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의 이탈리아 와인] 01. 순한 양의 반란 — 페코리노 치즈

2021.04.2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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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양의 반란 — 페코리노 치즈


양은 순하다고 했던가하지만 양의 젖으로 만든 페코리노 치즈는 꽤 도발적이다껍질은 거북이 등처럼 거칠지만 치즈 중심에 가까울수록 카푸치노 빛깔로 변하는 숙성된 치즈의 양털 냄새와 매운 맛은 코가 아리며 눈물이 핑 돌 정도다페코리노 치즈로 양념한 크림 소스와 버무린 카르보나라 파스타에서 스며 나오는 동물성 맛은 상반된 맛의 동거다또한밤고구마 색깔이 도는 속살에서 느껴지는 버터따뜻한 우유호도 맛은 딱딱한 껍질 속에 갇혀있는 페코리노 치즈의 내유외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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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리노 치즈는 사르다 종의 원유로 만든다(사진:Marcello Mundula)>

 


페코리노 치즈의 다양성은 양의 온순함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양의 환경 적응력과 연관이 있다소는 푸른 풀을 먹기 때문에 비가 적당히 내려 신선한 풀이 자라는 목초지가 사육장 근처에 있어야 하지만 양은 잡초만 자라는 건조한 들에 풀어놔도 잘 자란다양은 무리를 이루어 살지만 목장 안에 갇혀 집중 사육하는 데는 적당치 않기 때문에 우사에 갇혀 건초를 먹는 젖소의 우유에 비하면 양젖은 자연친화적이다.


어디 그뿐인가양고기는 부활절과 성탄절의 명절음식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이제는 타산이 맞지 않아 쇠퇴하다시피 했지만 한때는 매섭고 습기 찬 지중해 겨울날씨로부터 이탈리아인들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던 양모는 소나 염소만 사육하던 농가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부수입원이었다.


양젖은 단백질지방비타민A, 칼슘리보플라빈 등의 고형성분이 우유보다2배 이상 높아 리터당 치즈 생산량이 높다미생물학상으로 볼 때 양젖치즈는 휘발성이 강해 우유로 만든 치즈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독특한 풍미를 갖는다이 풍미는 동물 털우사에서 나는 냄새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데 양젖치즈가 숙성할 때 지방을 분해시키는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져 유리지방산 함량이 높아진 데있다숙성 중에는 단백질에도 변화가 일어나 구수한 육수 맛이 나는 아미노산으로 변한다소화불량으로 본의 아니게 우유를 멀리했지만 칼슘부족이 걱정된다면 페코리노 치즈로 염려를 붙들어 매라소화불량의 주범인 유당이 페코리노 치즈가 숙성하는 중에 유산으로 바뀌어서 위장이 편안해진다.

 

페코리노는 양의 젖으로 만든 치즈를 포괄하는 단어이며 이탈리아어로 양을 뜻하는 페코라pecora”에서 왔다큰북 모양에서 납작한 사각형밥주발잘린 기둥모양 등 치즈장인의 솜씨에 따라 모양도 가지각색인 페코리노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서 생산된다그러나 원산지 명칭 보호를 받는 페코리노로 범위를 좁히면 50여 종류이며 그 중DOP등급을 갖는 것은17여 개다대부분 연강수량이 600~900 mm이하의 건조한 구릉지역인 중남부 이탈리아 및 두 개의 섬(시칠리아,사르데냐)이 주 생산지다북 이탈리아에서도 생산되지만 순수한 양젖치즈는 아니고 우유치즈에 독특한 향을 일으키기 위해 총 원유양의 5~40%까지 혼합해서 만든 블랜딩 치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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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리노 로마노(PECORINO ROMANO)치즈()와 원산지 보호(DOP) 마크(), 원산지 보호 마크는 원조 페코리노 치즈를 가려내는 데 기준이 된다.>


