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 03. 알리에노르(Aliénor/Eleanor)
알리에노르(Aliénor/Eleanor)
아키텐의 공주가 영국으로 시집가면서 지참금으로 보르도 땅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보르도 와인이 유명해지고, 이로 인해 백년전쟁이 일어났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자세한 내막을 알리에노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이 여자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보르도 와인의 명성은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왕비, 잉글랜드의 왕비, 아키텐 공작, 노르망디 공작, 푸아투 백작, 앙주 백작 등 여섯 개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인이 ‘알리에노르(Aliénor, 1122-1204)’이다. 헨리 2세와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들이 낳은 자손들은 근 3세기 동안 잉글랜드의 보르도를 지켰고, 지금도 영국의 와인시장과 판매 방식은 보르도 와인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첫 번째 결혼
알리에노르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에서 아름답고 넓은 땅을 다스리고 있는 기욤 10세(GuillaumeⅩ/WilliamⅩ)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기욤 10세는 프랑스 왕보다 더 넓은 영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화려한 궁중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사실상 더 부유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어린 딸을 데리고 영지를 순찰하고, 여자로서 덕성 교육은 물론, 천문학, 수학, 역사, 라틴어 등 순수 학문에 문학, 춤, 하프연주, 노래, 승마와 사냥까지 당시 귀족 남성보다 더한 교육을 시켰다. 이는 영지를 상속받을 알리에노르보다 네 살 위인 오빠가 1130년에 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력이 쇠약해진 기욤 10세는 죽기 전에 어린 딸을 방대한 영토에 홀로 남겨둘 것을 걱정하여, 1137년에 자신의 상위 군주인 루이 6세에게 딸의 후견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좋은 신랑감까지 골라달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해서 루이 6세는 자기 아들(루이 7세)과 15세의 알리에노르와 결혼을 시키게 된다.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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