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02. 와인 덕후 바롤로(Barolo),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1)
와인 덕후 바롤로(Barolo),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1)
프랑스 시인 마르티스는 “무릇 위대한 일의 기원에는 언제나 한 여자가 있다”라고 했다. 시인은 지구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의 숨은 공로를 지구의 다른 반쪽인 남성에게 알리려 했던 의중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프랑스 시인의 여성 찬미를 이탈리아 와인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바롤로 와인의 탄생 기원에도 한 여자가 있다. 남자들이 바롤로를 마시면서 ‘역시 와인의 왕다워’하며 감탄한 그 와인은, 사실 남성 자신은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줄리엣타 콜베르 팔레티(Juliette Colbert di Maulévrier, 줄여서 줄리엣타 후작부인)의 여성성을 찬미했음을 아는가!
줄리엣타의 바롤로
19세기 초, 파리 출신인 줄리엣타와 팔레티 바롤로 후작은 파리 궁에서 처음 만났다. 한눈에 반한 두 젊은이는 사랑에 빠졌고 곧 백년가약을 맺는다. 신혼부부는 토리노 저택에서 대부분을 보냈지만 유산으로 물려받은 넓은 토지와 고성이 있는 바롤로 여름 별장에 자주 다녀갔다.
줄리엣타 후작부인은 명민했고 교양이 깊은 데다가 그녀의 고향인 파리가 보르도에 가까워 보르도 와인에도 상당한 조예가였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영지에서 재배된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을 맛 본 후 네비올로를 보르도 양조방식대로 만들면 묵직한 맛에 오래 두고 마시기에 적당한 와인이 될 것임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줄리엣타 콜베르 팔레티는 루이 14세 때 재상을 역임한 콜베르의 손녀다.>
후작부인이 꿈꾸는 네비올로 와인은 사실상 그 당시 사람들한테 익숙하던 와인의 맛 기준에 도전장을 내미는 대범한 시도였다. 즉, 2백 년 전의 네비올로 와인은 적당히 단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이 빨간 옷을 걸친 격이었다. 줄리엣타는 보르도 스타일로 양조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네비올로 와인 발효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즉시 프랑스에서 양조가를 불러와 함께 여러 실험을 한다. 온도가 일정한 지하실에서 발효를 하면 단 맛이 거의 남지 않게 되며 후에 오크통에서 와인을 숙성하면 오래 두고 마셔도 맛과 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되려 묵직한 맛과 풍미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줄리엣타에 의해 거듭 태어난 네비올로 와인은 탄생지 이름을 빌려 바롤로라 했다. 그녀의 바롤로 와인의 소문은 순식간에 사르데냐 왕국의 카를로 알베르토 왕의 귀에 들어간다. 왕이 바롤로 와인을 맛보고 싶어 한다고 측근이 후작부인한테 언질을 했고 이에 그녀는 왕한테 와인을 선물하기로 한다.
그녀가 얼마나 정성껏 와인을 준비했는지 바롤로 와인이 실린 마차 행렬은 기록에 남겨질 정도로 대단했는데 기록의 일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325개의 보떼(botte, 대형 오크통)가 실린 마차가 바롤로 마을을 출발해 토리노에 도달할 때까지 이 행렬을 보려고 몰려든 구경꾼들로 인해 마차는 자주 멈추어야 했다. 한 통의 보떼는 왕이 하루 마실 양이 담겨 있으며 40일간의 부활절 금주일을 제외한 325개의 보테가 왕한테 전달되었다”.
카를로 알베르토 왕은 줄리에타의 선물에 매우 흡족했고 그의 충신이자 책사인 카밀로 카브르 백작한테 바롤로 와인이 매일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조처를 마련하라고 했다. 이에 백작은 바롤로에서 멀지 않은 그린자네 카브루 마을에 왕실 포도밭을 매입했고 거기서 만든 바롤로 와인으로 왕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왕과 사르데냐 왕국 귀족들은 이때부터 국외에 나갈 때나 국빈이 방문할 때마다 바롤로 와인으로 융성하게 대접했으며 이런 이유로 왕의 와인 혹은 와인의 왕이란 별명이 생겨났다.
1861년 카를로 왕의 뒤를 이은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왕은 유럽 강국에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내부의 여러 소국을 통일한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1400년 만에 하나가 된 신생 이탈리아를 자축하는 만찬에서 각료들은 바롤로 와인이 담긴 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들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여 세계인의 눈과 귀를 의심케 했다. 같은 날, 옥류관에서 공수해온 제면기로 뽑아낸 면으로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요리한 평양냉면을 두 정상이 먹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고 나서야 비로소 의심은 현실로 바뀌었다. 모처럼 맞는 ‘남북한의 봄’이 음식의 꽃으로 활짝 핀 걸 보면서 150년 전 이탈리아인들이 바롤로를 들면서 통일을 자축했던 일이 남북한 사람들한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며 한반도는 일시적으로 자기도취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후작 부부에게는 자손이 없었으며 사후에 그들의 재산은 OPERA DI PIA 후원재단에 기증되었다. 재산 중, 바롤로 와인이 양조되던 건물 Tenute Marchesi를 1906년 아보나(Abbona) 가족이 매입했다. 소유주가 바뀐 후 양조장 명이 Marchesi di Barolo로 개명되었지만 바롤로 와인 여명기의 자취는 그대로 보존돼있다. 특히, 줄리엣타 후작부인 시절에 바롤로 와인이 숙성되던 다섯 개의 보테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으며 지금도 마르케시 디 바롤로 와이너리의 주요 바롤로 와인이 이 용기 안에서 숙성된다.
<마르케시 디 바롤로 와이너리 지하셀러에 보관되어 있는 보테는 150년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지금도 바롤로 와인을 숙성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한다.>
WRITTEN BY Nanyoung Baek
Sommelier of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Wine Writer, Blogger, Judging Panel at Wine Competitions
President of BARBAROLSCUOLA(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Member of Cheese Tasters Panel for EUROFINS Cheese Laboratory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이탈리아 와이너리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SCUOLA) 운영
각종 온라인 매체 와인칼럼니스트,
ONAF(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o)가 주관하는 치즈 테이스터 과정 1레벨 이수 후
EUFOFINS 치즈 평가기관 치즈 평가원 멤버
블로거 (주소: http://blog.daum.net/baeknanyoung/?t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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