페코리노 치즈는 사르데냐 섬이 주요산지이다사르데냐 섬은 인구는160만 명이나 양은 3백만 마리로 양이 사람보다 두 배 많다순두부처럼 떠먹는 후레시 치즈부터 오래 숙성시킨 후 먹는 경성치즈까지 사르데냐의 양젖치즈는 다양하다. DOP등급을 갖는 치즈로는 페코리노 로마노’, ‘페코리노 사르도’, ‘피오레 사르도’ 등이며 이름은 다르지만 세 치즈 모두 양젖으로만 만들어진다. ‘페코리노 로마노와 페코리노 사르도는 지방을 제거하지 않은 전지유로 만들며 치즈 생산단계로 보내지기 전에 멸균 또는 가열한다양젖을 응고 시킬 때는 아기 염소나 송아지 위장에서 추출한 레닛(응고효소)을 사용하여 치즈 덩어리(커드)를 만든다레닛을 섞으면 액체상태였던 원유가 탄력 있는 덩어리로 변화하지만 숙성 중인 치즈가 독특한 풍미를 얻는 데 기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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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코리노 사르도(PECORINO SARDO) 치즈()와 원산지 보호(DOP) 마크()>


일단 커드가 만들어지면 페코리노 치즈의 탄생과정은 서로 비슷하다응고된 커드를 쌀알 및 옥수수 알갱이 크기로 잘라서 유청(훼이우유 단백질이 엉겨서 응고된 뒤 남은 액체)을 제거하는데 이때 40~50도로 덥히면 유청배출이 촉진된다유청이 제거된 커드를 성형틀에 넣어 모양을 만든 후 식염수에 담그거나 굵은 소금을 발라주면서 맛이 배어들게 한다안주용이나 식사대용 치즈(테이블치즈)는 적어도 20 ~ 5개월 숙성하며 강판에 갈아서 음식 양념하는데 쓰이는 페코리노는 8개월 넘게 숙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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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된 치즈(커드)를 쌀알 및 옥수수알 크기로 절단하는 과정이를 통해 유청의 배출이 촉진된다.>


페코리노 치즈의 꽃인 피오레 사르도는 가열하지 않은 전지유를 사용해 양젖 고유의 미생물과 균을 잃지 않는다피오레 사르도가 앞의 두 치즈와 차별되는 점은 성형할 때인데 성형틀 안쪽에는 꽃(피오레무늬가 새겨져 있고 여기를 접촉한 치즈표면은 꽃 모양이 양각된다이렇게 표면에 꽃 모양이 새겨졌기 때문에 사르데냐(사르도)의 꽃(피오레)’이라 부르게 되었다테이블 치즈는 최소3개월조미료용은 최소6개월 숙성하며 이기간 중에는 치즈의 표면을 올리브 오일소금적포도 식초로 여러 번 마사지해서 검은 반점이 솟아난 짙은 갈색을 띠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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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레 사르도(FIORE SARDO) 치즈()와 원산지 보호(DOP) 마크()>

 

그러면 사르데냐의 페코리노 치즈는 어떤 와인과 함께 하면 좋을까이탈리아 속담처럼 옛날에 하던 대로(Andare le tradizioni)”를 따르면 무난한데 치즈 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빚어진 베르멘티노카리냐노카노나우 와인을 두고 말한다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일년 이상 숙성된 페코리노 치즈를 빼고는 웬만한 베르멘티노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농축된 과일미네랄 향기짭짤한 맛과 산미의 여운을 갖는 베르멘티노의 향과 맛은 페코리노 치즈의 그것과도 중복되어 단짝을 이룬다.


숙성된 치즈라고 무턱대고 묵직한 레드와인의 안주로 삼으면 치즈의 동물가죽버섯 향과 짠맛매운맛의 강도는 덜하겠지만 섬세한 꽃견과류야채향기나 감칠 맛은 사라진다포도의 풋풋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중간 보디감의 어린 카리냐노와 카노나우 레드가 어울린다피오레 사르도의 곰팡이에서 나는 자극적인 맛은 부드러운 와인으로 자극의 세기를 완화한다사르데냐의 전통과실주 미르토(myrtle)의 농축된 알코올(30)의 뜨거움과 달콤함이 그 예로 맵고 짠맛이 한결 중화되어 혀가 이완됨을 느낄 수 있다.


(사진제공: Pecorino Sardo, Pecorino Romano, Fiore Sardo 치즈콘소시엄 웹사이트,Tamellini s)




WRITTEN BY 백난영 (Nanyoung Baek)

(이태리 AIS 공인 소믈리에, Barbarol Scuola 대표, ONAF(이탈리아 치즈 테이스터 협회치즈 테이스터 과정 Level 1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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