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와인레이블(1)
섹시한 와인레이블(1)
“Sex sells!”. 어떠한 상품 혹은 서비스의 섹스마케팅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섹스마케팅의 시도는 와인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마케팅이 와인분야에서 성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누군가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학문적인 연구를 해야 정확한 답변을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와인에 있어서의 섹스마케팅은 광고의 경우와 와인레이블에서 접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예외 없이 의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는 섹시한 이미지의 예술작품을 와인의 레이블에 사용한 경우일 것이다.
Vignobles Dom Brial Rozy Bikini 2014
지난 주에 노보텔 앰베서더 강남 호텔에서 열린 ‘2015 Discovery of Roussillon Wines Tour’에 참가한 와인생산자 비뇨블 돔 브리알(Vignobles Dom Brial)이 선보인 로제 와인 ‘Rozy Bikini’의 와인레이블은 의도적인 섹스마케팅이지만 신선한 충격(?)과 웃음을 주었다. 1923년에 탄생한 조합으로 뮈스카의 세계 최대생산자인 비뇨블 돔 브리알은 국제적인 와인품평회에서 많은 메달을 받아 널리 알려져 있다. ‘Rozy Bikini’는 뮈스카 프티 그렝(Muscat Petit Grains)과 쉬라(Syrah)를 블렌딩한 로제 와인인데, 비키니 모양의 레이블과 살색에 유사한 와인의 칼라 때문에 와인 병을 비우면 비키니 차림의 젊은 여성이 옷을 벗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섹스마케팅이라고 전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와인레이블에 대한 반응은 남녀를 불구하고 좋았다. “깜찍하다”, “귀엽다”, “예쁘다”, “상큼하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에 “허리 부분에 병 모양이 오목했으면……”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여름에 재미와 더불어 마시기 좋은 이 로제 와인의 레이블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마치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는 오줌싸개 동상 ‘Manneken Pis’가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과 같다. 브래지어는 나비 모양을 갖추고 있어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상징하는 것 같다.
Château Mouton-Rothschild 1993의 레이블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Rothschild)와 토스카나의 파토리아 니타르디(Fattoria Nittardi)의 와인은 아티스트 와인레이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필립 드 로칠드(Philippe de Rothschild) 남작이 20세의 청년이던 1922년에 부모로부터 와이너리를 물려 받아 샤토 무통 로칠드를 더욱 발전시켜 마침내 1973년에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된 배경에는 ‘샤토에서의 병입’과 ‘아티스트 와인레이블 사용’이라는 마케팅적인 요소가 와인 품질의 향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인을 취급하는 독일의 한 비즈니스맨의 말에 따르면 샤토 무통 로칠드 생산량의 약 30%가 레이블 수집가에 의해서 구입된다고 한다. 아티스트 와인레이블의 마케팅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의 예술작품을 레이블에 담을 것인가에는 작가의 지명도, 작품의 예술성뿐만 아니라 작가와의 친분관계 혹은 마케팅적인 요소도 고려된다. 예를 들어 샤토 무통 로칠드의 와인레이블에 일본과 중국의 작가 작품이 선택된 것에는 다분히 마케팅적인 요소가 고려되었다. 2008년 빈티지의 작품을 Xu Lei라는 중국의 미술가가 그릴 것이라는 발표가 있자마자 와인 값이 20%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뢰를 받은 작가에게 “Sex sells!”라는 관점에서 특정의 작품을 요구한다는 것은 적어도 바로 앞에서 언급한 두 개의 와이너리의 경우에는 상상하기 어렵다.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의 외동딸인 필리핀 드 로칠드 여사(Baroness Philippine de Rothschild)는 남작이 1988년에 타계하자 그 뒤를 이어 와인사업을 해왔는데, 샤토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을 그리는 아티스트에게 수평으로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 이외에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으며 그들의 자유에 맡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요청마저 거절당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앤디 위홀(Andy Warhol)이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의 초상화를 그린 1975년 빈티지의 레이블이다. 필리핀 드 로칠드 여사가 아티스트들에게 레이블을 위한 그림에 자유를 선사하는 이유는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 때문이라고 한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93년 빈티지에는 누드의 소녀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발튀스(Balthus, 본명은 Balthasar Kłossowski de Rola)의 작품이 레이블에 담겨 있다. ‘20세기 회화의 거장’, ‘이단자’ 이와 같이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발튀스는 에로틱한 포즈의 사춘기 소녀 그림으로 자주 논란이 되었는데 발튀스 본인은 “소녀를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적인 측면과 천사적 특징을 그린 것”이라고 반박한다. 1993년 빈티지의 레이블은 미국에서 문제가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바로 아티스트에게 선사한 자유가 자리잡고 있었다.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93년 레이블/
어떤 와인 평론가는 레이블에 담긴 소녀가 성숙한 여인으로 변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이 와인을 즐기려면 여러 해의 숙성이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빗대어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발튀스의 작품 때문에 1993년 빈티지는 오히려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원래 보수적인 미국의 BATF(Bureau of Alcohol, Tobacco and Firearms)는 발투스가 그린 레이블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Sexual Assault Response Team’이라고 자칭하는 캘리포니아의 한 단체가 이 레이블을 문제 삼아 BATF에 재심을 요청했다. “미성년자 포르노라고 생각하는 것은 끔찍하다. 우리에게 발튀스의 작품을 레이블에 담을 수 있는 것은 기적이었다.”라고 필리핀 드 로칠드 여사가 말했지만 이러한 일부 여론을 고려하여 스스로 BATF에 승인거절을 요청했다. ‘발튀스가 아니라면 아무도 아니다(If it’s not Balthus, it’s nobody.)’라고 스스로 말하며 미국시장에 판매되는 1993년 레이블에는 발튀스의 그림을 없애고 연한 노랑색의 바탕만을 레이블에 담았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미국에 밀수로 들여온 1993년 빈티지를 구하려고 애썼고, 반면에 유럽인들에게는 미국판 1993년 빈티지를 구하려는 열기가 생겨났다.
/미국에서 판매된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93년 레이블/
/독일의 사진작가 귄터 크링스의 작품 – 1993년 레이블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Vignobles Dom Brial Rozy Bikini 2014의 레이블은 의도적으로 섹시한 레이블을 사용하여 섹스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름에 마시기 좋은 로제 와인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전혀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 흥미로운 섹스마케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유치하다는 평가는 가능할지 모른다. 반면에 Château Mouton-Rothschild 1993의 경우 발튀스가 평소에 소녀를 그린 작품들의 선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도적인 섹스마케팅은 전혀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일부 부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섹스마케팅의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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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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