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예술로 풀어보는 말벡 스토리
유머와 예술로 풀어보는 말벡 스토리
서울의 강남에 있는 비스트로 봉(Bistro Bon)에서 4월 29일 말벡 정상회담이 열렸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말벡(Malbec) 와인들이 이 정상회담에 참가했다.
말벡 와인의 공동 마케팅을 위해 마련된 이 행사는 시작하자마자 언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샤토 유진이(Eugénie, 정확한 불어식 발음은 으제니)가 언성을 높인다.
“트라디씨옹(Tradition)은 아주 중요한 겁니다. 와인에서도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 트라디씨옹!”
그러자 아르헨티나 대표들이 동시에 이의를 제기한다.
“전통이라고요? 와인 이름이 ‘트라디씨옹’이면 다 전통이 있는 건가요?”
“물론 그렇지는 않지요. 우리는 15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해 왔다고요. 대단한 ‘트라디씨옹’이지요.”
아르헨티나에서 참가한 조잘(Zorzal) 와이너리가 고개를 흔들며 조잘거린다.
“전통이 있다고 반드시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요. 말벡 와인 하면 역시 아르헨티나가 최고입니다. 우리는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 와인생산을 시작했지만
와인메이커인 미쉘리니(Michelini) 형제의 실력 때문에 2010년에 열린 Argentina Wines Awards에서 “Best Malbec over USD 50” 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의 정상회담의 개최가 ‘안될레나’ 걱정을 많이 했던 또 다른 아르헨티나의 대표인 안델루나(Andeluna) 셀러(Cellars)가 맞장구를 친다.
“맞소. 우리는 비록 2003년에 시작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 컨설턴트인 미쉘 롤랑(Mechel Rolland)의 기술적인 협력을 통해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주 2대 1로 나를 공격하는군요.”
유진이(Eugénie)는 세계의 말벡 재배량의 약 70%를 아르헨티나가 차지하고 있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20% 정도에 불과한 프랑스에 비해서
아르헨티나가 정상회담에 더 많은 숫자의 대표를 참석시킨 것을 수긍하면서도 포위된 느낌을 받아 억울함을 느꼈다. 그래서 또 다시 ‘트라디씨옹’, 즉 전통을 강조하게 된다.
“원래 말벡은 프랑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포도밭이 있는 카오르(Cahors)에서 유래합니다. 아주 중요한 ‘트라디씨옹’이지요.”
여기에서 잠시 말벡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포도품종으로 원래 코(Côt)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말벡으로 유명한 카오르(Cahors)에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고, 오세루와(Auxerrois)라는 동의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에 비추어 프랑스의 북쪽 부르고뉴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자가 압도적으로 다수설이다. 또한 카오르에서 오세루와가 코와 함께 말벡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말벡은 16세기 프랑스의 카오르에서 샴페인 지방으로 전파되었으며, 18세기에 말벡(Malbeck)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르도 지방에 많이 전파하여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벡(Malbec)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프레삭(Pressac)이라는 사람이 보르도 지방 중에서도 생테밀리옹(Saint-Émilion)에 많이 전파하여 이곳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아직도 프레삭(Pressac)을 말벡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1956년 추위 때문에 보르도에서 말벡의 수확량이 75% 정도 줄어든 이후 말벡은 점점 보르도에서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대신 메를로(Merlot)에 의해서 대체되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말벡이 거의 사라졌던 카오르에서는 반대로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약 3,500 헥타르 면적의 포도밭에서 말벡을 생산한다. 프랑스 대표적인 말벡의 산지가 바로 카오르다. 카오르 와인은 말벡을 최소 70% 이상 포함하여야 한다. 1853년 프랑스의 농학자인 미셸 푸제(Michel Puoget, 1821-1875)가 말벡을 아르헨티나에 전파하였다. 말벡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멘도사(Mendoza)를 중심으로 하여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말벡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1853년 당시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Domingo Faustino Sarmiento)는 프랑스의 농학자인 미셸 애메 푸제에게 ‘Quinta Agronómica de Mendoza’라는 와이너리를 운영하게 한다. 1853년 4월 17일 멘도사의 주지사의 도움으로 포도품종을 연구하는 ‘Quinta Normal’이라는 연구소와 농업학교의 설립을 위한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다. 프랑스와 칠레의 모델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업 발전을 위해서 만든 이 법안은 같은 해 9월 6일에 의회를 통과하여 입법화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 미셸 애메 푸제는 같은 년도에 말벡을 아르헨티나에 들여오게 된다. 이와 같이 1853년 4월 17일은 아르헨티나 와인산업의 변화에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날을 기리고 말벡 와인을 국제적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마케팅 하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와인협회는 2011년에 처음으로 4월 17일을 ‘말벡 월드 데이(Malbec World Day)’로 선포하게 되었다. 금년의 지난 4월 17일에 제 5회째를 맞이하였다.
