 크렌베리, 말린 살구, 다양한 맛만큼 먹음직한 육포는 나의 책가방 한 구석에 꼭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식품의 예쁜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유의 맛도 지키면서, 저장성이 탁월한 이유는 식품첨가물인 아황산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품 첨가물의 위해성에 대해 들어보았거나 막연히 알고 있을 것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곳에서 식품 첨가물이 사용되고 있다.
사실 이산화황은 산화를 방지해주는 항산화작용, 살균작용과 더불어 갈변 방지에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시대에서부터 널리 활용해온 다재 다능한 물질이다. 이산화황(二酸化黃. Sulfur dioxide)의 화학식은 SO2 무기화합물이다. 아황산가스, 무수 아황산이라고도 부르고, 산소 원자 2개와 황원자 1개가 결합되어 있다. 색깔이 없고,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무색의 기체로 화산 활동 등의 자연적인 발생도 있지만, 대부분 공업 과정에서의 부산물로 생성된다.
이산화황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사례로는 고대 로마에서 와인을 만들 때 황을 연소시킨 연기를 살균제로서 활용한 것인데, 지금도 와인산업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산화황의 적절한 사용은 와인 양조와 저장에 가장 기본적인 사항으로 알려져 있다. 오크통을 이산화황으로 훈증하여 살균 처리하고, 머스트와 와인에 이산화황을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타입의 와인을 구현해내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오크통을 장기간 보관하고 와인의 병 숙성이나 과일향과 색상 보존, 신선도 유지 등이 가능한 것이 바로 이 이산화황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황은 항산화작용 이외에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즙에 곰팡이나 세균, 효모의 생장을 저해하기 위해 항 박테리아제로서 작용하고, 아세트알데히드나 이와 유사한 물질과 결합하여 와인의 아로마를 보호하는데, 와인의 관능적인 품질과 수명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이산화황은 저장 중에도 첨가하는데 그 목적은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장기간 저장 중에 아황산의 농도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앞선 두 번째 칼럼에서 내추럴 와인은 이산화황을 첨가하지 않고, 생산과정 중 천연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황의 존재로서 각와인 스타일별 SO2허용량이 정해져 있다고 언급하였다. 내추럴 와인은 포도재배와 와인의 양조에서 화학적, 기술적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이기 때문이다. 일부 생산자들은 주병을 할 때 와인이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이산화황을 더하기도 하는데, 추가로 첨가하지 않은 와인은 “SAINS” 또는 “Sans sulfites ajoutes(추가로 넣은 무수아황산 없음)”라고 라벨에 명시되어 있다. 실제 컨벤셔널 와인의 back label에 보면 무수아황산(산화방지제)이 첨가되어 있다고 적혀 있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협회(AVN)에서 기준으로 하는 내추럴와인의 이산화황 함유량과 EU에서 규정하는 컨벤셔널 와인의 총 이산화황 함량 규정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다.
이산화황은 인체 내에서 빠르게 불활성화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과다 섭취하게 되면 복통, 두통이나 메스꺼움, 기관지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이산화황의 1일 허용치는 0.7mg/kg이다. 일부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들은 이산화황을 과다 섭취하지 않아도 두드러기, 재채기, 호흡곤란 등의 불편이 유발되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색깔도, 맛도, 와인의 아로마도 모두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르다. 물론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의 차이를 이산화황의 첨가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이산화황이 컨벤셔널 와인의 양조 매 단계마다 개입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매번 달라질 수 있는 와인의 품질을 이산화황의 첨가로 인해 조정하고, 획일화시키지 않았다는 것, 온전히 자연이 행하는 대로 그대로 존중했다는 것이 바로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주스처럼 온갖 과일의 향기가 풍부하고, 감칠맛이 있으면서도, 뭔가 투박한 이 와인은 이제껏 마셔본 와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최근 웰빙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고, 유기농 식품의 구입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현대인들의 삶의 질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건강을 위해서 와인을 마시는 인구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면서 숙취의 범인으로 와인의 첨가물인 아황산을 지목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숙취의 주범은 따로 있다. 우리 몸에 들어온 알코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라는 성분으로 변화하는데, 분해되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이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 속도에 따라 숙취증상의 경중이 가려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와인에 함유되어 있는 이산화황 성분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술을 선택할 것인가? 독한 술보다 의미 있는 한 잔이라면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변화보다는 항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와인을 선호한다면 기존의 컨벤셔널 와인을 고를 것이며, 다양한 개성과 모험적인 스타일의 와인을 찾으면서, 나아가 자연을 존중하며 환경을 걱정한다면 내추럴 와인의 세계로 입문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본다.
WRITTEN BY 안신희 박사 (Dr. Shin Hee An)
Food Stylist, University Lecturer, Wine Writer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