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13. 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리는 이탈리안 치즈를 찾아라(제4회)
이탈리아 와인과 어울리는 이탈리안 치즈를 찾아라(제4회) – 치즈의 왕 카스텔마뇨(1)
세상은 기름과 물처럼 겉도는 두 세계가 어우러져 돌아간다. 하늘과 땅, 여자와 남자, 개와 고양이가 있고 식탁에는 치즈의 왕과 와인의 왕이 있다. 옛날부터 단일 왕이 다국 왕을 겸한 경우는 많지만 두 왕이 한 나라를 지배한 적은 드물다.
그건 인간 세계나 그렇지 음식 세계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에 속한 쿠네오(Cuneo) 지방은 두 왕이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다. 동편 랑게 언덕은 와인의 왕인 바롤로가, 서쪽에서 시작되는 발그라나(Valgrana) 알프스는 치즈의 왕으로 알려진 카스텔마뇨가 지배한다.
바롤로 수식어인 ‘와인의 왕’은 와인 탄생 초창기와 관련이 깊다. 사보이 왕실 후원을 받은 귀족들의 네비올로 품질 개선 의지, 19세기 초 선진 와인 모델인 보르도 양조 기술을 네비올로에 접목한 귀족 출신 양조가들과 왕실 홍보 외교가 결합한 시너지 효과다.
카스텔마뇨가 왕관을 쓰게 된 경위도 바롤로 와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카스텔마뇨(Castelmagno) 끝 단어, 마뇨는 샤를마뉴 대제 호칭인 마뉴(대제)를 이탈리아식 발음으로 옮긴 거다. 카스텔마뇨가 샤를 대제와 인연을 맺은 때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교통의 요지였던 발그라나 계곡이 대제 수중에 넘어가면서부터다. 이곳 농부들은 토착 치즈를 공물로 바쳤으며 대제는 매우 흡족해했다. 처음에는 치즈에 핀 곰팡이가 꺼림칙해 털어내고 먹다가 나중에는 아예 곰팡이까지 먹을 정도였다.
12세기 문헌에는 아비뇽 교황청 시절, 교황 식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왔다고 전한다. 카스텔마뇨 생산지 일대가 살루조 후작가문 영지였을 때는 소작료를 카스텔마뇨 치즈 덩어리로 대신했다고 하니 카스텔마뇨가 곧 화폐였다.
<1760미터에 솟아 있는 산 마뇨성당(Santuario di San Magno, 15C건립). 해발 7백 미터에서 시작된 카스텔마뇨 치즈마을의 종점이다>
왕을 비롯한 귀족의 흔적은 기록으로 남았지만 이들이 왕좌를 지키는 장수 비결은 희귀성이지 아닐까 싶다. 카스텔마뇨는 해발 700~1600m 고지대가 주생산지다. 수직 길이가 1천여 미터에 달하지만 카스텔마뇨를 꾸준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곳은 13군데 마을로 좁혀진다. 한 마을에서 이웃 마을을 가는데도 비좁은 산 길을 한참 가야 할 정도로 적막한 산촌들이다.
숙성을 마친 무게 범위가 최소 2kg, 최대 7kg임에서도 희소성은 드러난다. 무게 제한에서 자유롭다는 뜻이지만 붕어빵 철 판에 찍어낸 듯 무게와 모양이 일정한 일반 치즈와는 차별된다. 헐렁한 기준은 농가별로 주어진 환경을 맛으로 승화시킨 지혜의 무게도 포함된다.
카스텔마뇨가 미식가의 주목을 받기 전, 발그라나 농가 당 사육 젖소는 두세 마리 정도였다. 당일 착유한 원유는 몇 리터 내였고 한 덩어리를 만들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짠 원유는 일단 굳혀서 커드를 만들었고 면 포에 싸서 서늘하고 통기가 잘되는 곳에 걸어 두었다. 이런 식으로 만든 커드가 충분해지면 이를 모아 잘게 썬 후 소금 간을 해서 한 덩어리를 완성했다.
참고로 원통 모양 카스텔마뇨(직경 20x높이 25cm) 한 개를 완성하는데 평균80리터 원유가 든다고 한다. 젖소가 하루에 분비하는 우유 양이 20~25리터(자료출처 https://www.zooassets.it/)일 때 전통 치즈 생산방식 리듬 대로 따라한다면 카스텔마뇨 하나 만드는데 걸리는 기간은 3~4일이다.
요즘은 형편이 나아져 극소 규모 낙농가도 매일 3~4개를 만들어 낼 정도로 원유 확보가 가능하다. 치즈 만드는 방식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다. 커드가 완성되면 면 포에 담아 서늘한 곳에 놔두는 과정까지 똑같고 다만 새 커드와 섞지 않고 곧장 유장(whey) 숙성으로 넘어간다. 유장은 전날 커드를 건저내고 남은 액체로 미생물과 효소 덩어리다. 이 과정을 시에로 담그기(sosta sotto siero)라 하는데 유장액에 잠시 놔두면 어떤 치즈도 흉내 불가능한 풍미를 얻는다.
<발그라나 알프스 해발 1천 미터 이상에 위치한 여름 목장에서 착유한 우유로 만든 치즈는 그린 라벨이 부착돼있다. 알페조 카스텔마뇨라 불리기도 한다>
60일이면 숙성을 막 끝낸 햇 카스텔마뇨 판매철이 시작된다. 햇 치즈 표피는 주홍빛이 나며 상아색 속살을 감싸고 있다. 치즈 커팅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속살이 잘게 쪼개진다. 두 달 전에 뭉쳐진 커드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데서 오는 부서짐으로 사그락 대는 식감을 준다. 더 묵혀두면 수분은 증발되고 여러 성분의 고리가 얽히면서 조직내 응집력이 견고해지고 단단해진다. 주홍빛 피부는 고동색 계열로 바뀌고 매끈했던 표면은 울퉁불퉁 해진다.
WRITTEN BY Nanyoung Baek
Sommelier of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Wine Writer, Blogger, Judging Panel at Wine Competitions
President of BARBAROLSCUOLA(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Member of Cheese Tasters Panel for EUROFINS Cheese Laboratory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Italiana Sommelier) 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SCUOLA)운영
각종 온라인 매체 와인칼럼니스트,
ONAF(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o)가 주관하는 치즈 테이스터 과정 1레벨 이수 후 EUFOFINS 치즈 평가기관 치즈 평가원 멤버
블로거 (주소: http://blog.daum.net/baeknanyoung/?t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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