‘말벡 월드 데이’ 행사를 마치고 비스트로 봉에서 열리는 말벡 정상회담에 온 아르헨티나의 대표들은 프랑스에서 온 강적 유진이(Eugénie)를 만나 ‘트라디씨옹’에 대항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먼저 조잘(Zorzal)이 조잘거린다. “아르헨티나 중에서도 멘도사(Mendoza)는 좋은 말벡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요. 특히 우리 조잘(Zorzal)은 멘도사의 우코 밸리(Uco Valley)에 있는 구알타라리(Gualtallary)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구알타라리는 맨도사 지역에서 가장 높은 와인 생산지로 해발 1,350미터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곳은 안데스 산맥의 가장 좋은 산인 투풍카토(Tupungato) 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때문에 우리 조잘(Zorzal)의 와인이름은 ‘Terroir único(떼루아 우니코)’ 혹은 ‘Gran Terroir(그랑 떼루아)’입니다.” 본인도 발언권을 가지면 ‘안될레나’라고 묻고는 이에 질세라 안델루나(Andeluna)가 말한다. “우리도 비슷한 곳에 포도밭이 있어요. 안델루나(Andeluna)라는 이름은 아르헨티나의 달이 광대한 안데스 산맥을 비추는 곳인 멘도사 투풍가토 화산 계곡의 아름다움과 문화유산을 상징하는 의미로 만든 것이지요. 포도밭의 해발을 강조하기 위해서 와인이름을 ‘1300’으로 정했지요. 이곳에서 와인이 하늘을 만난답니다. 1,300m, wines touching the sky!”
/아르헨티나의 와인산지 지도/
예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안될레나’ 걱정을 하고 있던 안델루나(Andeluna)가 마침내 주제를 살짝 바꾸어 말을 꺼낸다. “아르헨티나의 말벡 와인으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좋지요.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여류화가 낸시 그라쏘(Nancy Grasso), 페루 태생의 화가 소롤라(Sorolla)가 말벡 와인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지요. 우리의 한국 파트너가 매년 6월 첫째 주에 와인과 예술을 접목 시키는 행사 ‘Art in the Glass’를 개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유진이(Eugénie)가 질세라 이에 반격을 가한다. “소롤라가 말벡 와인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안델루나(Andeluna)의 와인이 아니고 다른 와인인 것을 알면서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나요? 그리고 미국 태생의 여류화가 어밀리아 페이스 하나스(Amelia Fais Harnas)는 와인으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처음에 카오르의 말벡 와인을 사용한 것은 모르시나 봐요. 그라쏘의 작품 <Malbec – Merlot>은 바로 ‘트라디씨옹’과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와인은 말벡 80%와 메를로 20%로 만들어 졌거든요.”
/소롤라(Sorolla)의 작품 <Alamos Malbec 2007/
/하나스(Harnas)의 작품 <The Winemaker Nr. 3> 하나스(Harnas)의 작품 <The Three Graces>/
말벡 정상회담을 개최한 <더 센트>가 보다못해 중재에 나선다. “자 이제 다툼은 그만합시다. 말벡 와인의 공동 마케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이 자리에서 다투기만 하면 어떡하나요.” 유진이(Eugénie)의 한국 파트너인 아베크와인(Avecwine)이 먼저 이에 동의한다. “불어로 아베크(Avec)는 ‘함께’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면 모두 좋은 와인인 것 같은데 ‘함께’ 갑시다! 이것도 우리의 ‘트라디씨옹’입니다.” 안델루나(Andeluna)의 한국 파트너인 와이넬(Winell)도 공동 보조가 ‘안될레나’ 걱정을 한 끝에 맞장구를 친다. “그럽시다. 와이넬은 ‘Wine + Well’을 합성하여 만든 이름입니다. 와인이 있는 곳에서 서로 잘 지내야지요.” 끝으로 조잘(Zorzal)의 한국 파트너인 WS 통상이 조잘거리며 만족해 한다. “Why Strike each other? Let’s hug each other!” 마침내 유진이(Eugénie)의 ‘Tradition(트라디씨옹)’, 조잘(Zorzal)의 ‘Terroir único(떼루아 우니코)’와 ‘Gran Terroir(그랑 떼루아), 안델루나(Andeluna)의 ‘1300’은 건배를 하고 웃음으로 정상회담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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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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