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명품와인

 

백을 사러 갔다. 디자인이나 색깔이 별로 맘에 차지 않은 것이 있는데, 슬쩍 뒤집어 보니까 ‘HER…’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요새는 HER…도 별 볼일 없구나!”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이크! 요새는 이런 것이 유행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명품와인도 마찬가지다. 백만 원짜리 와인이 내게 맛이 없다면 내가 잘못된 것이다.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력이나 이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와인 중에서 가장 비싼 것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나오는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로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싸게 사도 천만 원 이상은 지불해야 하고, 또 프랑스 보르도 와인 중에서 가장 비싼 ‘페튀르스(Pétrus)’ 역시 4백만 원 이상은 줘야 한다. 이렇게 비싼 이유는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서 찾는 사람은 많고, 수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데, 로마네 콩티는 연간 3,000-5,000 병, 페트뤼스는 약 3만 병 정도 생산되지만, 이를 특정 업체에게 전량 다 주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골고루 분배해야 한다. 프랑스의 귀족이나 재벌, 영국이나 북유럽의 왕실, 미국의 재벌이나 할리우드 배우, 아시아의 부자들 심지어는 중동의 왕자까지 대기하는 사람이 즐비하다. 그래서 이런 현상을 이용하여 짝퉁 명품와인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정밀한 기술을 요하는 위조지폐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라면, 아주 비싼 와인라벨을 위조하기란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일 것이다. 미련하게 그 어려운 위조지폐를 만들 것이 아니라 천만 원짜리 짝퉁 명품와인 몇 병만 만들어 팔면 바로 큰 돈이 들어온다. 그리고 물감을 타거나 저급 와인을 고급으로 둔갑시킬 것이 아니라, 몇 십만 원짜리 본로마네(Vosne-Romanée)의 프르미에르급 수준의 와인을 병에 넣어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라벨을 붙여서 천만 원에 판다면, 고급 와인의 맛 차이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안 되는데다가, 명품와인의 라벨 자체가 우리의 판단력과 이성을 아주 무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와인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할 수도 없을 것이고, 위조지폐 만드는 것 보다 훨씬 안전하고 수지맞는 장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마네 콩티 1945를 주제로 한 독일의 사진작가 귄터 크링스의 작품>

  

실제로 이런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로마네 콩티의 1945년 생산량은 엄청나게 감소하여 오늘날의 1/10 수준으로 불과 600병을 생산하였는데, 웃기는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1945년산 로마네 콩티가 수천 병 넘게 거래되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밝혀진 짝퉁 명품와인 사건으로는 2017년 1월 프랑스 디종 검찰이 밝힌 것으로, 러시아의 어떤 조직이 2012년부터 2014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