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예술 – 우리가 함께할 시간

2021.05.1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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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예술>
 우리가 함께할 시간

 

멀리 물과 산으로 만들어진 와인 잔이 보이고, 앞에는 발가벗은 남녀가 각기 다른 와인 잔 속에서 레드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핏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Dieu n'avait fait que l'eau, mais l'Homme a fait le vin).”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명언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가인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와인을 통해 하늘과 땅이 융합한다(Die Hochzeit von Himmel und Erde weilt im Wein).”고 말한 적이 있다. 땅의 영양분과 하늘의 태양이 서로 의지하는 포도나무의 과실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와인 잔 속에 서있는 남녀는 건배를 하고 있다. 건배는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기원하는 관습이다. 이러한 건배를 통해 그들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준, 또한 영원하게 해줄 힘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진 자연에게, 나아가 신에게. 남녀가 발가벗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작년 12월 23일에 시작되어 4월 5일에 막을 내린 러시아의 화가 블라디미르 쿠쉬(Vladimir Kush) 한국특별전에서 와인이 소재가 된 작품 <우리가 함께할 시간(To Our Time Together)>을 만나서 반가웠다. 두 와인 잔은 로맨틱한 열망을 상징한다. 여자를 담고 있는 잔의 모습은 여체를 연상시킨다. 197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칠레 태생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쓴 <포도주에 바치는 송시(Ode to Wine)>에서 “My darling, suddenly the line of your hip becomes the brimming curve of the wine goblet”라고 하지 않았는가. 좁아진 잔의 윗부분 모습 때문에 여자는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잔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남자를 담고 있는 잔은 그 잔으로부터의 ‘탈출’이 용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남녀의 다른 본능적 특성을 와인 잔 모습으로 은유하고 있다. 여자에게로 향하여 누워 있는 한 송이 꽃은 남자를 담고 있는 잔의 모습처럼 역동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블라디미르 쿠쉬의 이 작품은 와인으로 변신하여 사랑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헤르만 헤세의 시 <사랑의 노래, Liebeslied>(1922)의 둘째 연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내가 만일 적포도주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대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
그대의 몸 속을 한 바퀴 휘돌며
그대와 나를 건강하게 만들 텐데.”

‘바람’이라는 배경은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헤세의 시가 서정적인 반면 쿠쉬의 작품은 공상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발가벗은 남녀가 각기 다른 모양의 와인 잔 속에서 레드 와인이 담긴 잔을 들고 건배를 하는 모습은 블라디미르 쿠쉬의 작품 <사랑의 행렬(Matrix of Love)>에서도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대하여 다양하게 표현한 이 작품에서도 와인이 소재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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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쿠쉬를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흔히 말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화풍을 기존의 초현실주의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를 바라면서 “은유적 사실주의(metaphorical realism)”라는 말을 사용한다. 초기에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초현실주의 작품과 19세기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풍경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한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에서 활동한 화가 히어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는 미술 역사상 가장 신비에 싸인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데,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기괴하고 충격적인 이미지와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결부된 환상의 세계는 살바도르 달리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초기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일반적으로 간주된다. 블라디미르 쿠쉬도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종종 생소한 배경에 친숙한 물건들을 기괴하게 배치한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살바도르 달리는 “즐길 줄 아는 자는 더 이상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비밀을 맛보는 것이다(Quien sabe degustar no bebe jamás el vino, sino que degusta secretos.).”라는 명언을 남기고, 그가 양을 데생 한 것은 1958년 빈티지의 샤토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와인과 관련된 그림은 그의 책 <갈라의 와인(Les Vins de Gala)>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와인 병 표면에 누드의 여체, 하늘과 구름 등을 담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쿠쉬의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던 다른 와인 관련 작품 <최후의 만찬(Last supper)>과 <축하(Celebration)>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그가 앞으로 만들 와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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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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