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와인] 01. 와인과 여자
와인과 여자
'전략'은 여성과 식사할 때 좋은 와인 한 병을 주문하는 것이고, '전술'은 그 여자가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프랭크 뮤어(Frank Herbert Muir, 영국의 코미디 작가)
여자들에게 와인은 금기
그리스, 로마가 유럽 와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와인을 마시는 일은 그리스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데, 와인을 마신 기혼녀는 이미 판단력을 상실하여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여성들도 상당한 정치적 권력을 가졌고, 부유한 부인들은 만찬을 주최하고 만찬에 참석할 수도 있었지만, 여자들은 집에서 말린 포도에 신선한 포도주스를 첨가하여 우려낸 ‘파숨(Passum)’을 마셨다. 이 파숨도 어느 정도 발효가 일어나 알코올을 함유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서 건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파시토(Passito)’라는 단어도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여자들에게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와인을 피로 여겼기 때문인데, 여자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은 피가 섞인다고 해서 ‘간통’으로 생각했고, 여자들은 절제력이 부족하여 광란 상태에서 신의 소유가 되며 그렇게 소유되는 것을 ‘강간’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와인은 위험한 약이었고, 약한 여성은 그런 약을 먹지 않도록 보호되어야만 했으니까 여성은 와인에 접근할 수 없었고, 와인을 마시다가 발각되면 사형당하거나 이혼을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키스는 자기 부인이 와인을 마셨는지 검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여자들의 음주는 절대적인 죄악이었다.
샴페인은 여자를 타깃으로
이렇게 와인은 남자들의 술이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은 “샴페인은 마신 후에도 여인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유일한 술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샴페인이 먼저 여성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19세기부터는 진취적인 샴페인 지방에서 샴페인의 타깃을 남녀 모두로 삼았다. 특히 “여자들에게 샴페인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이는 여자를 뜻대로 다루려면 샴페인을 마시게 하라는 말도 되지만, 이들은 샴페인의 호사스러운 이미지를 여성의 몸에 걸치게 해주었다. 수많은 라벨에 여성들이 등장하고, 특히 샴페인 제조에 많은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성의 술’이란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심어주었다.
<스페인의 Oriol Maria Divi가 1924년에 그린 Exlibris(장서표)>
와인은 작업용 술?
와인은 긴장과 걱정에 대한 온화한 진정작용을 하며,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대화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물론 이 작용은 다른 술에서도 나오지만,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낮은 혈중 알코올농도가 느리고 오래 지속된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0.05% 정도 되었을 때가 가장 활발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서 상대방 이야기에 잘 웃고, 말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우울기가 없어진다. 이때가 작업이 가장 잘 되는 시점이라서 혈중 알코올농도 0.05%를 ‘작업농도’라고 하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은 조금만 마셔도 혈중 알코올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여 금방 취하게 되어, 그 다음날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되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맥주는 많은 양을 마시다 보니까 작업을 잘 하다가 ‘어디’를 갔다 오다 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때문에 와인이 작업용으로는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 것이다.
와인은 1급 바람물질
최근의 실험에서도 밝혀졌지만, 술을 마시면 상대 이성이 더 아름답게 보일 뿐 아니라, 본능을 관장하는 구피질을 억제하는 기능을 마비시켜 다소 흥분된 상태로 만든다. 게다가 레드 와인은 실제로 남녀 모두에게 성적 욕구를 증가시키고, 다른 술과는 달리 매혹적인 성상과 사람을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서 로맨틱한 분위기에 음악과 함께한다면 관능적인 유혹의 수단으로 더 이상 좋은 것이 없다. 이성의 무장해제를 시키는 데는 와인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와인애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와인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와인동호회 중에서도 와인을 핑계 삼아 남녀 간 만남의 수단으로 변질된 곳이 많은 이유도 바로 와인의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 와인이 있었더라면 ‘열녀문’을 세울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역시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와인을 1급 ‘바람물질’이라고 하는 것이다.
적당량의 레드 와인은 성적욕구 증가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보면, 2009년 이탈리아 연구팀(Santa Maria Nuova Hospital)이 ‘레드 와인과 여성의 성적 욕구의 관계’를 조사했다. 이들은 789명의 이탈리아 여성(18-50세)을 상대로 레드 와인 마시는 그룹(하루에 1-2잔)과 다른 술 마시는 그룹, 그리고 금주하는 그룹 이렇게 세 팀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레드 와인을 마시는 그룹의 성적 욕구는 27.3점, 다른 술 마시는 팀은 25.9점, 금주하는 그룹은 24.4점이 나왔다고 『저널 오브 섹슈얼 메디슨(Journal of Sexual Medicine, 2009. 7.)』에 발표했다. 레드 와인이 어떻게 작용하여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레드 와인의 항산화력 때문에 혈관이 확장되어 혈액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으로 유추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와인으로
2016년 와인 전문잡지 『디캔터』에서 『노인학회지(Journals of Gerontology)』를 인용하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2,767쌍의 부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와인을 같이 마시는 부부의 결혼생활이 그렇지 않은 부부보다 훨씬 행복하고 오래 간다고 한다. 이들 중에서 33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2/3는 첫 결혼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불행한 부부는 남편은 술을 마시고, 아내는 마시지 않은 경우였고, 부부 모두 금주인 경우는 한쪽이 마시는 경우보다는 더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와인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지만, 어떻게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와인은 신의 선물인 동시에 악마의 유혹도 되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예절과 교양의 상징인가 하면 술주정과 환락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처럼 와인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고,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미묘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이다.
* 부부 간에 사이가 좋아지려면, 일주일에 두 번씩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 작은 촛불과 와인을 곁들인 만찬에 부드러운 음악과 춤을 즐기면 된다. 단, 마누라는 화요일에 가고 난 금요일에 가야 된다. - 헤니 영맨(Henny Youngman, 미국의 코미디언)
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와인스쿨(JCK Wine School)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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