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05. 와인 덕후 바롤로(Barolo),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4)
와인 덕후 바롤로(Barolo),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4) – 바롤로는 양념이다
양념은 원재료의 부족한 맛을 보충하며 개별 식재료의 고유한 맛을 드높여 결국 하나로 조화된 맛에 이르게 한다. 바롤로 와인이 자신을 낮추고 음식재료와 눈높이를 맞추는 겸손함을 담고 있는 음식들은 바롤로의 실체가 재료 속으로 자취를 감춘 것 같지만 사실, 바롤로 와인의 향미와 닿는 순간 사라졌던 맛이 되살아 난다.
바롤로 브라사토(Brasato di Barolo)는 뻑뻑하고 질긴 소고기 사태에 바롤로를 부어 뭉근히 익힌 음식으로 고기가 천천히 익으면서 타닌이 스며들어 마치 송아지 안심처럼 혀에 녹아 내린다. 고기 국물은 구수한 맛이 나며 여기에 타야린 사리를 넣어 먹으면 마치 불고기 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것처럼 이색적인 맛이 난다.
바롤로 와인과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리조또. 하지만 쌀 볶을 때 바롤로 와인 몇 수저만 넣으면 두 개의 이질적 재료는 끈끈히 연결된다. 보라색으로 물든 쌀이 색다른 느낌을 주며 바롤로 와인의 향과 시큼함이 쌀의 담백함과 잘 결합된다. 레드 와인 맛이 리조토 맛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난처해진 경험이 있었다면 바롤로 리조토는 안심 궁합으로 시도해 볼 만 하다.
바롤로 발효가 끝난 술지게미는 보통 증류소로 보내져 증류 과정을 거친 뒤 그라빠가 된다. 하지만 일부 지게미는 치즈공방에 보내져 치즈와 독특한 인연을 맺는다. 우유로 만든 토마 치즈가 어느 정도 숙성되면 바롤로 와인 발효를 막 끝낸 술지게미에 담가 재 숙성한다. 일명 바롤로 치즈로 불리는 이것은 백자 표면 같은 뽀얀 살에 바롤로의 보랏빛 마블링이 힘줄처럼 뻗어 있으며 마블링마다 여러 겹의 맛을 감추고 있는 치즈의 왕이라 할 수 있다.
<바롤로 끼나토는 귀한 바롤로 와인과 각종 희귀 식물이 결합한 스위트 와인이다>
바롤로 와인은 초콜릿과도 훌륭한 동반자다. 그런 인연을 맺으려면, 바롤로 와인에 최소 15가지 이상의 향신료, 나무뿌리, 과일 열매 등을 수개월 동안 담가 액기스를 추출하는 담금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추출해서 얻은 와인이 바롤로 끼나토(Barolo Chinato)이며, 식물에서 우려낸 씁쓸한 맛과 단 맛의 기저 위에 바롤로의 타닌이 녹아 든 탄탄한 구조의 디저트 와인이다.
예전에는 병을 앓고 난 환자들은 끼나토를 복용해서 쇠약해진 몸을 다스렸는데 끼나토를 마시고 싶던 멀쩡한 사람이 일부러 앓아 눕는 흉내를 냈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는 와인이다. 바롤로 끼나토에 어울리는 초콜릿을 고를 때는 끼나토의 단 맛과 쓴 맛의 강약을 기준으로 정하는데 보통 콘트라스트 원칙을 적용하면 무난하다. 단맛이 강하고 쓴 맛이 덜한 끼나토는 카카오 함량이 85% 이상인 다크 초코릿이 이상적이며 반대로 단맛이 덜하고 쓴 맛이 강한 끼나토는 밀크 초콜릿이나 카카오 함량이 70% 이하인 달콤한 초콜릿이 좋다.
<Cocchi 와이너리의 바롤로 끼나토. 몸에 좋은 성분을 가진 식물을 우린 와인이며 몸살이나 감기기운이 있을 때 이걸 마시면 좋은 효과를 얻는다>
WRITTEN BY Nanyoung Baek
Sommelier of 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
Wine Writer, Blogger, Judging Panel at Wine Competitions
President of BARBAROLSCUOLA(specialized in Italian Wine & Gastronomic Tour)
Member of Cheese Tasters Panel for EUROFINS Cheese Laboratory
백난영
이탈리아 소믈리에 협회(Associazione Italiana Sommelier)과정 1,2,3 레벨 이수 후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이탈리아 와이너리투어 전문기관 바르바롤스쿠올라(BARBAROLSCUOLA) 운영
각종 온라인 매체 와인칼럼니스트,
ONAF(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Formaggio)가 주관하는 치즈 테이스터 과정 1레벨 이수 후
EUFOFINS 치즈 평가기관 치즈 평가원 멤버
블로거 (주소: http://blog.daum.net/baeknanyoung/?t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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