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주의 와인 테이스팅] 10. 전문가를 찾습니다 – 와인과 음식, 그 어렵고도 복잡한 공식을 풀기 위하여
전문가를 찾습니다 – 와인과 음식, 그 어렵고도 복잡한 공식을 풀기 위하여
“라면 먹을 때 김치를 안 준다. 삼겹살에 소주를 못 먹게 한다.” 최근 ‘한국인을 고문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한 웹사이트에 올라왔던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방법 또한 한국인을 고문(?)하는 8가지 방법의 일부이다. 이 외에도 “인터넷 속도를 늦춘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없앤다.”, “요거트 뚜껑에 묻은 걸 먹지 못하게 한다.”, “식후 커피를 못 마시게 한다” 등 주로 한국인의 급한 성격과 먹거리에 관한 집착을 유머러스 하게 꼬집은 내용들이다.
단무지 없는 자장면과 김치 없는 라면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와인에도 꼭 어울리는 단짝요리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들, 이를 테면 ‘생선은 화이트 와인, 고기는 레드 와인’이나 특정한 나라나 지방색이 두드러진 음식에는 그 지방 와인을 마시는 ‘신토불이’ 원칙은 너무 잘 알려져 있는 가이드이다. 하지만 먹는 일이란 어느 민족을 고문(?)도 할 수 있을 만큼 질기고 독특한 관습이자 뿌리인지라 쉽사리 남의 말을 따라 하기 어렵다. 제아무리 완벽한 푸드 앤 와인 페어링이라 하여도 입맛에 안 맞을 수 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유학을 다녀온 초기 강의를 하던 시절 당황스러웠던 경험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분명 어울리는 조합이라 배웠던 매칭을 시도한 뒤의 역 반응. 예를 들면 매운 음식과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이라던가, 굴 요리와 (오크향 없는)샤블리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론과 실제가 안 맞는 거다. 서양 사람들 입맛에 맞게 세워 둔 이론이 평생 김치를 먹으며 살아온 우리 입맛과 맞을 수 없다. 비슷한 상황을 중국인의 경우를 들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중국인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에도 강한 타닌의 레드 와인과 잘 먹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면 중국인들은 탄닌이 강한 차와 식사를 하는 문화가 있어서 와인을 마시며 느껴지는 떫은 타닌 맛에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을 반복하는 동안 푸드 앤 와인 매칭 분야 만큼은 실전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존 이론이나 대가의 말을 신뢰하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각 나라의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녹여서 창의적으로 적용한 푸드 앤 와인 매칭 이론을 접하기 어려웠다. 우리도 관심을 안 가져온 터에 타국의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가장 어리석은 일 가운데 하나가 탄닌과 바디가 강한 레드 와인에는 등심, 안심, 갈비 같은 양념이 거의 없는 쇠고기 요리가 어울린다는 등 특정한 음식에 와인을 매칭하면 잘 어울린다는 짝짓기이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우리나라 상차림은 코스 요리가 아니다. 따라서 특정한 음식과 제 아무리 잘 어울린들 밥, 국, 김치가 어우러진 식사에서 그 매칭을 뽐내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여러 코스와 함께 마실 와인을 하나만 골라야 될 때이다. 우리와 상황은 다르지만 적용 가능한 점이 있어서 관심 있게 정보를 찾던 중 아주 흥미로운 가이드가 있어서 소개를 한다.
“레스토랑에 갔을 때 완벽하게 다른 두 메뉴를 먹는 코스에서 한 종의 와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이럴 때는 안전하게 가벼운 탄닌의 단순한 레드 와인을 고르라!. 예를 들면 보졸레 와인(100% 갸메 품종)은 리스크 없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Jean Claude BUFFIN의 [Developing your skills as a wine taster] 에서 발췌>
<국내에 수입된 100% 가메 와인 중의 하나인 쟈크 샤를레 줄리에나(Jacques Charlet Julienas)>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광적인 보졸레 와인 애호가가 아닌 이상 이 가이드의 효력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풍미가 강한 우리 음식에서 보졸레 와인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음식만큼 강한 풍미나 스파이시한 와인이 더 잘 어울릴 거라 본다. 언젠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 출신의 와인 전문가가 기획했던 한국 음식과 와인 매칭 강의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는 확실히 서양 전문가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매칭을 시도했고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그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중도에 가까운 타협안을 내놓는 느낌을 받아서 좀 아쉬웠다. 순전히 개인적 경험 즉, 그 간 강의에서 겪었던 임상실험(?)의 결과와 비교했을 때 말이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집으로 오라’는 말은 그저 편하고 너른 인사말에 불과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무조건 ‘놀러 오라’고 권한다. 그 말을 믿고 정말 따라갔다가는 민폐가 될 수도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건네는 ‘언제 밥 한번 먹어요’와 같은 인사치레인 것이다. 그러니 아프카니스탄에서 ‘집으로 오라’는 청을 받는다면 그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듯 사람 사는 데에는 문화도 관습도 달라서 무작정 따라 가다가는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 지금부터 우리 식으로 와인을 즐겨 보자. 와인은 우리를 괴롭히길 원하진 않는다. 전문가는 바로 당신, 더 정확하게는 당신의 입맛이다.
WRITTEN BY 백은주(Eunjoo Baik)
(사)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와인교육 및 자격검정 부회장 / Vice President, Korea International Sommelier Association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 워터 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강사 / Graduate School of Tourism, Kyung-hee University
부산 가톨릭대학교 와인 전문가 과정 강사 / Wine Master Sommelier Course, Busan Catholic Universtiy
WSET 인증강사/ Wine Educator of WSET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 와인 양조 디플로마 / Diplome de Technicien en Oenologie at Bourgogne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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