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환의 와인경제] 02. 와인의 한계효용을 늘리는 법
와인의 한계효용을 늘리는 법
지난 칼럼에서 와인이 경제학적 효용을 체증시키는 놀라운 마법의 음료라는 설명을 한 바 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에서 와인의 한계효용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가 가진 한계성은 다음과 같다.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그리고 정보의 제약.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아래에 기술해 본다.
첫째, 가치 공유를 통한 효용의 증대
와인병은 750ml로 소주병(360ml)의 2배가 넘는 분량에 알코올 수치는 대략 12%에서 15%로 최근의 저도 소주의 도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소주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단 오픈하게 되면 산화가 곧바로 시작되어 보관기간이 급속도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 와인을 개봉하게 되면 바로 다 마시는 것이 정석이다. 물론 좋은 동반자가 있다면 한 병을 오픈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유 있게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서 시음한다면 한 병을 다 마시는 것은 무리가 따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피어나는 와인의 향과 즐거움을 혼자서만 즐긴다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와인을 마신다는 행위가 단순한 시음을 넘어 가치의 공유에 더욱 큰 의미를 둘 수 있기에 와인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곁에 있다면 그 효용은 배가된다.
주변의 지인들과 자신이 아끼는 보틀을 오픈하여 그 감동을 나누자. 연인이라면 더욱 좋다. 만약 주변에 와인을 좋아하는 이가 없다면 그럴 기회를 적극 찾을 것을 추천한다. 와인을 공동구매하여 시음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오프라인 동호회에 가입하여 선호도가 비슷한 모임에 참가하거나 또는 스스로 모집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예산의 절감과 타 동호인과 함께 지식 및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에 추천한다. 하지만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동호인을 찾는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동시에, 다른 동호인들과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언제나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진행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 만약 혼자만의 시음을 선호한다면, 와인 블로그를 쓰거나 자기가 느낀 감정을 동호회 등에 올려 적극 공유하는 방법도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코르크를 빼지 않고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코라뱅 같은 제품을 해외에서 구매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는 저렴하면서도 장기보관이 가능한 리푸어(repour)라는 제품을 추천한다. 가성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둘째, 와인에 의미를 부여하기
선호하는 와인에 대해 내게 물어 올 때마다 난 대답에 앞서 약간의 머뭇거림을 가지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떨지…. 그 이유는 한 와인을 생각하게 되면 그 와인을 함께 했던 이들과의 즐거운 기억과 동시에 그 분 한 분 한 분과의 추억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100병의 와인을 시음했다고 했을 때 100병의 추억이 또한 함께 했다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한때, 와인 코르크를 모은 적이 있었다. 숫자가 많아져 보관이 힘들어지다 보니 이제는 모으는 행위보다는 그날의 추억을 하나의 코르크로 대신하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여러 많은 종류의 주류와 증류주가 존재한다. 하지만 왜 유독 와인만큼은 이리도 큰 의미 부여가 가능할까?
와인은 개봉과 함께 맛과 향에 변화가 생긴다. 어떤 와인은 풍부한 과실 향과 함께 포도밭의 신선함과 풍성함으로 반겨주고 어떤 와인은 숲속 깊은 곳의 정령을 마주하는 듯한 고독과 심오한 추억과의 대화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론 빠르게, 때론 한없이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시음자에게 보여주면서 많은 질문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때론 날 느껴봐 하며 채근거리는 모습에서 피죽거리며 웃다가 살포시 놓아주기도 한다. 물론 이를 산화와 환원 그리고 산도, 알코올, 밸런스, 집중도 그리고 복합미로도 풀어낼 수 있다. 이렇듯 와인 시음에서 여러분은 그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고, 와인 한 병 한 병의 캐릭터에 몰두하여 그 와인의 심미안에 빠질 수도 있다. 결론은 여러분의 선택이다. 물론 좋은 사람과 함께 최고의 와인을 즐긴다면 그보다 더 큰 효용의 극대화는 없으리라고 단언한다.
