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환의 와인경제] 01. 와인과 경제학적 효용에 대하여
와인과 경제학적 효용에 대하여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나는 나의 와인 소비생활이 경제학적으로 얼마나 효용이 큰지에 관해 고민해보곤 했으며 와인의 경제학적 효용에 대해 따져보고 싶었다. 이에 관해 내 동기들은 전혀 다르게 풀어 낼 수도 있겠지만 공부를 책이 아니라 가슴으로 배운 나의 경우에는 단순히 한계효용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 하나로 풀어 보고자 한다(사실 다른 이론들이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물론 나의 모든 와인 소비생활 자체는 경제학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기준을 언제나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소비를 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며 따라서 와인의 구매 및 소비는 개인의 구매력에 맞춰서 이성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옳은 기준이 된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선 인정한다. 감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비이성적 기준이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인간이며, 내 맘에 드는 와인을 취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소비를 적극 줄여 나가는 합리적 인간이라 스스로 자부한다. 따라서, 나의 비합리적 양면성을 아는 여러분께서는 이런 편향을 쉬이 지나쳐 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에서 효용이라 함은 내가 소비를 함에 있어서 개인의 만족도의 크기를 나타낸다. 따라서 효용이 크다는 말은 개인의 만족도가 크다는 말과 같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개인이 물건을 구매했을 때의 만족도는 구매량이 높을수록 그 만족도가 체감(diminishing), 즉 감소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여름날, 일이 너무 바빠 물도 한잔 못 마시고 있다가 지친 몸으로 퇴근해 차가운 한 잔의 스파클링 와인을 마셨을 때의 만족도를 200으로 생각했을 때, 둘째 잔의 만족도는 200에 미치지 못함을 이야기하며 이때 이 만족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켜 한계효용이 체감한다고 표현한다. 만약 둘째 잔의 효용이 190이라면 그 편차가 크지 않은 것이고 100이라면 반으로 떨어져서 체감의 폭이 큰 것이다. 여기서 만족도는 일반적인(Acceptable or Good) 예의 와인의 만족도를 말하며 효용과 체감은 마시는 와인의 종류와, 스타일, 빈티지 등등에 따라 매우 편차가 크다. 여기서 첫 잔의 만족도를 200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차가운 맥주를 마셨을 때의 만족도를 100으로 보았을 때 나의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크기에 200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둘째 잔의 효용 편차도 190에서 100으로 산정한 것은 아무리 둘째 잔이라 할지라도 내 효용은 맥주보다 높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효용은 개인의 만족도를 나타낸다.
반대로 둘째 잔의 효용이 250이나 300 또는 그 이상으로 더욱 커지기도 한다. 이는 일반적인 와인이 아닌 매우 좋은(Very good) 또는 훌륭한(Outstanding) 와인으로 평가되는 와인에 해당한다. 오랜 기간 동안 잘 보관되어 왔거나 탄닌(tannin)이나 산도(acidity)의 영향, 온도, 또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일부 환원(reduction) 또는 산화(oxidation)의 캐릭터로 인해 그 와인의 진정한 캐릭터가 가려져서 첫째 잔에서는 오히려 잘 느끼지 못했던 와인이 우수한 소믈리에의 손끝에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놀라운 감동을 발견하곤 한다. 나의 경우엔 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이와 같은 와인과 함께하고픈 마음이다. 왜냐하면 나의 한계효용이 체감하지 않고 체증하는 유일한 음료가 와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음식과의 적절한 마리아주(wine and food paring)를 거치게 되면 그 효용은 400에서 500 또는 그 이상으로 폭발하며 나도 모르게 신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 순간에는 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고, 내 앞의 이성이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며, 지금 이 순간을 같이 즐기고 있는 상대에 대해 고마움과 존경심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와인을 좋은 친구, 좋은 연인과 함께 한다는 것은 최고의 순간을 최고의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한 여행이다. 여기에 와인 잔을 맞부딪힐 때 나는 경쾌한 소리와 와인의 맛과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와인글라스의 아름다움. 그리고 레드 와인의 붉고 매력적인 느낌과 발포성 액체인 샴페인의 고혹스런 버블은 사람의 가슴을 더욱 강하게 뛰게 만든다.
하지만 모든 와인을 이렇듯 완벽히 즐기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경쟁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테이스팅을 해야 할 경우 와인의 일차적 캐릭터만 단순 비교하거나 와인이 결함이 있다고 여겨 와인을 빨리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작년 아시아와인트로피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여 하루 약 50 종류의 와인을 전문인들과 함께 4일간 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때 모두가 같이 시음하는 와인에 대해 와인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새 와인으로 다시 바꿔서 테이스팅을 요청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그런 와인의 경우 옆에 따로 놔두었다가 시간이 일정 기간 지난 뒤에 다시 재테이스팅을 해보았는데 일부의 와인에서 현격히 그 와인의 퀄리티가 높아지고 동시에 흠결은 사라져 오히려 그 약간의 흠결이 와인의 개성을 높여 더 높은 평가로 바뀌는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의 결론으로 볼 때 와인은 일반적인 와인의 경우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해당하지만 좋은 와인 또는 훌륭한 와인이 완벽한 환경에서 시음될 경우 반대로 한계효용이 체증하는 놀라운 마법의 음료이다.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계속 와인을 공부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껏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 놀라운 묘약은 나를 계속 궁금하게 만들고 애닲게 만드는 애인과 같아서 더욱더 알고 싶게 만드는 유일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공부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WRITTEN BY 변정환 (Junghwan Byun)
Wine Writer (WSET 레벨 3, 현재 레벨 4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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