셋째,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님이 말씀하신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와인공부를 한다는 것은 와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말로써 나는 해석한다. 난 정말 와인 공부가 좋다. 진지하게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해 볼 기회를 가진 이후로 와인 공부는 내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여러분이 와인을 공부하게 되면 여러분은 그 와인 한 병의 가치가 아닌 그 와인이 태어난 토양과 미세기후, 그리고 와인메이커의 한땀 한땀 어린 정성과 고민,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을 함께 하는 것이다. 또한 와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동호인 및 사랑하는 이와 더욱 풍성한 대화를 가지게 될 것이고 여러분의 삶 또한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학원을 다니고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작을 할 필요는 없다. 우선 관심 있는 와인 산지에 대한 기사를 보고 와인저널을 구독하며 때로는 외국에서 나오는 와인 관련 기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된다. 캘리포니아의 산불에 관심을 가지고 그로 인한 와인 시장의 변화와 품종 별 가격변동까지 생각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이미 그 정점에 있는 것이리라. 물론 강의를 듣고 와인산지에 직접 가서 그곳의 경사면과 골바람 토양의 점토질을 따져보고 와인메이커를 만나 그들의 철학을 듣는다면 그러한 행위는 여러분의 와인 삶에 있어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넷째, 나의 선호를 이해하고 타인의 선호를 존중하기
때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혜안이 우리에게 독으로 다가설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에게 아름다운 시 한편이 다른 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끼적거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경험과 감각이 다르다는 것. 따라서 나의 좋음은 다른 이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들의 말과 표현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부분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지 또한 그런 다름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당신이 같이하는 이에게서 다름을 발견했다면 이는 당신의 와인 인생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만약 상대방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면, 당신은 상대에게 평생의 은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족이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산화된 캐릭터는 다 상한 와인이라고 믿는 이에게 헤레즈 셰리의 다양성과 오렌지 와인의 세계를 맛보게 하고 또 제대로 숙성된 올빈 와인을 오픈하여 진정한 의미의 복합미를 깨닫게 해주는 경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섯째, 순간을 찾아라
물론 가격은 충분히 퀄리티를 보증하는 부분이 있다. 가격의 형성에는 매우 많은 요인이 있으며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또는 양조의 디테일을 알지 못하는 경우 고가 와인의 소지가 단순히 명품을 지니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초심자의 경우에는 높은 가격대의 와인이 쉽게 접하기 힘들기에 접한다는 행위 자체에 만족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가격대의 와인일지라도 최적의 시음순간이 있으며 누가 핸들링하냐에 따라 그 순간이 매우 지속적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순간의 찰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고가의 와인일수록 장기보존력이 높고 최근 빈티지의 경우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커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각 빈티지의 특성을 아는 소믈리에가 시음을 이끈다면 효용을 높이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와인 동호회에서 고가의 와인을 많은 수의 인원이 동시에 테이스팅 하는 경우 많은 지도와 관심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서 많은 인원이 동시에 테이스팅 할 경우 제대로 그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프랑스 북부 론의 라라라 와인을 동시에 테이스팅 할 때였는데 삼십 분 만에 준비한 와인을 다 소진한 경우도 있었다. 정말 좋은 와인이었고 참으로 좋은 분들과의 행복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와인 시음에 있어서 만큼은 마시기 대회로만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위에 제시한 여러 방법들을 통해 여러분이 가진 와인과 혜안을 적극 나누셨으면 한다. 여러분의 효용은 극대화 될 것이고 또 다른 삶의 자극으로 여러분을 젊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와인을 접해보시기를 적극 권한다. 세계는 넓고 당신을 감동시킬 와인은 무궁무진하다.
WRITTEN BY 변정환 (Junghwan Byun)
Wine Writer (WSET 레벨 3, 현재 레벨 4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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